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의 샘물] 3월 한 달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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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혜의 샘물] 3월 한 달은
  • 이복규 장로
  • 승인 2023.03.02 1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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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복규 장로(서울산성감리교회, 서경대학교 명예교수)
이복규 장로(서울산성감리교회, 서경대학교 명예교수)

“나, 학교 있을 때, 해마다 3월 한 달은 위장 장애로 고생했어.”

얼마 전에 만난 대학 동창의 말이다. 고교 교사로 근무할 때, 3월이 되어 반이 바뀌면, 예전 담임이 일러준단다. 누구누구는 문제 학생이라고 죄다 알려주지만, 내 친구는 싹 무시한 채, 똑같이 대했다고 한다.

선입견 없이, 모든 학생을 똑같이 대하는 것은 물론, 학생과 라포(친밀한 관계)가 형성되기 전에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는 내 친구, 그래서 그랬을까? 이른바 문제 학생들도 이 선생의 말만은 잘 들었다고 한다. 3월 한 달에만 두 번 사고 쳤던 어떤 문제 학생도 1년을 조용히 지냈다고 한다. 다른 학교로 전화했더니만, 다음 해 3월에 그 학교 학생부장이 전화해서, 그 학생이 큰 사고를 쳤는데, 다른 누구와도 대화하기를 거부한다며 도와달라더란다. 찾아가 만나 해결했는데, 그때 그 학생이 한 말이 충격이었단다.

“그동안, 저를 믿어준 사람은 선생님밖에 없었어요. 그 믿음에 배신하지 않으려 1년을 노력했는데…”

그렇게 말하던 그때 그 학생의 말투와 표정과 몸짓은 죽을 때까지 잊을 수 없노라고 했다. 죽어라 공부하지 않고 당구만 쳐서 꼴등이던 어떤 학생도 내 친구한테는 속맘을 털어놓더란다. 그 부친을 만나 당구 시키라고 하자 처음에는 노발대발했으나 진심으로 상담한 결과 허락받았고, 그 학생은 지금 누구나 아는 프로 당구 선수 아무개라고 한다.

친구의 말을 듣는 나도 감동이었다. 내가 물었다.

“그런데 왜 위장 장애가 있었지?”

“한 달간은 말도 조심했어. 그리고는 학생들 하나하나 관찰하느라 초긴장했던 모양이야. 왜 3월마다 위장 장애가 있었는지, 나중에야 알았어.”

나도 교직에 있었으나, 이 말 듣고 많이 부끄러웠다. 교수는 연구를 많이 해야 한다며, 교육에는 그다지 힘을 쏟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미 밝혀진 사실을 전달하는 교사와 달리, 새로운 사실을 밝히는 교수의 책임을 더 중요하게 여긴 결과다. 내가 받은 은사가 그것이라고 생각해 크게 후회하지는 않지만, 학생들 하나하나를 관찰하느라 습관적인 위장 장애로 고생했다는 친구 앞에서는 침묵할 수밖에 없었다.

3월마다 위장 장애를 겪었다는 친구의 이 이야기를 들으면서, 우리 민속의 한 대목이 떠올랐다. 정월 대보름까지, 새해맞이 마을행사(동제)의 책임자가 반드시 목욕재계를 하는 등 일정한 금기를 지키는 관행이 그것이다. 언행을 조심하고, 어류와 육류도 먹지 않고, 술과 담배를 끊으며, 부부가 한 방에 들지 않았다. 한 해 동안 신께서 보호해 주시기를 바라는 마음을 이렇게 표현했다 하겠다. 복음이 들어오기 전, 우리 조상들이 절대자에 대한 신앙을 어떻게 드러냈는지 보여주는 사례인 셈이다. 이른바 자연계시라 하겠다.

내 친구가 새로운 학생들을 맡으면서 말조심도 하고 라포 형성을 위해 노력한 것은, 교육을 신앙으로 승화한 행위라고 여겨진다. 정결한 몸과 마음가짐으로 학생들을 대했다니, 학생들 하나하나를 마치 하나님처럼 생각했는지도 모를 일이다. 젊은 시절에 교회에 나가 열심이었으나, 건축하려고 모은 헌금을 교인 한 사람이 가지고 도망치는 사건을 몇 번 겪으면서, 그만 교회에 환멸을 느껴 발길을 끊고 있다는 내 친구이지만, 지극히 신앙적인 자세로 학생 교육에 임했다고 여겨진다. 교회만 안 나갈 뿐이지, 어쩌면 하나님의 마음으로 학생들을 품고 사랑하는 사람이 아닐까 생각되어, 내 자신을 돌아보게 한다.

한국교회의 미래를 걱정하는 소리가 높다. 목회자들의 책임이 크다. 내 친구가 3월마다 위장 장애를 앓았던 것처럼, 그렇게 양떼 하나하나의 특성을 이해하려 가슴앓이 했던가? 학생들과의 라포(rapport)가 형성되기 전에는 아무 말도 않았던 것처럼, 설교하기 전에 양들과의 소통에 정성을 쏟았던가? 지인들로부터 목회자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여러 소리를 듣곤 한다. 대부분 이 두 가지에 소홀해 생긴 아쉬움이다. 실력만 좋다고 좋은 교사가 아니듯, 설교만 잘한다고 좋은 목회자는 아니다. 새해 3월을 맞으며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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