즐거운 ‘축제로서의 예배’로 갱신 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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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거운 ‘축제로서의 예배’로 갱신 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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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4.08.27 17: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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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배 갱신에 있어서 개혁신학의 가치와 정신을 놓쳐서는 안 된다. 성경의 원리와 가르침을 절대로 놓쳐서는 안 된다. 예배 갱신을 하자는 것은 현대의 시류와 타협하자는 것이 결코 아니다. 기도, 찬양, 말씀, 봉헌, 성도의 교제 등 다섯 가지 요소는 절대 빠져서는 안 된다.
의식은 내용을 담는 그릇이다. 그러므로 의식도 경건해야 한다. 내용만 중요시하고 의식을 등한시 하면 안 된다. 예배 의식을 존중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예배 갱신을 한다고 해서 너무 지나치게 감성적이고 자유분방해서 질서가 없으면 안 된다. 개혁주의적 예배의 경건성을 담보할 수 있는 바른 의식이 있어야 한다.
그러나 예배의 본질이 지켜지고 개혁신학적 정신이 담보된 예배를 드린다 할지라도, 성도들이 은혜 받지 못하고 공감하지 못하는 예배는 외면 받을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현대 성도들과 소통하고 예배를 활력 있는 분위기로 만들기 위해서는 다양한 음악 장르나 영상 등 여러 도구를 효과적으로 활용할 수 있다고 본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예배의 본질과 정신을 더 드러내기 위한 보조 수단으로 사용돼야지, 결코 그 자체가 목적이 되어서는 안 된다.
예배의 중심은 하나님이시다. 그러므로 모든 예배는 하나님을 향해야 한다. 구약에서도 예배라는 말이 히브리어로 ‘야레’(하나님을 경배한다), ‘샤하’(무릎을 꿇고 엎드리다), ‘아바드’(종이 주인을 섬기다)라는 세 가지 단어로 쓰였다. 이 역시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고 경배하며, 노예가 주인을 섬기듯이 섬긴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 그러므로 예배는 하나님 앞에 엎드려 절하는 것이다. 구약에서 희생제물을 드린 것처럼 우리 자신이 제물로 드려지는 심정으로 희생의 예배를 드려야 한다.
그러나 예배에는 또 한 가지 요소가 있다. 그것은 바로 축제적 요소다. 구약에서도 화목제 같은 경우는 축제와 나눔의 요소가 있지 않는가. 그래서 요즘은 예배학자들 가운데도 예배는 하나님을 향하여 절하고 경배하는 요소도 있지만, 동시에 축제의 요소도 있다고 말한다. 회중이 예수님의 부활에 동참하고, 구원의 즐거움을 누리며,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를 만끽하고 경험하는 축제와 교제의 장이 되기도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요즘 예배를 축제가 되게 하라고 주장하는 학자들이 있다. 성경적으로 틀리지 않는 생각들이다.
예배를 경건하게 드려야 한다고 해서 무겁고 조용히 드리는 예배를 주장하는 이들이 있는데, 이는 잘못된 생각이다. 경건의 진정한 의미가 무엇인가? 하나님을 하나님 되게 섬기고 예배하는 옳고 바른 자세를 말한다. 다윗이 법궤가 돌아왔을 때 너무도 감격하여 바지가 내려가는 줄도 모른 채 춤을 췄듯이, 인간의 지정의를 총동원하여 뜨거운 마음과 열정적인 자세로 드리는 예배가 경건한 예배이다.
시편에 나오는 찬양과 경배의 모습을 보라. 박수를 치며 소고를 치며 모든 악기들을 총동원하여 여호와께 예배를 드리지 않는가. 예배는 축제가 돼야 한다. 경건을 침묵과 조용한 모습으로 착각해서는 안 될 것이다. 그러므로 오늘 현대 교회의 예배는 장례식 같은 무겁고 침침한 분위기보다는 즐거운 축제로서의 예배로 갱신할 필요가 있다.
예배를 철저하게 기획한다고 해서 그것을 작위적인 조작으로 오해해서는 안 된다. 예배 기획은 절대 인위적으로 짜인 것이 아니다. 기계적으로 계산되고 조작된 예배를 드리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하나님께 온전한 기쁨이 되고 사람들에게 더 은혜가 되도록 하기 위해서 성령의 임재 안에서 기획하고 기도하는 마음으로 리허설을 할 필요가 있다.

소강석 목사
새에덴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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