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주를 열며] 분노사회: 묻지마 범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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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주를 열며] 분노사회: 묻지마 범죄
  • 조성돈 교수(실천신학대학원대학교)
  • 승인 2023.08.21 09:2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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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성돈 교수
조성돈 교수

몇 년 전 ‘조커’라는 영화가 세계적으로 화제였다. 영화의 주인공이었던 호아킨 피닉스는 이 영화로 수많은 남우주연상을 휩쓸었고, 영화 역시 베니스국제영화제의 황금종려상 등을 받으며 화제를 모았다. 

조커라는 피에로는 사람들에게 항상 무시 당했다. 길거리에서 아이들에게 뭇매를 맞기도 하고, 무대에서는 야유를 당하기 일쑤였다. 어느날 집으로 돌아가는 지하철에서 양복을 잘 차려입은 몇 명의 무리를 만났다. 그들은 술에 취해 있었고, 그 취기에 이 피에로를 놀리다 못해 폭력을 행사했다. 그때 조커가 품에 가지고 있던 권총을 꺼내어 이들을 쏜다. 그리고 숨죽여 숨어 있었는데, 도시에서는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이 피에로가 사람들의 영웅이 된 것이다. 조커의 총에 죽은 사람들은 그 도시에서 가장 큰 은행의 직원들이었다. 이들을 피에로 복장을 한 사람이 죽였다는 것을 듣고는, 사람들은 해석하기를 도시의 착취자였던 은행에 대한 저항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사람들은 열광했고, 폭력이 난무하기 시작했고, 도시는 혼란에 빠져든다.

이 영화가 평론가들에 의해 의미 있게 보여진 것은 아마 분노의 메커니즘을 영화가 잘 보여준 덕분이라고 본다. 고담시티에 있던 사람들은 어려움 가운데 분노를 채우고 있었다. 도시가 가지고 있는 경제적 불평등과 착취 등이 이들을 화나게 했다. 그런데 누군가 그들의 분노에 방아쇠를 당겼다. 사람들은 기다렸다는 듯 폭발했고, 도시는 더 큰 악의 지배로 들어간다.

영화 이야기를 장황하게 늘어놓은 것은 의미가 있기 때문이다. 그것이 현실과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요즘 정치인들을 보면 대중의 분노를 가지고 정치를 한다. 정치라기 보다 분노를 격발시키는 선동이다. 대표적인 인물이 미국의 트럼프 대통령이다. 그의 선동은 결국 마지막 선거 패배 후 미국 역사상 처음으로 대중에 의한 의사당 점거라는 결과로 나타났다. 

최근 묻지마 폭행, 묻지마 살인이 길거리에서 나타나고 있다. 신림동에서, 그리고 분당 서현동에서 길거리 칼부림이 있었다. 특정한 누군가를 향한 살인이나 폭행이 아니라 불특정 다수를 향한 범행이었다. 어느 특정 계층을 향한 것도 아니고 그냥 길거리를 지나는 사람들이었다. 범인들은 화가 나 있었고, 자신들의 분노를 그렇게 풀어낸 것이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이들을 보며 유사한 범행을 예고한 자들이다. 마치 불길처럼 번져간 이 살인예고로 벌써 50여 명이 검거되었다. 실제로 이어지지는 않았지만 이러한 예고가 끊이지 않는 것은 분명 실체가 있다. 그들의 심리 속에는 자신의 분노와 대중의 분노 사이에 접촉점이 있다고 본 것이다.

한국인들의 마음 속에는 분노가 채워져 있다. 그 분노의 실체는 불안이다. 미래는 둘째 치고, 한 치 앞도 바라볼 수 없는 불안이 있다. 청년들은 3포, 5포, 7포 하다가 이제는 세는 것도 포기하고 N포라고 한다. 청년들은 모든 것을 포기하고, 이제는 꿈도 희망도 포기 당하고 있다. 앞으로 살아야 할 날이 70년, 80년 남았는데 벌써 모든 걸 포기하고 나니 불안만 남는다. 그렇다고 대한민국에서 청년들만 불안한 것은 아니다. 젊은 어른들도, 중년의 어른들도, 그리고 노인들 역시 앞날을 알 수 없는 불안 가운데 살고 있다. 불안이 쌓이니 당연히 분노가 생기고, 이러한 분노가 각 곳에서 예측할 수 없는 폭력으로 나타난다.

분명 교회가 할 일이 있다. 불안과 분노로 이어져 폭력과 살인으로까지 나타나는 이 사회 가운데 교회는 사람들의 마음에 위로와 평안이 되어야 한다. 분노의 매카니즘을 깨고 사랑의 메커니즘이 작동하는 하나님 나라를 교회가 만들어 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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