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는 가장 성경적이면서 동시대적이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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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는 가장 성경적이면서 동시대적이어야 한다”
  • 이인창 기자
  • 승인 2021.03.16 14:2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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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목회포럼, 지난 12일 제17-1차 정기포럼 개최
지구촌교회 최성은 목사, ‘존 스트토’의 생애 조명
복음 증거와 사회 참여 간 균형을 강조했던 신학자
존 스토트, 변하는 세상에서 변하지 않는 복음 강조
미래목회포럼은 지난 12일 정기포럼을 개최하고, 코로나19 이후 한국교회가 나아가야 할 길을 모색했다. 지구촌교회 최성은 목사는 로잔언약 초안자 존 스토트의 생애를 조명하면서 방향을 제안했다.
미래목회포럼은 지난 12일 정기포럼을 개최하고, 코로나19 이후 한국교회가 나아가야 할 길을 모색했다. 지구촌교회 최성은 목사는 로잔언약 초안자 존 스토트의 생애를 조명하면서 방향을 제안했다.

코로나19로 혼돈의 시간을 보내고 있는 한국교회가 어디로 나가야 할지 고민이 깊다. 포스트 코로나 시대를 대비해야 한다는 주장은 팬데믹 상황이 발생한 지난해부터 각계에서 제기되어 왔다. 미래를 예측하고 대응하기 위한 흥미로운 상황 인식과 전략들은 지금도 계속 쏟아져 나오고 있다. 
특별히 코로나19를 겪으면서 한국교회가 직면하게 된 위기는 더욱 커져가는 듯 보인다. 과연 해법은 어디에 있는 것일까? 

미래목회포럼(대표:오정호 목사)이 지난 12일 서울 코리아나호텔에서 ‘존 스토트(John R. W. Stott)와 로잔언약(Lausanne Covenant), 그리고 한국교회가 나아가야 할 길’을 주제로 정기포럼을 개최하고 해법을 모색하는 시간을 가졌다. 

보수적이면서 근본주의 배격했던 신학자
포럼에서 발제를 맡은 지구촌교회 최성은 담임목사는 영국의 저명한 신학자이자 목회자였던 존 스토트(1921~2011)의 생애와 사역 가운데 한국교회가 적용할 만한 시사점을 제시했다. 최 목사는 생전 존 스토트 목사를 직접 인터뷰 하고 그에 대해 박사학위 논문을 쓴 바 있다. 

최 목사에 따르면 존 스토트 목사는 복음 증거와 사회 참여의 균형을 강조한 인물이다. 특히 복음주의에 기반한 적극적인 선교 정책을 밝힌 ‘로잔언약’의 초안자로 잘 알려져 있다. 1974년 스위스 로잔에서 개최된 세게복음화국제대회에서는 빌리 그래함 목사를 비롯해 전 세계 150개국 대표들이 참석해 로잔언약에 합의하고 서명했다. 자연스럽게 로잔언약에는 초안자 존 스토트 목사가 신앙과 신학이 고스란히 담겨 있을 수밖에 없다. 

최성은 목사는 “존 스토트는 제임스 패커처럼 신학적 식견이 있으면서, 빌리 그래함처럼 대중적인 설교가였다. 보수적인 면이 있으면서도 근본주의를 배격하고, 전통적 영국 성공회 신자면서 사회 참여에도 앞장섰다”면서 “복음주의자면서 자유주의자들과 대화나 토론을 주저하지 않았던 금세기 최고 복음주의자”라고 호평했다. 

실제 존 스토트 목사는 유명한 신학자이면서 30년 동안이나 한 지역에서 목회를 했다. 

최성은 목사는 “그의 영향력이 커졌던 것은 오랜 목회로 사람들에게 친근해 마음을 울렸고, 모든 사역을 성경 중심으로 복음적 강단에서 전하려고 했기 때문”이라며 “이런 것들이 로잔언약이 신학적, 목회적 균형을 갖추는 데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존 스트토 목사가 선구자적 목회 방식을 도입한 것은 관심을 끄는 대목이다. 1940년대에는 의료인들을 위한 예배, 교구 내 백화점에서 예배하는 오늘날 직장인 예배도 도입했다. 그 만큼 복음을 전하는 목회자로서 의지가 강했다.

