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링거 선교사와 가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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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링거 선교사와 가족
  • 최창민 기자
  • 승인 2010.06.04 17: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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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서선교와 출판문화 근대화의 선구자

올링거 선교사(1845~1919) 선교사는 우리나라 문서선교와 출판문화 근대화의 선구자이다. 그는 1845년, 미국에서 독일계 이주민의 후예로 태어나 저먼-왈라스 대학에서 공부했으며, 1870년부터 17년 동안 중국 선교사로 헌신했다.

올링거는 1888년 조선에 미국 감리교 선교사로 들어와 약 6년 동안 헌신했다. 그는 배재학당 교사로 일했으며,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적 인쇄소인 삼문활판소를 배재학당 안에 설립하고 ‘누가복음젼’을 비롯한 성서와 여러 전도문서를 출간하여 문서선교의 초석을 놓았다. 1980년에는 대한기독교서회의 전신인 조선셩교서회를 조직해 초대회장을 맞았으며, 국내 최초의 영문잡지인 ‘The Korea Recorder’와 월간지 ‘The Korea Repository’를 창간했다. 이외에도 그는 아펜젤러를 도와 한국 최초의 교회 중 하나인 인천 내리교회 개척에도 기여했다.

올링거는 한국 선교 6년째인 1893년 5월 말경, 두 자녀 버티와 윌라를 병으로 한꺼번에 잃었다. 이들은 조선에서 사망한 최초의 서양 어린이였다. 그는 그해 9월 한국을 떠났으며, 1895년부터 1911년까지 중국에서 선교사의 사명을 감당했다.

양화진에는 2010년에 세운 올링거 선교사 기념비가 있다. 이 기념비는 당시 양화진 언덕에 한 기밖에 없었던 해론 선교사 무덤 옆에 올링거의 두 자녀를 나란히 묻었다는 기록과 증언에 근거해 그의 두 자녀의 무덤이 있었던 곳으로 추정되는 자리에 세워졌다.

(자료제공 한국기독교100주년기념사업협의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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