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지 않는 원통함을 ‘기도의 용광로’에 담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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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지 않는 원통함을 ‘기도의 용광로’에 담으십시오”
  • 곽인섭 목사(서울백석대학교회담임, 백석대학교대학원 교목실장)
  • 승인 2023.03.02 11:3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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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기도성령운동③ - 용광로

기도성령운동은 앞에 나온 여섯 개의 운동들을 가능하게 하는 원동력입니다. 원동력은 힘인데, 이 힘이 ‘어떤 과정으로 생기는가’에 대해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기도성령운동은 용광로입니다. 용광로에서 열이 나오고, 힘을 만들어 냅니다. 그런데 용광로 안에는 좋은 것만 들어가는 것이 아닙니다. 나쁜 것, 더러운 것이라도 용광로 안에 들어가면, 뜨거운 열과 강력한 힘을 만들어냅니다. 이런 차원에서 기도성령운동은 ‘용광로’입니다.

우리가 기도하는 내용을 보십시오. ‘제대로, 진심으로’ 기도할 때의 내용을 보십시오.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를 위해서만 기도하지 않습니다. 때로는 마음이 너무 상해서 기도합니다. 너무 불안해서, 너무 두려워서 기도합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기도의 용광로에 들어가기만 하면, 불안, 두려움, 염려가 녹아서 ‘새로운 힘으로’ 변합니다. ‘믿음으로 살아갈 힘’이 생깁니다. 기도성령운동은 ‘용광로’입니다. 눈에 보이는 원동력은 보이지 않는 용광로에서 만들어집니다.

어릴 때 <꼬마 자동차 붕붕> 이라는 만화영화가 있었습니다. 엄마를 찾아서 세계를 여행하는데, 신기하게도 꽃향기만 맡으면 힘이 솟습니다. 기도는 이런 것이 아닙니다. 기도한다고 곧바로 힘이 생기는 것이 아닙니다. 녹아져야 합니다. 나의 죄가 녹아지고, 나의 아픔이 녹아지고, 상처와 슬픔과 분노가 기도의 용광로 안에서 녹아지는 과정을 통해서, 원동력, 힘이 발생하는 것입니다. 기도는 용광로입니다. 눈에 보이는 원동력은 보이지 않는 용광로에서 만들어집니다.

이런 차원에서 누가복음 9장 23절은 기도성령운동에 관하여 매우 중요하고, 실제적인 말씀입니다. “아무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좋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따라갑니까?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 심각해집니다. 예수님을 따라가자, 예수님을 닮아가자, 세상의 소금과 빛이 되자 … 말로 할 때는 쉽습니다. 그런데 실제로 그렇게 살아가는 것은 힘듭니다. 구차해집니다.

‘세상의 소금과 빛’이라고 하는데, 제일 가까이에 있는 세상은 가정, 직장입니다. 멀리 있는 가난한 나라 아이들을 돕는 것을 어쩌면 어렵지 않습니다. 하고 나면 폼도 납니다. 그러나 가까이에 있는 배우자를 사랑하는 것, 가까이에 있는 직장 동료, 상사를 위해 소금과 빛이 되고, 자기를 부인하는 것은 너무 힘듭니다. 하기도 싫고, 하고 나서도 별로 표도 안 납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기도하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의 십자가를 지는 것은, 기도 없이는, 성령의 역사가 우리 마음에 일어나지 않고서는 불가능합니다.

19세기 영국의 경건한 목회자요 신학자였던 J. C. 라일이라는 분이 이런 말을 했습니다. “죄는 기도를 죽이고, 기도는 죄를 죽인다”(J. C. 라일), 기도가 안 되는 이유가 여러 가지가 있는데, 그 중에 하나는 ‘죄’입니다. 그러나 아무리 더러운 죄라도 기도의 용광로 속에 들어오면, 힘으로 바뀝니다. 눈에 보이는 원동력은 보이지 않는 용광로에서 만들어집니다.

“나는 사랑하나 그들은 도리어 나를 대적하니 나는 기도할 뿐이라(시 109:4)” 나를 공격하고 미워하는 대적이지만, 사랑하려고 애를 씁니다. 그런데 돌아오는 것은 복수와 비난과 음모입니다. 이때 하나님의 사람들이 하는 대답이 바로 이것입니다. “나는 기도할 뿐이라”, 그런데 시편 109편을 끝까지 읽어보시면, ‘나는 기도의 사람입니다’ 라고 멋지게 말하고 나서, 대적들이 잘못되는 것, 아픔을 겪는 것들을 간구합니다. “그의 연수를 짧게 하시며 그의 직분을 타인이 빼앗게 하시며 그의 자녀는 고아가 되고 그의 아내는 과부가 되며(시 109:8~9)”

기도의 사람이라는데, 무엇을 기도하는가 보니까, 상대방이 고생하도록 기도하는 것입니다. 실망입니다. 그러나 이것이 기도입니다. 나의 원통함, 나의 분노를 하나님 앞에서 쏟아 놓는 것입니다. 내 속에 있는 이 더러운 것들을 기도의 용광로에 집어넣는 것입니다. 사람에게 갚아주지 말고, 기도의 용광로에 넣는 것입니다. 그렇게 할 때, 나를 대적하는 사람들 속에서 믿음으로 살아갈 힘, 원동력이 생겨나는 것입니다.

아무리 더러워도, 아무리 나약해도, 기도의 용광로 속에 집어넣기만 하면, 그 약하고 더러운 것이 능력으로 바뀔 수 있습니다. 기도는 용광로입니다. 눈에 보이는 원동력은 보이지 않는 용광로에서 만들어집니다. 기도성령운동은 용광로입니다. 개혁주의생명신학 연재를 마칩니다. 제가 바라본 목표는 한 가지였습니다. 개혁주의생명신학이 성도님들과 교회에 가까워지는 것입니다. 부족함이 많은 글을 읽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여러분의 영혼과 섬기시는 교회 가운데, 예수생명 예수생활의 축복이 더 풍성해지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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