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기 기독교 산책] 철학자들, 기독교가 가르치는 것 이성적으로 받아들이지 못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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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기 기독교 산책] 철학자들, 기독교가 가르치는 것 이성적으로 받아들이지 못해
  • 이상규 교수(백석대·역사신학)
  • 승인 2023.07.12 1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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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679호 / 이상규 교수의 초기 기독교 산책 (161) - 헬라로마사회에서의 기독교 비판(17)
이상규 박사
이상규 박사

<옥타비우스>의 결론 부분인 39~40장에서는 캐킬리우스가 자신의 잘못된 생각을 깨닫고 기독교 신앙을 받아들이기로 결심하고, 친구들과 다음 달에 다시 만나기로 약속하고 책을 끝맺고 있다. 미니키우스 펠릭스는 특별히 신앙을 강요하지 않았는데, 좋은 결과에 도달한 점에 대하여 만족을 표했다.

이상에서 펠릭스는 자신의 친구 이름을 책 이름으로 한 <옥타비우스 Octavius>에서 캐킬리우스의 기독교 비판에 대해 옥타비누스의 답변 형식으로 기독교신앙을 옹호하고 있는데, 비록 프론토의 반 기독교적인 연설문, ‘기독교를 반대하여’(Against Christians)라는 글이 소실되었지만 이 책 <옥타비우스>를 통해 프론토가 제기했던 문제가 무엇이었던가를 대충 알게 되었다. 프론토도 그 시대 기독교를 비방했던 다른 철학자들과 마찬가지로 기독교가 가르치는 것은 이성적으로 받아들일 수 없는 것들이며, 십자가에 죽은 죄수를 예배하는 것은 어리석은 것으로 보았고, 또 당시의 오해들, 곧 기독교 신자들은 ‘인육식 집단이자 근친상간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며, 유아를 살해하는 등과 같은 은밀한 범죄를 행하는 집단’으로 인식했다. 바로 이런 오해에 기초하여 기독교를 비판했던 것임을 알 수 있다.

“이 세상이 자기 지혜로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고로” 십자가에 달려 죽으신 예수를 전파하는 그리스도인들과 기독교 공동체는 유대인들에게는 거리끼는 것이었고, 헬라인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었다(고전 1:21~24)는 바울의 지적은 다름 아닌 헬라 철학자들을 두고 한 말이었다. 골로새서 2장 8절을 보면, “누가 철학과 헛된 속임수로 너희를 노략할까 주의하라. 이것이 사람의 유전과 세상의 초등학문을 좇음이요, 그리스도를 좇음이 아니니라”라고 한 것을 보면 초기 기독교는 처음부터 철학을 부정적으로 평가하는 경향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정리하면, 펠릭스는 기독교 신자인 옥타비우스와 불신자였던 캐킬리우스의 대화 형식의 글을 통해 기독교 신앙을 변호했는데, 프론토를 비롯한 이방종교 신봉자들을 향해 기독교는 윤리적인 종교인 반면, 당대의 다신교는 비윤리적인 종교라는 점을 들어 기독교의 우월성을 설명하고자 했음을 알 수 있다. 또 기독교인들이 이 세상에서 박해와 고난을 당하고, 세상 사람들이 볼 때 불행하게 보일지 모르나 그리스도인들의 삶은 현세적인 것이 전부가 아니기에 세상적인 관점에서만 바라보아서는 안 된다는 것이 펠릭스의 관점이었다. 

펠릭스의 글을 보면, 우주는 조화롭고 질서 있게 구성되어 있고, 또 질서 있게 운행되고 있다는 점을 들어 조화와 질서는 조물주인 하나님 없이는 생각할 수 없다고 말함으로서 그가 이른바 목적론적 신존재 증명을 시도하였음을 알 수 있다(김광채, 교부열전, 227). 하나님의 이름(神名)에 관하여 펠릭스는 ‘하나님’(Deus, God) 이외의 다른 이름은 사용해서는 안 된다는 입장이었다. 예컨대, ‘아버지’(Pater, Father)라는 이름은 하나님을 육적인 존재로 생각하게 할 수 있다고 보았고, ‘왕’(Rex, King)이라는 이름은 그를 세상적인 존재로 간주할 위험이 있고, ‘주’(Dominus, Lord)라는 이름은 그를 영원하지 못한 죽을 수 있는 존재로 생각할 우려가 있다고 본 것이다. 그래서 펠릭스는 “이런 부가적인 이름을 없앨 때에 비로소 우리는 영광 중에 있는 그를 바라볼 수 있다”라고 했지만(Octavius, xviii. A. Roberts & J. Donaldson ed., The Ante~Nicene Fathers, Vol. IV, 183쪽), 이것은 바른 생각이라고 할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펠릭스는 당대의 그리스 문필가나 철학자들의 반기독교적인 저술에 대항하여 기독교 신앙을 옹호하고 변호하고자 했던 인물이었다.

백석대·역사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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