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계획 : 탈북자 목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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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회계획 : 탈북자 목회
  • 승인 2004.10.2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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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를 품는 목회수립을

오늘은 탈북자에 대한 교회의 대처에 대해서 논하고저 한다. 근간에 와서 그간 소규모였던 탈북자가 부쩍 늘어 그 규모가 이미 백단위가 넘었다. 국가정책으로나 교회적으로도 방관할 수 없는 현실이다. 본 호에서 좀더 구체적인 실상과 대처방안에 대하여 논하려고 한다.

늘어나는 탈북자의 현실

지금 중국 내의 외국 영사부중에 우리나라 영사부가 제일 붐빈다고 한다. 한국 입국사증(비자)을 얻으려는 중국민원들이 장사진인데 탈북자들 때문에 비자업무를 중단할 지경이다. 고작 영사관 내부면적이라야 500평정도의 규모인데 2⅓이상의 탈북자들 공간을 쓰고 있기 때문이다. 고작 몇 명식으로 시작된 탈북자가 이제는 몇십명씩 지난번에는 400명이 넘는 숫자가 한꺼번에 들어오는 바람에 세계가 비상한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지금도 중국을 비롯한 제 3세계에는 엄청난 탈북자들이 자유를 찾으려고 생명을 건 사투를 하고 있다. 정부는 물론 교회는 이런 사태를 예견하여 적잘한 대안을 가졌어야 했다. 본 신문에서는 이러한 미래의 난제를 예견하고 수회에 걸쳐 예방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탈북자는 같은 혈연의 동포다. 윤리면으로 정치적으로나 방치할 수 없는 우리의 의무이다. 이대로 더 방치할 수는 없다.

탈북자의 탈북후의 현실

그렇다면 탈북자들이 대한민국 품에 들어 온 이후의 현실은 어떠한가. 저들은 마치 지옥을 벗어나 천국에 온 기쁨으로 대한민국의 품에 안겼다. 이제 자랑스러운 떳떳한 대한민국의 국민이 되었다. 그러나 그것은 비행기에서 내릴 때의 일시적인 감격 뿐이다. 도착한 저들은 절차에 따라 심사를 거쳐 하나원으로 가게 되어 길지 않은 짧은 기간 생활지도, 사회적응 교육, 학력, 자격인정 등 이에 따른 학교편입 등의 수련기간을 지내면 주민등록증을 발급받고 정착지원금을 지급받으며 주택알선 등 취직과 더불어 여러 가지 앞으로의 살아나가는데 필요한 도움을 받는다. 이러한 정보제공과 실제 도움을 받고 사회에 나온 저들은 막막하다. 2, 3개월간 배운 적응교육으로는 적응할 수 없다. 그렇다고 그 직종이 다양한 것도 아니다. 대개 남자는 자동차나 기계류, 컴퓨터 등이며 여성들은 이용이나 요리정도의 길지 않은 기간의 교육으로 현장적응이 되겠는가다. 태어난 것이 공산치하다. 그런 북한체제에 굳어진 통제 하에서 자유없이 자란 백성들이다. 민주주의니 자유니 상상할 수도 없다. 일시적인 정착금이나 개인이나 후원단체의 제한된 지원금은 요긴하게 쓰는 것보다는 낭비와 탕진하는 경우가 많다. 그들은 갖추어진 가정이 없다. 외롭다. 사회에 적응이 되지 않는다. 따돌림을 받는다. 큰 환영도 못 받는다. 거의 일시적인 환대인 것 같이 느껴진다. 전연 다른 사회에서의 돌변한 적응이다. 이런 상황에서 얻어지는 결과는 자포자기와 타락과 비행으로 전략할 수 있어 또 하나의 사회문제가 될 수 있다.

탈북자에 대한 교회의 대처

그렇다면 지금 이런 탈북자에 대한 지원대처는 무엇인가. 성경의 원리대로라면 탈북자야말로 가장 관심거리가 될 대상이다. 그러나 지금 한국교회는 그렇지 못하다. 별다른 조직적이며 체계적인 뚜렷한 지원기구가 없다. 부분적인 기구를 가졌다고 하나 극히 제한되어 있으며 일부교단이나 대형교회 중심으로 지원을 하는 정도다. 정기적이고 체계적인 지원도 아니다. 그렇다고 좋은 교육프로그램이 있는 것도 아니다. 일부 기독교 NGO의 활동도 있다. 중에서도 우리가 관심을 가져야 하는 것은 선교적 차원에서 탈북자 문제다. 지금 열거와 같이 어떤 조직이나 제도적 장치가 있는 지원보다는 그렇지 못한 경우가 많다. 또한 주의해야 할 것은 탈북자가 급격이 늘어나며 미국의 북한인권 문제가 상원에서 결의되어 개인이나 지원단체에 연 2000만 명까지 지원하게 되는 결정이 됨에 각종 NGO나 개인도 활력을 얻고 늘어갈 것이라는 것이며 또하나 한국교회가 관심가져야 하는 것은 중국이나 제 3국에 머물고 있는 탈북민에게 적지 않은 이단들의 무분별한 접근과 포교이며 이런 영향을 받고 입국을 했을 때와 또한 국내 탈북자에게 포교하는 이단 대책도 시급한 과제다.

탈북자에 대한 시정대안

앞으로 지속적으로 예측불허의 증가일로의 탈북자의 대처는 정치적으로나 사회적으로 간과할 수 없는 당면문제다. 먼저 집단탈출의 가능한 때를 예비한 사전에 UN결의의 탈북자의 인권문제가 해결되야 하며 제 3국의 잠정적 거주권과 생계유지의 생활가능의 자치권을 부여하는 세계기구의 결의가 되어야 할 것이다. 이러한 임시적 처리는 후일 통일 후 다시 북한으로 복귀시키는 절차가 뒤따르면 한다. 다음은 북한을 자극한다는 전제로 북한인권 문제를 외면하였든 또한 이런 이유로 탈북자에 대한 적극적인 배려를 하지 못했던 소극적인 과거를 회개하고 보다 과감한 대북지원이나 통일문제, 6자회담 등에 대한 적극적인 자세가 필요하다. 무엇인가 지금 균형이 깨어진 것 같으며 앞뒤가 맞지 않는다. 주고 베풀 것은 기꺼이 하고 우리가 요구해야 할 북한의 인권회복은 당당하게 요구되어야 할 것이다. 탈북자의 외교전략에서 큰 비중을 갖게 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미국의 북한에 대한 인권시비나 UN의 인권결의에 소극적인 자세는 앞으로 대처해도 옳지 못할 것이다. 그리고 한국교회도 보다 체계적이며 효율적인 정착교육과 지원대책은 물론 탈북인선교가 최적인 대북선교사양성의 대상이 되며 기회임을 잊지 말고 각 교파, 교단의 최우선 정책사역이 되어야 할 것이며 피부에 닿는 관심으로 다가가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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