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의 샘물] 기도하고 시작한 강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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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혜의 샘물] 기도하고 시작한 강의
  • 최운식 장로
  • 승인 2023.07.19 09: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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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운식 장로
최운식 장로/서울장위감리교회 원로장로, 한국교원대학교 명예교수

대학 교수는 전임으로 근무하는 대학에서 연구, 강의, 학생 지도의 임무를 수행한다. 그리고 시간이 허락하면 다른 대학에 가서 시간강사로 강의하기도 한다. 다른 대학에 가서 강의를 하다 보면, 그 대학이나 학과 나름의 특성에 따라 학생들의 수강 태도나 강의 분위기가 사뭇 다른 것을 느끼게 된다. 나는 여러 대학에 가서 강의를 하였는데, 지금도 잊히지 않는 강의가 있다.

오래 전에 제자 김 교수의 청에 따라 백석대학교에 출강하였을 때의 일이다. 첫 강의가 있는 날, 김 교수 연구실에서 차를 마시고 강의실로 가려고 할 때 김 교수가 이렇게 말했다. “선생님, 강의 시작 전에 기도하고 시작하시지요.” 나는 뜻밖의 말이어서 조금 당황스럽게 느껴지기까지 하였다. 그래서 말은 하지 않고 속으로 ‘기독교 관련 전공과목이 아닌 한국의 전통문화 강의 시간에 기도하고 시작하라니, 가당한 말인가!’ 라고 생각하면서 강의실로 향하였다.

강의실 가까이 가니, 여럿이 힘차게 부르는 찬송 소리가 들렸다. 바로 내가 강의할 방에서 수강생들이 찬송을 부르고 있었다. 수강생이 선교학과와 신학과 학생이라는 말을 들었기에 신앙이 돈독한 학생들일 것이라는 생각은 하였다. 그러나 강의실을 가득 메운 학생들이 강의 시작 직전에 온 힘을 다해 찬송을 부르고 있는 것을 보고, 그 분위기에 압도되고 말았다. 그래서 한국의 전통문화 강의가 한국인의 정체성을 일깨우고, 기독교의 선교와 목회 활동에 도움이 되게 해 달라는 기원의 기도를 한 뒤에 강의를 시작하였다.

그 다음 주 강의시간에도 강의실에 들어가니 학생들이 찬송을 부르고 있었다. 그날도 학생들 앞에 서서 기도한 뒤에 강의를 시작하였다. 그 다음 주부터는 학생들이 차례를 정하여 강의 시작 전에 기도를 하게 하였다. 그래서 강의 시작 전에 기도하는 일은 한 학기 내내 계속되었다. 이 학생들의 수강 태도는 아주 진지하고 열성적이었다. 이러한 강의 분위기는 저절로 되는 것이 아니다. 과대표 학생을 중심으로 학우들이 뜻을 같이하고 호응해야 한다. 나는 이렇게 면학 분위기를 조성하는 대표가 어떤 학생인가 궁금하였다. 김 교수는 나이가 좀 든 대표와 몇몇 학우들이 분위기를 조성하고 있다고 일러 주었다.

학생들의 수강 태도는 진지하고 열성적이었다. 나는 그에 발맞춰 강의 준비를 더 열심히 하고, 열과 성을 다하여 강의를 진행하였다. 수강생들의 호응도가 매우 높았으므로, 나 역시 열성적으로 강의에 임하였다. 강의 내용은 한국의 ‘일생의례, 세시풍속, 민간신앙(가신신앙·동신신앙·점복신앙·무속신앙), 구비문학, 민속놀이’ 등 한국의 전통문화 전반이었다. 이러한 것들은 한국인으로서, 그리고 한국 전통문화의 계승과 발전을 위해서 알아야 할 내용들이다. 또 기독교의 선교나 목회 활동의 효율성 제고를 위해서 반드시 알아야 할 사항들이다.

나는 구비문학을 전공하는 사람이지만, 학문적 필요에 따라 민속 전반의 자료를 조사하고, 연구하였다. 젊은 시절 무속 조사 현장에서 신학을 전공하는 서울의 유명대학 교수를 몇 차례 만났다. 나는 그 분에게 신학자가 굿판에 와서 무속 조사를 하는 이유를 물었다. 그는 기독교 선교를 위해서는 미신 또는 우상숭배라고 폄하하는 무당을 중심으로 한 무속을 알기 위해 열심히 현장 조사를 하고, 연구를 한다고 하였다.

한국의 전통문화를 바로 알려고 하지 않고 무조건 미신 또는 우상이라 하여 배척하거나 타파의 대상으로 삼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한국 전통문화의 실상과 의미를 바로 알고, 기독교의 교리에 비추어 수용 또는 변용할 수 있는 것인지, 배치되므로 타기해야 할 것인지를 판단해야 한다. 한국의 전통문화를 모르거나 무시하고서는 외래종교인 기독교를 선교하는 데에 많은 어려움이 있고, 효율성도 기대할 수 없게 된다. 외국에 선교사를 파견할 때 그 나라의 문화를 반드시 익히도록 하는 이유도 같다.

나는 일반대학은 물론 몇몇 신학대학에도 출강하였지만, 기도하고 강의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그래서 백석대학교 강의는 특별한 체험이었다. 수강생들은 기독교 신앙과 직접 관련이 없는 강의에 임하면서도 기도하고 수강하는 태도를 보였다. 이런 학생들이라면 기독교 전공 강좌를 수강할 때에는 더 진지하고 열성적이었을 것이다. 이런 학생들은 졸업한 뒤에 선교와 목회의 현장에 가서 더욱 열성적으로 일할 것이다. 그러면 성령님이 함께 하셔서 큰 보람과 성과를 거두게 하실 것이다. 이런 학생을 배출한 대학의 학과는 아름다운 전통을 이어가면서 발전을 거듭할 것이다. 이들이 공부하고 일할 대학교, 교회, 교단에 하나님의 은총이 늘 함께 하시기를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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