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든 사회, 해체된 의식
상태바
병든 사회, 해체된 의식
  • 승인 2001.06.28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아버지가 안 계신 어린이?”
주위를 둘러보니 아무도 손을 들지 않았다. 소년도 손을 들지 않았다. 초등학교 이상 다녀본 사람들은 가정 환경 실태 조사시간에 주위 친구들과 비교 당하는 느낌을 한번쯤 받아보았을 것이다. 아버지의 부재를 친구들 앞에서 공개적으로 묻는 것은 기와집에 사느냐, 초가집에 사느냐를 조사하는 것과는 근본부터 다른 것이다. 학생들의 가정 환경을 파악한답시고 생각 없이 행동하는 풋내기 교사의 무의식은 소년의 마음에 깊은 상처를 안겨 주었다.

그 당시만 해도 교사들의 가정 방문이 잦았다. 소년의 집에 교사가 방문하고 가장의 직업을 묻는 담임에게 소년의 어머니는, 6.25전쟁 때 군인이던 남편이 ○○전투에서 전사했다는 말을 들려주었다. 본의 아니게 거짓말 한 것이 탄로 나버린 소년은 순간 돼지우리에 숨어 버렸다. 잠시 후 정신이 번쩍 든 담임은 가축장에 꼭꼭 숨어 있는 소년의 어깨를 감싸안으며 귓속말로 “정말 미안해”라고 했다. 교사가 가고 난 후 어머니는 소년을 으스러지도록 끌어안고 아무 말도 묻지 않았다.

전사한 아버지 대신 어머니가 가장인 그의 집안은 가난할 수밖에 없었지만 어머니는 자녀들에게 엄격할 정도로 신앙심을 심어 주었다. 공산주의가 싫어서 조상 대대로 살아오던 고향을 떠난 꽃다운 나이의 새색시는 어느 날 새벽, 갑자기 남편의 전사 통보를 받고 실신하게 된다. 아버지 얼굴을 기억도 하지 못하는 서너 살 꼬마는 육친의 아버지라는 이름을 평생 불러 보지도 못한 채 그리움에 목말라 했다. 전쟁은 이렇게 한 가정의 남편과 아버지를 한꺼번에 앗아가 단란했던 한가정에 상처를 안겨주고 말았다.

그렇게 자란 소년이 청년이 되고 이제는 장년이 되었다. 그런데 우리 주변은 전쟁의 상흔을 딛고 일어선 조국의 높아진 삶의 질과는 달리 여기저기에서 변화된 모습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소년의 어린 시절에는 반공, 방첩, 승공, 멸공이라는 단어가 어디를 가도 눈에 띄었었다. 그때는 남파된 간첩 면전에서 “나는 공산당이 싫어요”라고 외치다 순국한 용감한 소년도 있었다. 하지만 21C를 살아가는 요즘 청소년들이 “이승복 기념관”을 견학하고 돌아와 하는 말 “공산당이 왜 싫은 거예요?" 하고 묻는다. 우리 사회는 지금 잘못돼도 한참 잘못 된 곳으로 굴러가고 있다.

지금 누리고 있는 풍요한 생활 뒤에는, 나라의 부름을 받아 조국을 위해 공산주의와 싸우다 채 피어보지도 못하고 산화한 영령들의 피값이 있음을 왜 기억하지 못하는가? 그들이 기꺼이 바친 젊음이 오늘 민주주의의 토양이 되었다는 것을 왜 잊어야만 하는가? 90년만에 다가온 가뭄으로 전 국토가 타들어 가는데도 항공사 파업, 의료기관 파업 등 가진 자들은 자신들의 권리만 주장해 국민들의 분노를 사고 있다.

가진 자들이 호의호식하며 떵떵거릴 때 전쟁터에서 남편을 잃은 미망인과 아버지를 잃은 어린 것들은 추위와 굶주림에 떨어야만 했다. 하나뿐인 목숨을 초개같이 버려 나라를 구한 수십만 호국 영령들, 그리고 그 유가족들이 이제는 많은 이들의 기억 저편으로 사라져 가고 있다. 6.25가 발발한지 반세기가 지난 지금 우리의 현실은 어떠한가? 아직 남북이 대치 상태인데도 햇볕 정책이라는 이름으로 반공, 방첩, 승공, 멸공의 단어는 퇴색된 지 오래이고 전후 세대의 의식 속에는 이념논쟁이 시대의 낭만주의로 자리잡아가고 있는 듯 하다.

호국 보훈의 달 6월을 보내면서, 국가와 민족을 위해 목숨을 바친 선열들의 명예가 존중되어지고, 그 유가족들이 긍지를 가지고 당당히 살아갈 수 있는, 정체성이 확고한 나라를 꿈꾸어 본다. 그들의 숭고함이 잊혀지거나 무시당한다면 이 시대에 과연 누가 조국을 위해 목숨을 바치겠는가. 잃어보지 않은 사람은 진정한 소유의 가치를 알지 못한다. 목숨 걸고 찾은 자유민주주의다.

이것은 빼앗길 수 없는 절대절명의 명제이다. 우리 모두는 각자의 위치에서 제 몫을 하며 온 국민이 민주주의를 사수하기 위해 하나가 되어야만 한다. 아직도 남편이 문을 열고 들어올 것 같다는 팔순의 노모 곁에 이제는 장년이 된 그 옛날 소년이 6월의 하늘 아래서 조용히 아버지를 불러 본다. 그 순간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소년 모자의 외로움과 슬픔을 덜어주시는 위로의 영으로 함께 하셨다. 누군가 아버지에 대해 물어올 때 그는 이제 돼지우리에 숨지 않는다. 신앙의 힘으로 어려움을 극복한 소년은 조국을 지키다 산화한 아버지의 명예를 지켜 드리기 위해 맡은 일에 최선을 다하는 대한의 장년으로 살아가고 있다.

박대훈목사(청주서문교회 담임)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