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셋째 주 하늘 문을 여는 가정예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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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셋째 주 하늘 문을 여는 가정예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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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23.06.16 0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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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신하는 자

출애굽기 32:25~35
찬송: 394장

아론의 금송아지로 인해 백성이 방자한 일이 발생했습니다. 백성들의 성화에 못 이겨 아론이 금송아지를 만들었고 이 금송아지가 가나안 땅으로 인도할 신, 여호와 하나님이라는 말에 백성들이 애굽에서와 같이 금송아지를 섬긴 것입니다. 모세는 시내산에서 40일 금식 후에 법궤를 받아 내려오다가 이런 백성들의 추태를 보게 되며 분노한 나머지 십계명이 새겨진 돌 판을 던져 깨트리고 금송아지를 불살라 부수어 가루를 만들어 뿌렸습니다. 이후 백성들을 향해 누구든지 여호와 편에 있는 자는 내게로 오라고 하니 레위 자손들이 모였습니다.
이후 모세는 순종한 레위 자손들에게 축복하였습니다. 본문에 모세가 말한 헌신이란 무엇일까요? 헌신은 ‘몸과 마음을 바쳐 있는 힘을 다함’이라는 뜻으로 남이 할 수 없는 것(일)을 하는 것이고, 남이 하기 싫어하는 것(일)을 하는 것이며, 할 수 없는 환경에서 감당하는 것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큰 헌신은 바로 우리를 위해 독생자 아들을 예수 그리스도를 기꺼이 내어주신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이보다 더 큰 헌신은 세상 어디에도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또한 헌신하는 자가 되어야하겠습니다. 남들이 다 할 수 있는 일이 아닌 할 수 없는 일들을 하고, 먼저는 우리를 위해 생명을 주신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 또한 교회와 성도, 이웃을 위해 헌신 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오늘의 기도
주님! 우리도 주님과 이웃을 위해 헌신하는 자가 되게 하옵소서!

 

열매 없는 포도나무

에스겔 15:1~8
찬송: 384장

하나님을 떠난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 앞에 징계를 받아 버림을 받게 되었습니다.
첫 번째, 하나님의 백성들인 이스라엘이 하나님 앞에 쓸모없는 존재들이 되었습니다. 포도나무는 이스라엘의 상징입니다. 포도나무의 특징은 포도열매 외에는 어떠한 용도로도 쓰여 질 곳이 없다는 것입니다. 지팡이로도 쓰여지지 않는 것이 포도나무입니다. 마찬가지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열매를 바라신 하나님은 그들에게 아무런 열매가 없는 것을 보자 그들을 버릴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두 번째, 열매가 없을 때 하나님이 대적자가 되시겠다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지금까지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보호자가 되어 주셨습니다. 하나님이 보호자가 되었을 때 그들은 평안을 누릴 수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떠나 범죄하고 배반한 이스라엘을 향한 보호 정책을 철회 하시고 반대로 대적자가 되시므로 시련과 고통을 당함으로 하나님이 여호와이신 줄을 알게 될 것이라고 말씀을 하십니다. 
마지막으로 이스라엘 땅이 황페 하게 될 것 이라고 말씀을 하십니다. 하나님을 배반 하고도 회개 하지 않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대적자가 되어 심판을 하실 뿐 아니라 그들이 사는 땅까지도 심판하시므로 황폐한 땅이 될 것을 선언 하셨습니다.
우리도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으므로 하나님 앞에 쓰임을 받는 자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오늘의 기도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어 쓰임 받는 도구가 되게 하옵소서.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

마가복음 16:9~20
찬송: 505장

열한 명의 제자가 밥을 먹고 있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이 나타났습니다. 심기가 불편합니다. 제자들을 꾸지람합니다. 부활의 목격담을 두 번이나 듣고도 믿지 않는 완악함 때문입니다. 말씀을 믿지 않는 믿음 없음 때문입니다.
꾸지람을 들을 정도로 시원찮은 사람들, 동료들까지 회유해서 어부로 복귀했던 사람들, 도대체 신뢰할 수 없는 사람들… 이들이 복음 전파의 지시를 받았습니다.
그러나 놀랍게도 이들은 나가서 두루 전파했고, 주께서 함께 역사했고, 따르는 표적도 나타났고, 말씀을 확실히 증거합니다.
예수님은 믿을 만한 구석이 없는 제자들에게 중대한 일을 맡기셨습니다. 다른 누구에게도 부탁하지 않고 오직 이들에게만 부탁했습니다. 제자들을 보면 실망스럽지만 그래도 그들에겐 순종이 있었습니다. 제자들은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아라”, “약속한 성령을 받으라”는 말씀을 따릅니다. 기도하며 기다렸고 약속한 성령을 받습니다.
그러자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못하고 안 할 것 같은 사람들이 예수님의 지시를 따릅니다. 온 천하를 두루 다니게 되었고, 복음을 전파하게 되었고, 사람들이 구원받게 되었습니다. 주께서 함께 역사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이 제자들을 변화되게 하셨습니다. 우리도 예수님으로 새로워졌습니다. 누구라도 예수님을 만나면 새 피조물이 될 것입니다.

•오늘의 기도
하나님! 믿음 없고 완고해서 주의 일에 적합지 않다고 할지라도 사용하여 주십시오.

