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기 목적 땅, 사회 부패의 주요 원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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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기 목적 땅, 사회 부패의 주요 원인”
  • 공종은
  • 승인 2005.05.18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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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한영 씨 ‘구약 윤리와 토지’ 논문 발표


구약성경에 약 2천3백71번 등장하는 단어 ‘땅’. 이 땅에 대한 중요도는 예나 지금이나 여전한 것 같다. 투기와 재산 증식의 방편으로 인식되는 것 또한 변한 것이 없어 보인다. 그러나 성경은 ‘약속의 땅’으로 불리기도 했던 특정 지역의 땅과 그 토지에 대해 뭐라고 말할까?

이한영 씨(아신대)는 한국구약학회가 최근 장신대에서 개최한 학술대회에서 발표한 논문 ‘구약 윤리와 토지’에서 “토지를 투기의 목적으로 삼은 유다에게 하나님의 화가 임했으며, 가옥에 가옥을 더하는 것은 향락과 권력 남용, 거짓과 지적 교만과 뇌물로 부패한 이스라엘 사회의 주요 원인이었다”는 주장을 내놓았다.

“이스라엘의 역사는 토지를 얻고 빼앗기는 악순환으로 전개된다”는 것이 이씨의 지적. “이것이 곧 인류의 역사이며, 복의 매체가 돼야 할, 즉 구속의 장이 되어야 할 땅이 타락한 인간들의 욕심과 투기로 인해 갈등과 전쟁과 빈부 차이와 고난과 하나님의 화의 장이 되어버린 것”이라는 설명이다.

이씨는 그 이유로 과거 약속의 땅이었던 팔레스타인 지역이 이제 인류 역사에 있어 가장 치명적인 갈등의 원천지로 전락해 버린 점을 지적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에게 땅을 허락하셨지만 그것은 조건적이었고, 이스라엘은 먼저 의로운 백성이 되어야 했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타국인을 학대하지 말아야 하고(레 19:33~34), 이스라엘은 땅의 소유자가 아니고 나그네와 우거하는 자임을 알아야 한다는 것(레 25:23)이 조건으로 따라 붙었다. 그렇지 않을 경우 모든 땅을 다 토해내야 했다. “실제로 땅은 언약 백성들의 목적이라기보다는 언약 과정의 한 매체였을 뿐이었고, 하나님께서는 구약에서 이 땅에 대한 특별한 도덕성을 강력히 요구하셨다”는 것이다.

이씨는 나아가 아브라함의 소명이 궁극적으로 땅을 소유하는 데 있지 않았다고 말한다. “가나안 땅을 약속받은 것은 땅 부자가 되기 위한 것이 아니라, 땅의 모든 족속이 아브라함의 믿음을 통해 복을 얻게 하기 위함이었다.” 즉, 아브라함의 믿음은 땅을 얻는 것에 있지 않고 오히려 땅을 과감하게 버리는 데 있었다는 것이다.

구약은 안식년 제도를 통해 노예 해방, 농경지 휴경, 채무자의 면제, 땅의 안식을 규정하고 더 나아가 가나안에 들어간 때를 기점으로 50년째의 해를 희년 대사면의 해로 선포하여 토지문제, 주택문제, 이자문제를 다루고 있다고 말한다. 이를 통해 “토지의 봉주는 하나님이며 이스라엘은 야훼의 땅에 사는 나그네에 불과함을 분명히 밝히고 있다”는 것. 즉, 토지는 다 하나님의 것이며 이스라엘은 잠시 우거하는 나그네라는 것이다.

이씨는 여기서 한국의 기복신앙과 토지 및 부동산 투기가 희년정신과는 정반대로 어긋나고 있음을 지적하고, “하나님이 약속하신 토지는 아브라함에게 있어 소유의 목적이 아닌 하나님과의 언약을 성취시키는 구원의 장이었다”고 주장한다. 아브라함에게 유일한 땅은 헷 사람들로부터 구입한 그의 아내 사래의 매장지뿐이었다(창 12:6~20)는 사실이 이를 증명한다.

