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영혼을 향한 간절함, 포기하지 않는 목회 해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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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영혼을 향한 간절함, 포기하지 않는 목회 해야죠”
  • 이인창 기자
  • 승인 2023.03.23 11:1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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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온하늘교회 연제선 목사 / 캘리포니아노회 노회장

부흥회 때 병마 치유, 온 가족 믿음의 길로
일본서 부흥, 하나님은 미국 목회로 이끄셔
어릴 기적 치유의 은혜를 입은 연제선 목사는 기도의 열매로 목회자가 됐다. 미국 LA에서 그는 한 영혼을 구원하기 위해 최선을 다해 목양일념하고 있다.
어릴 기적 치유의 은혜를 입은 연제선 목사는 기도의 열매로 목회자가 됐다. 미국 LA에서 그는 한 영혼을 구원하기 위해 최선을 다해 목양일념하고 있다.

 

“방법이 없으니 절로 데려가자” 
연제선 목사는 초등학교 1학년 갑자기 걸을 수 없었다. 방과후 교실에서 나와 운동장을 걷는 도중 갑자기 다리에 힘이 빠져 스스르 무너져내렸다. 병원에선 신경마비와 후천성 소아마비라는 진단이 나왔다. 한 달 만에 전신이 마비됐고, 어머니는 어린 아들을 등에 업고 전국을 누볐다. 하지만 소용없었다. 그때 할머니가 온 가족을 불러 모아놓고 했던 선언이 절에 데려가자는 것이었다. 

“할머니가 집안에서 가장 큰 어른이셨고 참 엄하셨습니다. 할머니 말씀에 부모님은 일언반구 할 수 없었어요. 충북 증평에 살았는데, 이후 할머니와 저만 둘이서 암자에 기거했습니다. 할머니는 밤낮으로 불공을 드리고 저는 그저 누워있을 뿐이었죠.”

몇 개월이 지나도 차도가 없었다. 한번은 주지 승려가 할머니와 어머니를 앉혀놓고 “세속에서 빼어내 불적(佛籍)에 넣어야만 살 수 있다”고 말했다. 할머니는 말없이 동의하는 듯 했지만, 어머니는 “남편과 의논하고 아이 먹을 것 좀 먹이고 오겠다”며 일단 하산했다. 어머니는 아들을 업고 산에서 내려오며 “내가 여길 다시 오나 보자, 그럴 바엔 교회 가지” 하는 마음이 절로 들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아들을 그렇게 보낼 수는 없었다. 

“그날 저녁 아버지와 어머니가 저를 누여놓고 울고 있는데, ‘제선이 엄마, 우리 교회 부흥회 하는데 가자’ 하며 이웃 분이 찾아오셨어요. 부모님은 저를 눕혀 두고 나흘 동안 새벽부터 하루 세 번 열심히 예배에 참석하셨어요. 그 때 저에게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부흥회 마지막 날, “예수를 믿기로 작정한 사람은 앞으로 나오라”는 부흥강사의 말에, 부모님은 제일 먼저 뛰어나갔다. 연제선 목사가 장성해 나중에 들은 이야기지만, 어머니는 당시 “예수 잘 믿을 테니 우리 아들만 살려 달라고, 살려주면 목사를 시키겠다”고 서원했다. 
비슷한 시각, 움직일 수 없는 아들은 따뜻한 날씨여서 마루에 눕혀져 있었다. 

“이상하게 몸을 움직이고 싶어 꿈틀거렸습니다. 한 30~40분 몸을 비벼서 겨우 벽에 기대앉았어요. 다시 서고 싶어 2시간 정도 움직였는데 일어서지는 겁니다. 그 순간 대문이 열리고 어머니와 눈이 마주쳤습니다. 성경책마저 떨어뜨리고 저를 향해 달려와 와락 안아주셨습니다. 그러면서 하시는 말씀이 ‘하나님은 정말 살아계시구나’였습니다.” 

집안 전체가 하나님께 향하는 건 당연했다. 할머니는 예배를 빠지지 않는 독실한 신앙인이 됐다. 실은 이미 할머니는 손자 제선이가 교회에 가는 데 관대했다. 몸이 아프기 전 7살 때, 유일하게 교회학교에 가는데도 말리지 않았다. 오히려 누나를 딸려 보내 교회에서 잠들면 업어오라 할 정도였다. 

억지로 얼떨결에 들어간 신학교
“결국 저 때문에 온 집안이 예수를 믿게 됐지만, 오히려 저는 중학교 3학년부터 교회를 나가지 않았습니다. 세상 음악을 하고 싶어 예수님을 떠났습니다. 어느 날 아버지가 교회에 한 시간만 앉아 있다가 오면 원하는 걸 사주겠다고 제안을 하시는 겁니다.”

밑지는 장사가 아니라는 생각에 교회를 다녀와 구두를 얻었다. 낮에는 자고 밤에는 돌아다니는 아들을 보며 속상했을 텐데도 아버지는 일체 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주일에 교회 가면 용돈을 주겠다는 세 번째 제안을 받아들고, 집 앞 개척교회로 다시 나갔다. 그런데 그곳에 아무도 치지 않는 전자오르간을 발견했다. 

