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박마을 외로운 이방인들의 자녀 돌보는 어느 전도자
상태바
함박마을 외로운 이방인들의 자녀 돌보는 어느 전도자
  • 인천=이인창 기자 
  • 승인 2020.12.08 18:2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고려인 3세 최마리안나 선교사(CIS선교센터 센터장)

인천 연수구 문학산 아래 함박마을은 고려인만 약 5천명이 살고 있다. 대부분 중앙아시아 국가에서 입국한 사람들이다. 고려인은 주로 러시아어를 사용하는 한민족 동포이면서도, 이 땅에서 이방인으로 살아가고 있다. 고려인들이 함박마을에 모여 사는 이유는 간단하다. 보증금이 없거나 월세가 저렴하기 때문이다. 

고려인들은 돈을 벌기 위해 아침 일찍 출근해서 저녁 늦게야 퇴근하는 고된 일상을 매일매일 살아내고 있다. 문제는 방치될 수밖에 없는 아이들이다. 그 아이들을 위해 인천 연수구 한 상가 4층에 ‘CIS선교센터’를 세워 이끌어가고 있는 고려인 3세 최마리안나 선교사가 있다. 그녀는 어떻게 인천까지 와서 고려인 아이들을 돌보고 복음을 전하고 있는 것일까?

고려인 3세 최마리안나 선교사는 오로지 복음을 전해야 한다는 사명으로 ‘CIS선교센터’ 이름을 포기하지 않고 있다. 선교센터에서 아이들은 예수를 믿고, 고국 생활을 준비하고 있다.
고려인 3세 최마리안나 선교사는 오로지 복음을 전해야 한다는 사명으로 ‘CIS선교센터’ 이름을 포기하지 않고 있다. 선교센터에서 아이들은 예수를 믿고, 고국 생활을 준비하고 있다.

예수님을 처음 만나 뜨거워진 마음
최마리안나 선교사는 우리말에 꽤 능숙하다. 우즈베키스탄에서 태어나 어머니의 고향 타지키스탄에서 성장했고, 처음에는 다른 고려인 3세들처럼 한국어에 서툴렀다. 이슬람 배경에서 성장한 탓에 기독교 신앙을 갖지도 않았다. 그런 그녀에게 어느 날 복음이 찾아왔다. 

구 소련이 붕괴되면서 1990년대 초반 중앙아시아 국가마다 많은 해외 선교사들이 찾아왔다. 청소년기를 보내던 그녀가 살던 곳에도 1993년 한국계 미국인 선교사 한명이 찾아왔다. 

“그 때 복음을 처음 들었습니다. 같은 마을에서 예수를 믿게 된 사람들이 많았고, 그 가운데 우리 가족도 있었습니다. 예수님에 대해 처음 들은 후 궁금한 것들이 마구 생겨서 교회를 찾아갔어요. 성경 말씀을 읽으면 읽을수록 깊이 다가오는 거예요.”

예배를 드리면 마음이 뜨거워졌다. 감격스러웠다. 선교사님이 추천해 주어서 신학을 공부하게 됐고, 1995년 하나님께 삶을 내어드리기로 결단했다. 하나님의 본격적인 훈련이 시작되었고 신학 공부와 함께 한국어 공부도 그 때에야 할 수 있었다. 

“전도 못해 한국이 얼마나 답답하던지”
최마리안나 선교사가 대한민국에 정착한 것은 2012년이다. 1997년에는 한국에서 태권도 선교사로 파송 받았던 남편을 만나 결혼 했고, 세 자녀를 낳아 기르면서도 타지키스탄 영혼 구원을 위해 열심히 사역했다. 

현지에서 교회 사역에만 매진하던 그녀가 한국에 정착했을 때 불편함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무엇보다 무슬림 국가에서 왔는데 대한민국에서 신앙적인 부분에서 답답함이 컸다는 말은 듣는 이를 의아하게 했다. 

“결혼한 이후 한국에 여러 번 왔었지요. 그 때에도 여기서 살기 힘들겠다는 생각을 했거든요. 타지키스탄은 내전도 일어나고 경제상황도 좋지 않았어요. 한국에 비하면 생활 여건도 불편한 것이 많죠. 그런데도 한국에서는 마음이 불편했어요. 전도를 해야 하고 사역을 해야 하는데 그걸 못하니까 너무나 힘들었습니다.”

무슬림 국가에서 살았던 그녀가 무한한 신앙의 자유가 있는 대한민국이 더 답답했다는 것은 아이러니이다. 타지키스탄에서 온통 사역에 매달렸던 최 선교사에게 한국 문화와 환경은 낯설었다. 한국어가 많이 늘었지만 이방인 티가 나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할 수 있는 것은 하나님께 기도로 매달릴 수밖에 없었던 한국 생활 초창기였다. 

“밤이건 새벽이건 불이 켜져 있는 교회를 찾아가 문이 열려 있으면 아무 곳에나 들어가서 기도했습니다. 고향에서는 매일 저녁이면 예배를 드렸습니다. 전도하고 싶은 열정이 넘쳐나는데 못하니까 우울한 마음이 컸던 때였지요.”

그런데 하나님은 큰 계획을 가지고 있었다. 우리나라에 의료관광을 위해 찾아오는 러시아권 사람들이 많아지면서 환자들을 위한 안내 직원으로 취업을 하게 됐다. 생활비를 버는 기쁨보다 복음을 전할 수 있는 만족감이 더 컸다.