1950년대에는 전도하고 싶은 사람들을 교회로 초대하는 예배도 시작했다. 미국에서는 1970년대에 알려진 새신자 초청 예배보다 훨씬 앞서 도입한 것이다.  

코로나19를 겪으면서 더 이상 복음을 전하는 것이 거의 어렵게 되었다는 패배적 생각이 늘고 있다. 최성은 목사는 “존 스트토는 시대가 어떠하든 개인 전도는 중요하고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명령이라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 전도에 대한 관심을 여전히 한국교회는 키워야 한다”고 전했다. 


“양극화 해소가 그의 사명이었다”
우리 사회만큼이나 한국교회 안에서도 양극화가 심화되고 있다. 대화는 단절되고 소통은 불가능하다고 단정하는 분위기다. 그런데 존 스토트는 앞서 언급한 것처럼 누구와든 대화하는 것을 주저하지 않았다. 또 젊은 세대들을 키워내기 위해 청소년들에 대한 멘토링 사역을 지속적으로 실시했고, 제3세계권에 대한 선교적 관심도 강했다. 

최성은 목사는 “지금에도 교회가 적용할 수 있는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존 스토트는 이미 30~40년 전부터 노력했고, 특히 양극화 해소를 자신의 사명으로 생각했다”면서 “다양성이 가득한 사회 속에서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구원을 얻는다’는 중심을 잃지 않으면서, 사회적 이슈에 대해서는 균형적 방향을 제시하기 위해 애썼다”고 평가했다. 

또 “존 스토트는 기독교는 ‘가장 성경적이면서 가장 동시대적이어야 한다’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복음이 가진 능력에 대한 확신을 가지고 있었고, 변화하는 세상에서 변화하지 않는 복음을 전하고자 했다. 문화 평등사상과 평화주의자로서 선교 개념을 구체화했다”고 전했다. 

그는 극단적이고 일방적인 단절을 싫어했던 듯 보인다. 일례로 영국 성공회에 자유주의 신학의 물결이 들이닥치자 당대 마틴 로이드 존스는 영국성공회를 탈퇴해 새 교단을 만들고자 했다. 반면 존 스토는 목사는 성공회 내부에서 개혁하고자 했다. 당시 40대 중반의 성공회 의장이었던 그는 마틴 로이드 존스의 제안을 단호히 반대했다. 최 목사는 “제임스 패커까지 존 스토트에 동의하면서, 그 충격으로 마틴 로이드 존스는 역사 속으로 사려져갔다”고 평가했다. 

복음주의의 갈 길 ‘로잔언약’ 초안
무엇보다 존 스토트는 로잔언약을 초안하면서 이 시대 복음주의가 나갈 방향을 제시했고 이 시대 한국교회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2차 세계대전 이후 기독교 진영은 근본주의, 자유주의, 혼합주의, 다원주의, 세속주의 등 혼돈과 도전에 직면했다. 다원주의 도전과 성경 비평, 이성과 합리를 가지고 성경의 기적으로 부인하는 분위기가 팽배해졌다. 

이런 혼돈 속에 놓인 교회가 어디로 가야 할지 존 스토트는 로잔언약으로 이정표를 만들어냈다. 

최 목사는 “근본주의 심화와 자유주의 사이에서 복음주의가 갈 길을 제시해야 할 역사적 필요가 있었다. 1974년 로잔언약은 특별히 이 시대 가장 분명하면서도 포괄적인 선언문을 만들어냈다는 평가를 받는다”며 “특히 변하는 세상 속에서 변하지 않는 성경적 관점을 로잔언약에 담으려고 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존 스토트의 한계도 엄연히 존재한다. 서구주의 배경에서 벗어나지 못했고, 영국 사회를 변혁시키는 데 실패한 것이다. 또 신학적 견해 중 스스로 변명할 정도로 비판을 받을 만한 발언도 있었다. 

최성은 목사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존 스토트에서 한국교회가 배울 수 있는 시사점은 분명히 존재한다면서 “보수 성향의 복음주의자면서 사회문제에 관심을 갖고, 자유주의자와도 기꺼이 대화했던 존 스토트를 배워야 한다”며 “존 스토트가 가졌던 한계를 극복하며 아시아와 서구를 아우를 수 있는 한국적 신학을 만들어가야 한다”고 제안했다. 

무엇보다 “개인에 대한 복음 전도에 대한 관심을 코로나19 이후 시대에 한국교회가 더욱 키워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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