 

성도는 믿음으로 살리라

로마서 1:16~23
찬송: 351장

하박국 선지자는 “의인은 그의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라고 하였습니다. 삶의 중심에는 재물, 명예, 힘이 아니고 믿음이 있을 때 그리스도의 영광의 빛으로 들어갈 수 있습니다.
믿음은 어떤 것인가요? 유다서 1장 3절에는 주의 진리를 지키고 사는 것이 바로 우리의 믿는 믿음이라고 하였습니다. 아브라함은 진리의 도를 지키므로 바라보는 모든 땅을 받았고 믿음의 조상이 되었으며 주님 보좌에 함께하는 승리를 이루었습니다. 
우리는 믿음으로 살아야 합니다.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예수님을 믿어야만 하나님나라에 갈 수 있습니다. 
믿음의 대적은 보일 듯 말 듯 한 바늘구멍만 한 틈새를 뚫고 들어오는 ‘의심’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사람의 말로 듣지 말아야 하며 예수 이름으로 의심을 철저하게 물리쳐야 합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닮아 내 마음에 쓴뿌리 시기, 질투, 분냄, 비방 등을 뽑아내야합니다. 또한 사명 감당을 위해 핑계 대지 말아야 합니다. 십자가를 지기 위해 무릎으로 순종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믿음으로 덕이 되게 삽시다. 주여 주여 하는 자가 천국에 가는 것이 아니고(마 7:21) 빛의 자녀처럼 착하고 진실하고 의롭게 살며 예수의 향기가 있는 덕이 있는 믿음의 삶으로 살아야 합니다(엡 5:8~9).

•오늘의 기도
복음에 합당한 자로 믿음의 뿌리를 깊이 내려서 믿음의 좋은 열매를 맺으며 살아가는 성도가 되게 하옵소서.

 

구할 것과 맡길 것

마태복음 6:33, 
잠언 16:3
찬송: 369장

성경에는 ‘구하라’는 말씀과 ‘맡기라’는 말씀이 많이 나옵니다. 그런데 ‘구하라’고 하신 말씀들은 대부분 하나님과 관계된 것, 영적인 것, 다른 사람을 위한 것들입니다. 자기 자신을 위해 구하라는 것은 찾기 힘들었습니다. 반면에 ‘맡기라’는 말씀은 우리 자신과 깊은 관계가 있습니다.
‘너의 길을 여호와께 맡기라’, ‘네 짐을 여호와께 맡겨 버리라’, ‘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겨 버리라’. 그렇습니다. 우리가 구해야 할 것은 우리가 살아가는 데 필요한 것(목숨을 위하여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몸을 위하여 무엇을 입을까 등)이 아닙니다. 이것은 아버지 되신 하나님께 맡겨야 합니다. 염려하지 않고, 믿음으로 온전히 맡기면 하나님이 책임져 주십니다. 책임져 주실 것이기에 맡기라는 것입니다.
반면에 하나님의 나라, 하나님의 의, 영원한 것, 영적인 것, 그리고 다른 사람을 위한 것들은 구해야 합니다. 이것은 할 수 있는 한 더 많이 구해야 합니다. 이것을 우리가 구할 때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를 통해 마음껏 일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나 안타까운 것은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하고 있지 못하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구할 것은 구하고, 맡길 것은 맡기는 것만 잘해도 우리의 믿음은 한 층 더 성숙할 것이며, 하나님께서 주시는 풍성함을 더 많이 누리며 살 것입니다. 

•오늘의 기도
구할 것과 맡길 것을 분별할 수 있는 지혜를 주셔서 구할 것은 구하고 맡길 것은 맡기게 하옵소서! 

 

그는 내 심장이라

빌레몬서 1:10~12
찬송: 312장

빌레몬서는 바울의 동역자 빌레몬에게 오네시모라는 종이 있었는데 죄를 지어 감옥에서 바울을 만났고, 오네시모를 위해 주인인 빌레몬에게 쓴 바울의 편지입니다. 바울은 주 안에서는 신분의 높낮이는 없고 모두가 같은 형제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혹시라도 오네시모에게 빚이 있으면 자신이 갚겠고, 나를 동역자로 생각한다면 내 부탁을 꼭 들어줄 것을 확신한다고 말합니다. 특히 사도 바울은, 예전엔 오네시모가 무익한 종이었으나 이제는 유익한 종이라며 ‘나의 심복(심장)’이라는 표현까지 씁니다. 
성경에서는 이처럼 ‘심장’과 같은 관계가 종종 나옵니다. 
첫째, ‘다윗과 요나단’입니다. 다윗에겐 절친이었지만 자신을 죽이려는 사울 왕의 아들, 즉 왕자였던 요나단의 신분 어쩔 수 없이 헤어져야만 했던 그 자리에서, 다윗은 친구임에도 불구하고 엎드려 절하며 헤어집니다. 
둘째, ‘다윗과 세 용사’입니다. 다윗이 전쟁 중 적군 내에 있는 우물물을 원하자, 세 용사는 목숨 걸고 그 물을 떠옵니다. 다윗은 그 물을 그들의 피라고 말하며, 차마 마시지 못합니다. 
셋째, ‘바울과 갈라디아 교인들’입니다. 바울에게 눈이라도 빼어줄 수 있었던 교인들, 그리고 교인들에게 해산의 수고를 아끼지 않았던 바울, 양쪽 모두가 진심이었기에 심장 같은 관계가 될 수 있었습니다. 

•오늘의 기도
존귀하신 하나님 서로가 아끼며 사랑하는 심장과 같은 관계가 되어 하나님의 사명 감당케 하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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