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의 샘물] 장로가 아직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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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혜의 샘물] 장로가 아직도
  • 이복규 장로
  • 승인 2023.07.06 1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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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복규 장로(서울산성감리교회, 서경대학교 명예교수)
이복규 장로(서울산성감리교회, 서경대학교 명예교수)

“장로인데 아직도 연구해요?”

언젠가 ㄱ대 대학원에 출강했을 때, 학과장인 교수가 나한테 한 말이다. 차 마시며 환담하다가, 내가 장로라니까 대뜸 이렇게 물었다. 한참 물이 올라, 책도 여럿 내고, 여기저기 학회에 나가 왕성하게 발표하는 것을 잘 아는 그 교수가 던진 질문이었다. 그 말을 듣고 퍽 당황했다.

무슨 소린가 했더니만, 대부분의 교수가, 장로가 되면 더 이상 연구하지 않더라는 것이었다. 교회 일 하느라 바빠서 그렇다고 했다. 충격이었다. 정상이 비정상이 되는 순간이라고나 할까? 장로 안수 받는다고 더 이상 연구하지 않다니? 교수가 장로가 되면, 더욱 연구를 많이 해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하는 게 아닐까? 두 가지 일의 균형을 이루려 애써야 하지 않을까?

최근에는 이런 일도 있다. 저술가로도 유명하고, 유튜브에서도 인기인 ㅅ대 어떤 교수의 책을 읽고 같은 주제를 다룬 유튜브에 들어가 봤다. 어느 기관의 초청을 받아 한 강의였다. 명불허전, 명강의였다. 그런데, 거기 달린 학생의 댓글 가운데, 이런 게 있었다.

“교수님, 학교에서 얼마나 인기 없는지 아세요? 학생 논문 지도나 잘하세요. 이런 데 나와서 강의 말고…”

같은 교수로서, 정신이 번쩍 나게 하는 댓글이었다. 내게도 학생들이 이런 불만을 품지는 않았을까 켕겼다. 그러는 한편, 지금 생각해도 참 자랑스럽게 행동한 기억도 떠올랐다. 언젠가 방송대학에서 고소설의 배경지인 진주에 내려가서 현지 촬영을 하겠느냐고 요청하였으나, 우리 대학 강의시간과 겹쳐 단호히 사양하였다. 그러자 전화 수화기 너머 이런 소리가 들려 왔다. ”남들은 서로 출연하고 싶어 하는 강의이건만, 싫다니!“ 하는 것이었다. 내 얼굴을 널리 알릴 수 있는 기회라는 걸 알지만, 봉직하는 학교 학생들과의 강의 약속을 변경하면서까지 출강하고 싶지는 않았다.

에피소드 하나를 더 소개한다. ㅊ대 총장 비서실에 근무했던 지인이 들려준 이야기다. 신자인 어떤 교수가, 강의 시작할 때면 늘 이렇게 자랑했다고 한다.
“지금 이 시간에도 내 아내가 집에서 나를 위해 간절히 기도하고 있어요. 강의 잘하게 해 주시라고.”
그 학생들이 보였다는 반응이 걸작이다.

“쯧쯧쯧! 왜 하나님은 한 번도 사모님 기도에 응답하지 않으시는 걸까?”

부인의 기도를 자랑하기 전에, 충실하게 강의 준비를 해서, 학생들에게 만족을 주었어야 하건만 그렇지 못한 것이리라. 좋은 강의는 연구해야 가능하다.

내가 제일 하기 싫어한 강의가 있다. 남의 책에 있는 것을 그대로 전달하는 강의다. 그러기 싫어서 계속 연구하였다. 남들이 연구하지 않은 새로운 영역을 개척하곤 했다. 탈북자를 만나 북한의 구전설화와 민속을 조사한 것, 중앙아시아 고려인을 만나 강제 이주담과 구전설화를 채록해 연구한 것이 그 대표적인 사례다.

은퇴 후에도 계속 연구하고 있다. 그 결과를 책으로 출판한다, 앞으로 쓰고 싶은 책이 30종을 넘는다. 관성 또는 가속도가 붙은 모양이다. 더러 외부에서 요청하면 기꺼이 강의도 한다. 연구한 게 축적되어 그런지, 어떤 주제이든, 그리 어렵지 않게 준비해  강의할 수 있으니 감사하다. 더러 잡문도 쓴다.

그러면, 장로 직분에는 소홀했을까? 장로가 된 후, 교육부를 맡아서, 교회 내 장년부 대상 성경공부를 여러 해 인도했으며, 교회학교 교사와 부장 일도 병행하였다. 환갑 무렵에는 신학교도 다녔다. 졸업 후, 그 지식으로, 평신도대학을 인도하고, 새 신자 양육용 책자를 두 종이나 만들었으며, 지금도 새 신자 교육을 담당하고 있다.

지금 생각하니, 세상 일과 교회 일의 균형을 잡으려 노력한 것, 참 잘한 일이다. 그때 그 교수, 다시 만나면 이러겠지. “아니, 은퇴 후에도 아직 연구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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