그렇다면 하나님이 약속하신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은 무엇을 말하는가? 이씨는 이에 대해 “문자 그대로 젖과 꿀이 흐르는 약속의 땅은 원래부터 양과 가축을 치며 꿀을 얻을 수 있는 땅을 의미한다”고 설명했다. 애굽은 나일강의 비옥한 토지를 중심으로 고대에 중요한 식량창고였으므로 젖과 꿀이 흐르는 수사학적 은유가 어울리는 것은 분명하지만, 고대 히브리인들의 개념에서는 지리학적 문자적 지명이었다는 주장이다.

이씨는 나아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약속된 땅은 젖과 꿀이 흐르거나 농경이 정착된 땅이 아니라, 어려운 농작환경 때문에 가나안의 다산 종교와 우상숭배가 성황을 이루고 있었기에, 이스라엘은 땅을 정복해 소유하는 것이 아니고, 젖과 꿀이 흐르는 고지방으로부터 우상숭배를 정복해야 했던 것”이었고, “그 땅은 임의적인 인간의 힘만으로는 살기 힘든, 하나님의 언약을 지키는 조건에서만 살 수 있는 산과 골짜기의 땅이었다”고 해석했다.

이와 관련 이씨는 “애굽과 가나안을 절망의 땅과 희망의 땅으로 대조하는 것은 너무 많은 문제를 초래케 하고, 애굽은 고난의 땅이요 가나안은 안식의 땅이었다는 것은 분명히 실제와는 거리가 먼 논리”라고 규정했다. 또한 “구약의 전개는 언약의 주요 목적이 땅의 소유에 있지 않았다”고 말한다.

오히려 이씨는 “땅은 구속사에 있어 아주 중요한 경제적 매체였음이 분명하지만, 그러나 땅을 목적으로 삼은 이스라엘은 구속사에 있어 끝내 그 땅을 다 잃게 됐다”면서, 하나님이 약속하신 땅은 우상을 타파하는 땅이었고 하나님과의 거룩한 관계를 확립하는 장이었다고 주장했다.

왜 아브라함과 이스라엘은 가나안을 향해 갔는가? 그리고 과연 그곳은 젖과 꿀이 흐르는 희망의 땅이었을까?

이 씨는 “지정학적 시각에서 애굽과 가나안은 둘 다 이스라엘에게 있어 고난 혹은 안식의 절대적 의미를 부여받을 수는 없는 곳이기 때문이다. 물리적 차원에서 절망의 땅 애굽이기에 그곳을 떠나야 했고, 희망의 땅 가나안이기에 그곳을 향해 간 것이 아니다”고 주장했다. 그들이 모두 가나안을 향해 갔던 것을 그곳이 그 무엇에 앞서 바로 언약의 땅이었기 때문이라는 말이다.

이씨는 나아가 “이스라엘은 광야에서 시내산 언약을 통해 그들의 참된 희망은 오직 하나님께 있음을 알게 된다”면서 “오경의 중심은 가나안 땅의 정복이 아닌 시내산에서의 하나님과의 언약에 있다”고 말했다. 또한 “구약 신앙 중심에는 애굽과 가나안의 풍요로움이나 이 세상에서의 경제적 토지를 점령하려는 기복 신앙을 넘어 광야에서의 하나님과의 언약 관계가 자리하고 있다”고 주장, 오경의 주요 주제는 애굽에서 가나안으로의 정착이라기보다는 광야에서 하나님과 맺은 언약의 새로운 삶이며 그것이 바로 구속적인 희망이라고 주장했다.

이씨는 또한 “이제 우리는 광야를 지나 가나안 땅을 차지하게 되면 행복할 것이라는 망상에서 깨어나 이 땅 너머에 있는 영원한 소망, 곧 그리스도를 통한 하나님과 이웃과의 구속적 윤리에서 참된 행복의 장을 찾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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