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니어 칼럼]아날로그 감성으로 바라본 시한부의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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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니어 칼럼]아날로그 감성으로 바라본 시한부의 삶
  • 최윤정 웰다잉 강사(각당복지재단)
  • 승인 2023.07.06 11:1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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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죽음을 생각하다⑯

영화 <8월의 크리스마스>

우리는 디지털 세상에 살지만 아날로그 감성이 그리울 때가 있다. 요즘 젊은 세대들이 예전 어른들의 감성 젖은 시대, 과거를 본보기 삼아 그대로 좇는 레트로에 흥미를 갖는 이유가 아닐까.

영화 <8월의 크리스마스>는 1990년 아날로그 감성을 간직한 영화이다. 관객에게 많은 것을 가르쳐주지 않는다. 웃을 타이밍도, 울 타이밍도, ‘주인공이 시한부 인생을 사니까 우리는 슬퍼해야해’라고 강요하지 않는다. 매우 담담하게 시한부 삶을 그려낸다. 여러 의미에서 허진호 감독의 <8월의 크리스마스> 영화는 명작이다.

실제로 시한부 삶을 선고 받았을 때 환자들은 엘리자베스 퀴블러로스(죽음학의 창시자)가 알려주듯 죽음의 5단계 부정, 분노, 타협, 우울, 수용의 과정을 거친다. 감독은 영화를 위하여 시한부 환자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였다고 한다. 영화 속 주인공 정원은 이 수용의 단계에 있는 듯하다. 자신의 얼마 안남은 삶을 하루하루 수용하듯 살아간다.

영화는 주인공이 어떤병에 걸렸는지, 가족들이 얼마나 오열하는지, 주인공의 삶의 깊숙한 부분을 보여주고 억지로 슬픔을 표현하라고 하지 않는다. 삶의 마지막까지 사랑을 간직한채 떠날 수 있음에 감사함을 느끼는 주인공의 삶을 관조적인 자세로 카메라에 담을 뿐이다.

사실 우리는 모두 시한부 삶이다. 병원 진단을 받은 시한부의 삶이건, 지금은 건강하다고 자부하는 이의 삶이건, 비교적 치료가능한 병을 다독이며 사는 이이건, 모두가 시한부다. 우리 모두 시한부라는 사실을 알려주듯, 영화 초반에 초등학교 운동장을 배경으로 정원의 내레이션이 들린다. “내가 어렸을 때 아이들이 모두 가버린 텅 빈 운동장에 남아있기를 좋아했다. 그곳에서 어머니를 생각하고 아버지도, 그리고 나도 언젠가는 사라져 버린다는 생각을 하곤 했었다.”

영화 강의에서 어르신들의 공감을 일으켰던 장면은 정원이 아버지에게 TV리모콘 사용법을 알려주는 내용이다. 아마도 바뀌어가는 디지털 세상에서 아날로그를 그리워 하는 분들일 것이다. 정원은 알려줘도 힘들어하는 아버지를 뒤로한채 욱 하고 방을 나가버린다.

마치 “내가 없을때 어쩌려고 이해를 못하세요!” 라는 제스쳐 일 것이다. 방을 나가서는, 종이에 숫자를 매기며 리모콘 사용법을 써내려간다. 자신이 없더라도 아버지가 불편해 하지 않도록 하는 아들의 마음이 읽혀진다. 자식을 먼저 보내야 하는 아버지의 마음 역시 신파극으로 향하지 않는다. 이불을 뒤집어 쓰고 오열하는 아들의 울음소리를 들으며 창밖을 쳐다보는 아버지의 뒷모습만이 그려질 뿐이다. 물끄러미 바깥을 보고있지만 타들어가는 속마음이 느껴진다고 한다.

영화는 정원의 삶과 그 삶을 바라보는 가족들의 담담한 일상을 계속 그려낸다. 많은 이들의 시한부의 삶과, 아직 살아있는 삶의 시간은 늘 그대로 모두가 함께 흘러간다. 너무나 아름답게. 모두의 삶은 살아있는 한 아름답다. 그 삶이 시한부의 삶이던, 어제와 다름없는 일상을 보내는 이들의 삶이나 그 자체로서 아름다운 것이다. 영화 <8월의 크리스마스>의 정원의 삶이 아름다웠던 것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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