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성수의 영화 읽기]인간은 무엇에 걸려 넘어지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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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성수의 영화 읽기]인간은 무엇에 걸려 넘어지는가?
  • 최성수 박사(문화선교연구원 칼럼니스트)
  • 승인 2023.01.11 1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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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녀의 샘](잉마르 베르히만, 드라마, 15세, 1960)

 

최성수 박사
최성수 박사(문화선교연구원 칼럼니스트)

스웨덴 출신의 감독 잉마르 베르히만은 영화사적 의미가 있는 인물이다. 영화의 예술적 위상을 한층 높여준 것은 물론이고, 감독 특유의 영화 화법을 개발해서 영화가 감독의 작품이라는 사실을 각인시키는 등 영화사에 기록될 만한 많은 업적을 남겼기 때문이다.

먼저 그는 영화에 대한 그동안의 생각을 수정하도록 하는 데 크게 공헌했다. 곧 이전의 영화는 단순히 인물의 말과 연기를 통해 이야기를 서술하는 매체에 불과했다. 그는 이런 인식에서 벗어나, 영화가 빛과 어둠을 이용해 인간의 심리와 형이상학적인 측면을 충분히 다룰 수 있는 매체임을 입증해 보였다. 그의 작품 <처녀의 샘>은 무엇보다 하나님 앞에서 정직하고 순결하게 살아가려는 인간의 한계를 보여주고 있는데, 내용은 이렇다. 중세 스웨덴 외딴 농촌 지역에서 지주의 딸로 태어나고 자란 카린은 주변의 모든 사람에게 친절을 베푸는 순수한 영혼을 가지고 있고, 부모의 사랑을 흠뻑 받으며 살고 있다. 외동딸에 대한 엄마의 애정은 남편이 보기에도 지나칠 정도였다.

특정한 절기가 되면 마을 처녀가 초를 교회로 가져가는 가톨릭 전통에 따라 카린은 초를 교회에 가져가게 되었는데, 하녀인 잉게르와 함께 길을 떠난다. 잉게르는 정혼하지 않은 상태에서 임신 중일 정도로 당시의 도덕관념에 따른 교육 없이 자란 여자였다. 그녀는 자신의 처지에 대한 불만족으로 가득했으며 어린 카린과 자신을 비교하면서 질투심을 불태우고 있었고, 그것이 얼마나 심했는지 심지어 사악한 신에게 종종 기도하였다. 그녀는 교회로 가는 숲길에 이르자 임신 중이라 힘들다는 핑계를 대고 카린 혼자 가게 한다. 홀로 길을 가게 된 카린은 숲속의 양치기들에 의해 강간당하고 살해된다.

양치기들은 그녀가 입은 비단옷을 팔 요량으로 마을로 가는데, 카린의 부모는 그것이 딸이 입고 간 옷임을 알아보곤 충격을 받고 복수를 한다. 그 후 카린의 시신을 확인한 아버지는 하나님을 향해 이런 일들을 왜 자신에게 일어나게 했는지를 따져 묻는다. 그리곤 속죄의 뜻으로 카린이 죽은 곳에 자신이 직접 교회를 세우겠다고 서원을 한다. 그 후 놀랍게도 카린의 시신이 있던 곳에서 샘이 흐르는 것을 발견하는데, 그곳을 거룩한 곳으로 여기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여주며 영화는 끝난다.

<처녀의 샘>을 통해 베르히만은 하나님 앞에서 살아가고 또 신실하게 살아가길 원하는 인간이 무엇 때문에 자신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하게 되는지를 폭로한다. 곧 인간이 온전한 구원에 이르지 못하는 건 탐욕 때문임을 폭로한다. 인간에게 불행한 일이 일어나는 것은 하나님이 무능하거나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 아니라, 오히려 인간이 탐욕 때문에 스스로 초래하는 일이라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본다면, 탐욕은 죄의 또 다른 모습임이 분명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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