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덜란드 개혁교회·한국 선교지 분할 협정에서 갈등 줄인 선례
꿈에 그리던 통일 이후를 상상해보라. 상황은 생각만큼 희망만 가득하지는 않다. 수십 년 만에 이룬 분단의 종결에 찾아온 벅찬 감동과는 별개로 눈앞에 마주하게 될 것은 냉정한 현실이다.
우리보다 상황이 나았던 독일조차 휘청거리게 만든 경제 격차. 서로 다른 체제로 수십 년을 살아오며 생긴 문화와 생활의 간극. 사실상 언어를 제외하곤 다른 국가라고 해도 무방할 정도의 차이다. 서로를 이해하지 못한데서 오는 남북의 갈등이 통일 이후에도 또 다른 분단을 이어가게 할지도 모를 일이다.
누구보다 통일을 염원하며 북한에 자유로이 복음을 전할 수 있기를 염원하는 한국교회 역시도 안일하게 장밋빛 미래만을 그려서는 안 된다. 통일 이후 북한교회를 세우는 과정에서 발생할 혼란에 철저한 대비가 필요하다는 얘기다.
한국세계선교협의회(사무총장:강대흥 선교사·KWMA)는 지난 24일 여전도회관 리루이스홀에서 ‘통일 이후 북한교회 재건관련 한국교회 선교 전략 일치를 위한 컨설테이션’을 개최했다. 이날 현장에서는 안인섭 교수(총신대)가 ‘북한교회 재건 3원칙의 의미와 한계’, 변창욱 교수(장신대)가 ‘선교지 분할 정책 합의과정에서 교단의 역할이 주는 시사점’을 주제로 각각 강의했다.
성경적 원칙이 바탕
이보다 앞서 통일 이후 북한에 어떻게 교회를 세워야 할지 고민한 움직임이 있었다. 1995년부터 1998년까지 한국기독교총연합회를 중심으로 이뤄진 이른바 ‘북한교회 재건운동’이 그 주인공이다. 당시 한국교회는 통일 이후를 대비해 ‘북한교회 재건을 위한 3대 원칙’을 세웠다.
당시 세운 원칙에서는 △북한교회 재건은 모든 교단이 연합해서 할 것 △북한에는 하나의 교단을 세울 것 △북한교회를 도와 그들 스스로 교회를 재건하는데 앞장서게 할 것 등을 강조했다. 통일 이후 한국에 존재하는 교단들이 너도나도 북한으로 밀려들어 혼란을 야기하고 경쟁해 덕을 이루지 못하는 사태를 방지하기 위해서였다.
안인섭 교수는 “보수적인 교단이 모인 한기총이 통일과 북한교회를 위한 방향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역사적인 가치가 크다. 또 북한교회 재건을 감당할 남한교회의 문제점과 한계를 명확하게 인식하고 있다”면서 “역사적으로나 실제적으로나 매우 놀라운 공헌이 아닐 수 없다”고 평가했다.
하지만 북한교회 재건운동이 전개됐던 1995년과 지금의 2023년 사이에는 약 30년이라는 간극이 있다. 한국과 한국교회의 상황은 물론이고 북한 내부 상황과 남북관계까지 모든 것이 달라졌다. 북한교회 재건을 위한 새로운 시각과 접근이 필요해진 것이다.
안 교수는 한국교회보다 훨씬 오랜 역사를 간직한 서양 교회사를 살펴보며 북한교회 재건의 힌트를 얻을 것을 제안했다. 그는 특히 16세기 당시 세계 최강국이었던 스페인과 로마 교회의 가혹한 박해 가운데서 세워진 네덜란드 개혁교회의 모습에 주목했다.
그는 “1571년 독일 북쪽의 항구 도시 엠던에서 개최된 엠던총회는 네덜란드 개혁교회가 지속적으로 존재할 수 있도록 힘을 실어줬다. 엠던총회에서 참가자들은 53개의 주요 조항과 25개의 특별 조항에 합의했는데 교회 안에 계층적 위계질서가 없어야 한다는 점이 골자였다. 회중을 초월하는 총회의 결의에 구속력을 부여하면서도 개교회 공동체의 자유를 보장하는 조항 덕분에 네덜란드 개혁교회가 든든히 세워질 수 있었다”면서 원칙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네덜란드 개혁교회가 세워지는 과정을 통해 북한교회 재건에 적용할 원칙을 발견한 안 교수는 “북한교회 재건은 기독교 역사의 보편성과 특수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한다. 무엇보다 복음의 보편적 가치를 담아내는 성경적 관점을 합의된 출발점으로 삼아야 한다”면서 “북한교회 재건의 방향은 정치적 이데올로기나 특정 정파에 함몰되어서는 안 된다”고 조언했다.