“몸이 아파서 온 사람들인데, 저를 절대적으로 의존할 수밖에 없잖아요. 이미 갈급한 마음이 준비되어 있는 분들에게 조심스럽게 복음을 전하면 잘 받아들였어요. 마음이 없어도 주말에 교회에 따라가곤 했습니다. 치료를 위해 손을 붙들고 한없이 울며 기도했던 분들이 예수를 믿고 지금까지 연락을 하고 있기도 해요.”

3년 동안 일하면서 최 선교사는 한국어와 한국 문화를 더 깊숙이 이해하고 적응할 수 있게 되었다. 십자가가 그렇게 많아 좋았는데, 믿음의 열정이 채워지지 않았던 한국에서 비로소 하나님의 뜻을 발견할 수 있었다. 

CIS선교센터는 방치될 우려가 있는 이 땅 이주 노동자들의 자녀들을 돌보며 복음을 전하는 소망의 터전이 되고 있다. 

다시 시작된 열정의 선교사역
최마리안나 선교사의 공식 직함은 CIS선교센터 센터장이다. CIS는 구 소련 붕괴 이후 일컬어졌던 독립국가연합의 약자. 최 선교사는 2017년부터 기도로 준비해오다 지난해 문을 열고 중앙아시아에서 온 이주 노동자들의 자녀들을 돌보고 있다. 

“외국인 노동자 분들은 아이를 맡겨야 일을 할 수 있지만 정부 보조금을 전혀 받지 못합니다. 일반 어린이집에 보내려면 40~50만원이나 필요합니다. 말도 통하지 않고 일찍 출근해야 하기 때문에 난감하기만 하죠. 그런 부모들을 위해 선교센터를 시작했습니다.”

인천 연수구 함박마을에 사는 부모들은 검단, 김포, 더 멀리는 안산까지 일을 하러 다닌다. 이른 아침이면 차량을 운행해 아이를 데리고 와 저녁 7시 이후까지 돌보면서 35만원의 원비만 받고 있다. 아침 6시에 잠든 채 온 아이를 보고 싶어 하는 부모들…. 교사들은 순간순간 사진을 찍어 부모에게 보내준다. 교사 한명이 22명 아이의 밥을 먹이고 약을 먹이고 힘들지만, 부모들이 아이의 성장을 볼 수 있는 거의 유일한 방법이다. 

“우리 선생님들에게 늘 미안하고 마음이 아프죠. 월급도 아주 적은데 일은 많고 정작 본인 가족을 돌보기 어려우니까요. 부모님이 딸의 비전을 믿어주시고, 주방에서 음식을 하시고 차량운행을 해주시기 때문에 어렵지만 선교센터를 이끌어갈 수 있는 것 같습니다.”

남편 선교사는 무슬림권 국가에서 여전히 태권도로 복음을 전하고 있는 사이, 최 선교사는 함박마을 이방인들에게 예수님의 사랑을 나누고 있다. 

재미있는 것은 현재 선교센터에서 일하는 교사 5명 중 4명이 최 선교사가 타지키스탄 교회에서 직접 전도하고 양육했던 제자들이라는 사실이다. 모두 흩어졌다가 우연한 기회에 인천에서 만난 것이다. 이런 것을 기적 같은 일이라고 해야 할까. 그렇기 때문에 더 끈끈하게 어려운 가운데 사역을 감당할 수 있다. 종교가 무슬림인 부모들도 선교센터인 줄 알면서 자녀를 보내게 되고, 그들의 문화를 존중하는 가운데 조심스럽게 마음을 나누고 있다. 

CIS선교센터는 고국에서 적응할 수 있도록 러시아어와 현지 교육과정을 적용하고 있다. 

포기할 수 없는 이름 ‘CIS선교센터’
외국인 노동자들의 자녀들을 주로 가르치고 있지만, 다문화 가정에 대한 정책과 제도가 많은데 정부나 지방자치단체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것 아니냐고 물었다. 실제로 가능한 부분이 있었다. 단 조건이 필요하다. ‘종교시설’이어서는 안 된다. ‘미션센터’라는 이름만 사용하지 않아도 될 일이다. 지원도 해봤지만 역시나 예상했던 대로 거절됐다.

“서류만 바꾸면 되지만 포기하기로 했습니다. 선교센터는 예배를 드리고 복음을 전하는 곳이어야 하잖아요. 하나님께서 우리의 여건을 아시고 응답해 주실 것을 믿습니다. 부모님들과 학교를 위해 기도하니까 교실 공간을 계속 주셨습니다. 먼저 계획하지 않지만 주님은 그 때마다 필요를 아시고 채워주셨습니다.” 

지금은 아이들이 돌아가게 될 고국에서 잘 적응할 수 있도록 러시아어와 현지 교과과정을 가르치고 있다. 실제 선교센터에서는 꼬물꼬물 7세 미만 아이들이 각 반에서 선생님들과 수업을 하고 있었다. 복도 건너편에서는 초등학생들이 맑디맑은 눈망울로 수업에 열중하고 있었다. 시간이 갈수록 입학을 희망하는 학생들이 늘어 고민이고, 학비를 내지 못하는 부모들도 많아져 당장 운영 상 어려움도 겪고 있지만, 최 선교사와 교사들의 열정은 절대 꺾이지 않을 기세다. 기도하면 되기 때문이다. 늘 동행해주는 소중한 인연들이 있기 때문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
이슈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