[연합시론] 하늘의 언어 - ‘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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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시론] 하늘의 언어 - ‘감사’
  • 박응순 목사(주안중앙교회)
  • 승인 2023.11.16 1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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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응순 목사 / 주안중앙교회 담임
박응순 목사 / 주안중앙교회 담임

‘감사’는 하나님께서 명령하신 최대의 계명이고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다(살전5:18).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잃어버린 계명이 있다면 감사의 계명일 것이다. 자족하는 사람은 감사의 계명대로 살아간다. 악인과 탐심자는 감사하지 못한다. 오늘날 많은 사람이 자기 분수를 모르고 탐욕때문에 마음의 기쁨과 삶의 감격과 감사를 상실한 채 살아간다.

톨스토이의 ‘욕심쟁이 땅 차지’ 이야기가 있다. 한 성주가 땅을 갖기를 원하는 농부에게 아침부터 저녁까지 발로 밟는 모든 땅을 주겠다고 말했다. 단, 해가 질때까지 성주가 서 있는 출발점까지 와야 한다는 조건이었다. 농부는 신이 나서 새벽부터 광활한 평야를 뛰기 시작했고 저녁때가 되어서 저 멀리 농부의 모습이 보였다. 한 뼘이라도 더 차지하겠다고 더 넓게 더 멀리 뛰었다. 농부는 성주 앞에 도착하자마자 쓰러졌고 일으켜 보았을 때는 이미 죽어 있었다.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약 1:15)성도는 땅에 속한자가 아니라 하늘에 속한 자이다. 성도가 땅을 바라보고 세상에 마음을 빼앗기면 불평하게 된다. 불평은 상대적이다. 좀 더 좋은 것, 좀 더 편안한 것, 좀 더 많은 것에 대한 욕심이 불행하게 만들고 파멸케 만든다. “우리가 흔들리지 않는 나라를 가졌으니 감사드립시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며 경건함과 두려움으로 그분께 예배드립시다”(쉬운성경,히 12:28)

감사하는 사람은 향수와 같아서 자신과 타인을 즐겁게 만든다. 감사하는 사람을 가까이하면 감사하는 사람이 되지만, 불평하는 사람과 동행하면 불행해진다. 감사는 신앙의 결실이다. 하나님의 은혜를 깨달은 사람은 감사하게 된다. “주께서 내게 응답하시고 나의 구원이 되셨으니 내가 주께 감사하리이다”(시 118:21) 구원의 확신이 있는 사람은 문제 가운데서도 감사한다. 성도는 평안할 때나 고난중에도 하나님의 선하심을 믿고 감사해야 한다. 하나님은 좋으신 하나님이시다.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나를 영화롭게 하나니 그의 행위를 옳게 하는 자에게 내가 하나님의 구원을 보이리라”(시 50:23)

“행복은 감사의 문으로 들어오지만 불평의 문으로 나간다”, “사랑은 표현할 때까지는 사랑이 아니며 복은 감사할 때까지는 축복이 아니다”, “행복은 감사하는 사람의 것이다”(아리스토텔레스). 성숙한 사람은 표현할 줄 아는 사람이다. 그러므로 감사는 성숙한 성도의 신앙고백과 같다. 참된 성도는 적은 소유에도 나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으로 감사한다(합 3:17~18). 구원을 선물로 받았음에 감사한다. 거친 세상에서 순경이나 역경에도 믿음으로 감사한다.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살전 5:18절)

열쇠는 잠긴 문을 열수 있다. 성도의 감사는 은혜의 문, 축복의 문, 평안의 문, 천국의 문을 여는 능력이 된다. 감사와 불평은 의지적인 감정이다. 의지적으로 매일 “감사합니다”를 실천하면 감사가 몸에 배어서 무의식적인 감사로 바뀐다. 그는 범사에 감사하게 된다. 불평, 원망도 마찬가지다. “육체의 연단은 약간의 유익이 있으나 경건은 범사에 유익하니 금생과 내생에 약속이 있느니라”(딤전 4:8). 그러므로 감사는 행복해지는 연습이고, 불평은 불행해지는 연습이다. 감사는 생명과 희망과 용기와 삶의 의욕을 일으키는 하늘의 언어이다.

주안중앙교회 담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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