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인들을 격려하고 세우라-김성봉목사/신반포중앙교회
상태바
교인들을 격려하고 세우라-김성봉목사/신반포중앙교회
  • 승인 2004.03.07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성경에서 가장 먼저 발견되는 구절은 마 25:36의 말씀이다. “벗었을 때에 옷을 입혔고, 병들었을 때에 돌아보았고, 옥에 갇혔을 때에 와서 보았느니라.”이 말씀에 근거하여 종교개혁 이후의 개혁교회 전통에서는 병환자와 갇힌 자를 심방하는 것을 규정으로 정하여 시행해 왔다. 여기에다 더하여 성찬을 앞두고 교리공부를 하거나 성도들을 살펴보기 위하여 심방을 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 말씀은 심방만 따로 떼어 생각할 것이 아니라, 심방과 아울러 함께 생각하여야 할 말씀으로 여겨진다. 이 같은 일들은 비단 목회자만 힘쓸 일이 아니라, 교회 전체가 힘써야 할 일로 여겨진다. 이런 일을 함에 있어서 늘 주의해야 할 점은 우리가 이런 일을 함으로 구원에 이르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이 같은 삶의 방식은 “은혜로 구원받은 성도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하고 물었을 때, 이렇게 살아야 한다고 대답해 줄 내용이다.

칼빈도 이 면을 중시, 조심스럽게 말해주고 있다. “이것이 만약에 우리의 구원의 원인에 대한 논쟁이었다면 로마 가톨릭 교도들이 여기서 우리의 영생이 선행의 공로 때문이라고 주장하는 것이 옳은 말이 될지도 모르지만, 그리스도의 의도는 그의 백성으로 하여금 선하고 올바른 행동을 격려하는 데 있었으므로 이 말씀의 의미를 행위의 공로라는 면에서 억지로 짜내는 것은 잘못이다”고 하였다.

초대 교회와 중세 교회에서

초대 교회의 경우 여성 집사들이나 직분자 ‘과부’들의 주요 임무 중 하나가 어려움에 처한 여성 성도들을 돌아보는 일이었던 것으로 보아, 심방이 장로들이나 남녀 집사, 과부들에 의해 진행되었을 것으로 보인다. 중세 교회는 세속 정부와 긴밀한 연관성을 가지고 교구제도와 성직자의 위계질서를 통해 행정적으로 중세 교인들의 삶을 통제했을 뿐 아니라, 칠성례전을 통하여 영적으로 개개인의 일상적인 삶 - 생로병사와 결혼, 신앙적 삶 - 을 지배했다. 이러한 시대적 특성을 감안하여 보면, 세례나 종유성사를 위한 특수심방의 가능성이 있지만, 정기적인 심방이나 일반 심방이 있었을 가능성은 오히려 적어 보인다.

종교 개혁기의 교회에서

중세 교회의 교리와 관행을 비판하고 교회의 개혁을 주장한 종교개혁가들은 각자가 믿고 주장한 교리에 근거하여 교회를 재정비하였다. 존 칼빈은 제네바 교회를 맡으면서 성도들의 훈련(discipline)의 필요성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하여 교회제도의 보완을 통하여 이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였다.

칼빈은 성도들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훈련시키기 위하여 하나님의 말씀이 바르게 선포되어야 한다고(설교) 믿었을 뿐 아니라, 성도들이 그 말씀을 실제 삶에 적용시키는 것을 교회가 감독하고 지도해야 한다고 확신했다. 이러한 확신은 곧 제네바교회가 일반 심방제도를 채택하는 근거를 마련해 준다. 칼빈이 초안하고 제네바 의회에 의해 수정 통과되어 1541년에 공포된 '교회법(Ecclesiastical Ordinances)'에 의하면, 두 가지 경우에 국한한 심방 - 환자 심방과 죄수 심방 - 을 정하고 있다.

환자 심방은 병 중에 하나님의 말씀으로 자신을 위로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위로하고, 권면이나 가르침을 받지 못한 채 사망하는 경우를 방지하기 위해서 마련되었다. 이 교회법은 누구든지 목회자에게 알리지 않고 삼일을 병석에 누워있는 것을 금하고 있다. 즉, 중환자 심방의 경우에는 중세 교회가 행했던 종유성사(전례)와는 그 신학적 의미나 방법이 다르지만, 교회가 개인의 죽음을 준비하는데 여전히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자 하는 의도를 엿볼 수 있다.

근·현대 교회에서

심방이 치리 장로의 주요 임무 중의 하나라는 사실은 이미 잘 알려져 있는 사실이다. 프린스턴(Princeton) 신학교의 교회사와 교회정치 교수였던 사무엘 밀러(S.Miller)는 치리장로에 대한 그의 글에서 성도와 그 가정을 방문하는 일을 치리장로의 ‘그 의무’라고까지 표현한다. 심방할 때, 목사가 원하면 함께 할 수 있으며, 목사가 원치 않으면 목사 없이 할 수도 있다고 한다. 무식한 자들을 가르치기 위하여 그들과 격의 없이 대화하기도 하고, 흔들리는 자들을 확고히 세워주기도 하며, 경솔한 자들에게 주의를 주기도 하며, 방황하는 자들을 선도하기도 하며, 겁내는 자들에게 용기를 북돋우기도 하며, 모든 계층의 사람들에게 의무를 신실하고 넉넉히 수행할 수 있도록 격려하기도 한다고 하였다.

이처럼 심방은 성도들을 돌아보는 것이다. 목사가 성도들들 심방하는 일은 목사에게 당연히 요구되는 일이다. 선택사항이 아니라 필수사항이라는 말이다. 심방은 목사가 감당해야 할 중요한 사역 중의 하나이며, 만약 목사가 그 일을 제대로 감당하지 않으면, 책망을 들을 만한 일로 간주된다. 심방이 단지 교회 부흥의 수단으로 수행되어야 할 일이 아니다. 교회 부흥은 신실한 심방의 결과로 주어질 수는 있겠으나, 그 자체가 심방의 목적이 될 수는 없다. 심방의 목적은 교회부흥이 아니라, 성도를 돌아보고 위로할 자를 위로하고, 격려할 자를 격려하며, 세울 자를 세우는 것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