“오르간을 왜 안치나요? 나도 건반 칠 수 있는데…” 자신도 모르게 무심코 내뱉은 말에 담임목사는 오르간 열쇠를 내어주었다. 찬송가는 잘 모르지만, 악보를 볼 줄 알고 다양한 악기를 연주할 줄 알았기 때문에 그날로 찬송가 전곡에 코드를 달았다. 교인들이 좋아하는 모습에 주일예배뿐 아니라 모든 공예배와 새벽예배까지 빠지지 않고 연주하는 자신을 발견했다. 

“스스로 “어떡하지? 완전히 엮였구나” 하는 생각이 들 때, 담임목사님이 제 손을 잡고 방배동 총회신학교로 데리고 가셨습니다. 거의 멱살을 잡듯이 입학을 시킨 거죠. 그때만 해도 우리나라에 신학교는 하나밖에 없는 줄 알 정도로 무지했습니다. 술·담배도 다 할 때였는데 입학식 날 쉬는 시간에 담배를 피려는데 구역질이 나는 겁니다. 지금도 담배 냄새를 맡으면 머리가 아파요. 술도 자연스럽게 끊었습니다.”

음악적 재능은 당대 유명 부흥강사들의 집회에 동행하면서 발휘됐다. 때론 부흥회 포스터에 이름이 함께 들어갈 정도로 전국에서 찾는 곳이 많았다. 예배를 드릴수록 믿음은 더욱 성장했고, 찬양으로 섬기면서 학비까지 마련할 수 있어 감사했다.

“불쌍한 사람 구경이나 가자”
하나님께서는 연제선 목사에게 해외에서 사역하고픈 비전을 심어주었다. 신학교 입학을 도와주었던 옛 담임 목회자가 일본으로 사역지를 옮겼고, 그에게 일본으로 와서 사역을 도와달라고 요청했다. 

“교회에서 사역하는데 자매가 고베에 교회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말을 하는 겁니다. 2~3년 전에 고베 한신대지진이 있었는데, 복구가 덜 된 지역이었어요. 고베 유흥가에 800명 정도 불법체류 중인 한국인 여성들이 있다면서요.”

연제선 목사는 고베 산노미야역에 내릴 때 자신을 환영하는 뜻한 느낌을 지금도 기억하고 있다. 여기가 내가 있어야 할 곳이라는 확신이 생겼고, 바로 그곳에 교회를 개척했다. 일본에서 목회가 얼마나 어려운지 아는 사람은 다 안다. 20년 된 교회라면 교인이 20명이라는 말을 할 정도로 척박하다. 그런데 그곳에서 개척 8개월 만에 교인이 40명까지 이르렀다. 

밥 먹으면 전도지 나누고 교회에서 기도만 했어요. 아내가 둘째를 출산하려고 한국에 갔던 수요예배 때 자매 한 분이 참석했습니다. 온 힘껏 말씀을 전했어요.”

여성은 예배 내내 울었다. 설교자 얼굴도 보지 않았다. 축도하고 눈을 떴을 땐 이미 가고 없었다. 연 목사는 주일예배 때까지 세상에서 가장 긴 나흘을 보내며 기다렸지만, 다시 오지 않았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은 죽기 전 마지막 심정으로 교회를 왔다가 본인보다 더 불쌍하게 보인 목사를 보고 다시 살 용기를 얻었다는 것이다.

“불쌍한 사람 구경이자 하자는 듯 새벽예배마다 사람들이 찾아왔어요. 한 달 만에 예배당이 꽉 차 매일 새벽 2시면 집회를 했습니다. 예배당을 확장 이전까지 하며 열심히 했는데 3년 만에 과로로 쓰러졌습니다. 이대론 안 되겠다 싶어 후배 목회자에게 이임하고 미국으로 향했습니다.”

“교회는 하나님이 살아계신 곳”
연제선 목사는 사실 오래전부터 미국에서 더 깊이 신학을 공부하고 싶은 꿈이 있었다. 수술까지 할 정도로 아팠던 몸을 수습하고, 그는 LA에 정착해 공부했다. 부교역자로 11년 동안 사역하면서도 꾸준히 공부도 지속했다. 그러다 11년 전 LA온하늘교회를 개척했다.

“부교역자로 시무하면서 담임목회 청빙도 있었지만, 꼭 개척 목회를 하고 싶었습니다. 일본에서 개척 목회를 중단해야 했던 아쉬움이 늘 있었으니까요. 개척을 마음먹고는 무조건 사임서를 제출하고 가족과 함께 집에서 예배를 드리기 시작했습니다.”

이민 목회는 결코 쉽지 않다. 그러나 그에겐 일본에서 깨달았던 한 영혼을 향한 간절함이 있다. 한 명이든 100명이든 오직 영혼구원에 한 영혼에 초점을 두고 목양하고자 한다. 하고 싶은 목회, 전하고 싶은 말씀을 선포할 수 있어 감사하고 행복하다고 그는 고백한다. 지금은 인도 현지 사역자들이 목회하는 8개 교회도 섬기고 있다.

연제선 목사는 지난 2년 동안 캘리포니아노회 노회장으로 섬겼다. 그는 항상 후배 목회자들에게 포기하지 말라고 격려하곤 한다. 교회는 크고 작으나 하나님이 계시다는 사실을 강조하면서 끝까지 포기하지 말자고 격려한다. 자신에게 들려주듯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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