또 “북한지역이 정전 이후 외부와 단절된 지 70년이 지났다. 이런 상황에 북한에 교회를 재건한다는 것이 어떤 의미가 있는지 신학적으로, 그리고 사회적으로 점검해봐야 한다”면서 “강남이 개발되기 이전인 1980년대 이전의 서울과 이후의 서울은 극과 극의 차이다. 이 지역에 교회를 세운다는 것의 의미도 시대에 따라 달라졌다. 정전 이후 북한지역의 사회적, 경제적 변화를 살펴보고 고려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이어 “디아코니아 신학이 필요하다. 북한교회 재건운동은 그 기본에 섬김의 신학, 즉 디아코니아 정신이 있다. 북한의 형제, 자매들을 섬기기 위해 청지기 정신으로 우리가 가진 것을 나눠야 한다”면서 “통일 이후 예상되는 혼란 가운데 기독교인들과 한국교회, 그리고 북한에 세워질 교회는 양극화를 넘어 갈등을 중재하는 평화의 상징이 돼야 할 것”이라고 전했다.
교파 갈등은 금물
북한교회 재건에 있어 가장 큰 걸림돌은 다름 아닌 한국교회 내부에 있다. 수백 개에 이른다는 한국교회의 교단들이 연합과 일치를 이루지 못하고 경쟁적으로 북한 땅에 달려든다면 그것이 가져올 혼란은 불 보듯 뻔한 일. 어렵게 이룩한 통일 한국에서 교회가 갈등의 단초가 된다면 복음 전파에도 긍정적 영향을 끼칠 리 없다. 이 때문에 지난해 12월 8일 열린 북한교회 재건을 위한 첫 번째 원탁모임에서 박종순 목사는 “선점을 위한 경쟁의 과열이 가장 심각하게 우려된다. 지금 한국과 선교지에서 일어나는 현상이 북한에서도 일어나지 않으리란 법이 없다”고 경고했다.
다행히 우리에게는 신앙의 선배들이 남겨놓은 유산이 있다. 멀리 갈 것도 없이 한국교회 역사 안에서 찾을 수 있다. 구한말 우리 땅을 찾았던 선교사들도 중복 투자와 경쟁으로 골머리를 앓았다. 당시 선교사들은 선교구역 분할 협정이라는 대안을 찾아냈다.
변창욱 교수는 “당시 한국에 가장 많은 선교사를 파송한 곳은 미국 북장로회와 북감리회였다. 이밖에도 미국 침례교, 구세군, 동양선교회(성결교회 전신) 등이 선교사를 파송했다”면서 “선교지 분할은 여러 선교부가 같은 선교지에 들어가면서 야기될 수 있는 갈등을 피하고 선교비와 선교 인력의 낭비를 줄이기 위해 계획됐다”고 설명했다.
처음엔 어려움도 있었다. 1888년에 미국 북장로교와 북감리회, 이른바 장·감 선교부는 교인 쟁탈사건으로 갈등을 빚었다. 하지만 갈등은 연합의 씨앗이 됐다. 같은 해 2월 한국 장로교인들의 제안으로 연합기도주간을 함께 가졌고 3월부터는 선교지 분할 문제를 논의하기 시작했다.
변 교수는 “선교지 분할 정책은 서로 다른 교파가 적이나 경쟁자가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복음을 위해 함께 일하는 동역자라고 인식했기 때문에 가능했다. 그래서 아펜젤러는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는 신앙고백과 세례를 받아들인다면 적어도 선교지 분할 문제에 있어 장로교와 감리교의 교리적 차이는 고려하지 말자고 제안했다”고 말했다.
한국에 들어온 여러 서양의 선교부가 갈등과 중복투자를 피하기 위해 논의한 선교지 분할 협정은 통일 이후의 북한교회 재건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변 교수는 “북한에 하나의 개신교단을 세울 것인지 분열된 교회를 세울 것인지 결정해야 한다. 또 북한교회 세우기에 함께 할 교단과 배제시켜야 할 이단 사이비들을 구분하는 작업도 필요하다”면서 “무엇보다 교파를 초월해 하나님 나라 확장의 관점에서 북한교회 세우기 운동이 추진돼야 하며 북한 사람들에게 혼란을 줄 수 있는 교파 간 경쟁적 교회건축이나 교파 교회 확장에서 벗어나 하나님의 교회를 세워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북한교회 재건을 위해 한국교회의 합의가 필요한 것은 사실이지만 북한교회의 주체는 북한 기독교인들이라는 사실을 망각해서는 안 된다. 그는 “남한교회끼리 나눠 먹기식, 혹은 자기몫 챙기기로 비춰져서는 안 된다. 점령군처럼 행세할 것이 아니라 북한교인들이 주도적으로 교회를 세워나가게 해야 한다. 이를 위해선 탈북 목회자와 신학자들의 목소리에 경청하는 일이 필요하다”고 요청했다.
그는 또 “북한교회 세우기 운동은 한국교회가 그동안 보여준 수많은 분쟁과 분열의 모습을 해소하고 일치된 모습을 보여줄 수 있는 마지막 기회가 될 수 있다”면서 “북한교회 설립을 준비하는 동안 북한의 절실한 필요를 채우는 사회복지 사업은 교단 연합으로 추진할 수 있다. 북한교회 세우기 운동을 구체화하기 위한 초교파 상설기구를 구성하는 것도 방법”이라고 제안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