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에서 그린 하늘의 아름다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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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에서 그린 하늘의 아름다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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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5.10.12 15: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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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예술과 하나님의 마음 (15)

고흐의 작품 <별이 빛나는 밤>, 그곳엔 유난히 넓게 펼쳐진 밤하늘이 있다. 주의 인자하심이 하늘 위에 광대하게(시편 108:4) 메아리치듯, 영원의 상징인 12개의 큰 별은 아름다운 빛을 발하고 있다. 고흐의 눈이 하늘에 고정되어 그곳이 열려있는 것을 보았기 때문일까. 그 반짝거림은 우리의 시야를 가득 메우고 있다. 마치 12별이 영원히 고갈되지 않는 창조적 에너지로 넘치는 ‘새 예루살렘 성’의 12개의 문과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12개의 별들이 보여주는 파노라마는 우리의 마음속에 우러나오는 영원에 대한 갈망을 넉넉히 감싸 안으려 한다.

왼편에는 싸이프러스(Cypress) 나무가 하늘로 곧게 드리워있다. 고흐는 하늘을 향한 자신의 열망을 이 나무에 담아 타오르듯이 그려내고 있는 것이다. 극심한 고난 가운데서도 그리스도 안에서 살아 있는 소망을 품었기에 그에겐 예수님이 지셨던 싸이프러스 십자가 나무는 ‘거룩함’을 상징하였다.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려 했으나 여의치 않았던 상황들, 탄광촌에 들어가 아픈 사람을 위로하고 성경을 읽어주면서, 그들의 열악한 생존조건을 보고 받았던 마음의 아픔들이 있었으나, 어느 순간에서나 영원한 주님의 생명과 그분의 나라를 사모하는 마음에는 변함이 없었다.

그래서 <별이 빛나는 밤>은 고흐 자신의 인생에 마지막으로 장식할 세계를 ‘계시적 시각’에서 표현한 것으로 보인다. 이 사실은 그림의 가운데 아래에는 예배당에서도 표현되고 있다. 이것은 고흐의 아버지가 사역했던 누에넨의 예배당 모습이다. 이 예배당의 종탑은 사이프러스 나무와 함께 하늘을 향해 솟아오르며 그곳과 맞닿아있다. 인간의 문명은 낙관적이기 보다는 절망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 고흐의 마음속에 예배당은 시대의 문명의 편리함과 세속의 품위에 영합하지 않는 삶의 지혜와 하늘의 순결이 숨 쉬는 고향이었다.

사실 역사를 살펴보면, 하늘의 아름다움을 꿈꾸고 일구어간 사람들은 있어왔다.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플라톤(BC 429~BC 347)이 그랬다. 그는 ‘하늘의 이상’을 그의 수많은 대화편을 통하여 서술했다. 그리하여 미와 예술에 관하여 적절하고도 필수적인 물음들에 훌륭한 대답을 이끌어낼 수 있었다. 한편 17세기 네덜란드의 화가들은 직접 하늘의 아름다움을 그려나갔다. 얀 반 호이엔(Jan van Goyen: 1596-1656), 지몬 데 블리헤르(Simon de Vliger: 1601-53) 등은 단순하고 솔직한 방식으로 미술사상 최초로 하늘의 아름다움을 발견했다.

이제, 고흐나 네덜란드의 화가들처럼 자신의 내면을 성찰하듯 우리의 시야를 들어 저녁의 햇살에 고정시켜보자. 평범한 밤하늘에서도 한 폭의 그림 같은(picturesque) 장면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영웅적인 이야기나 놀랄만한 주제가 아니더라도 눈에 보이는 그대로의 세계가 이토록 만족스러울 수 있다는 사실에 경탄하게 된다. 인생의 목적이 있고 조화로운 세계에 살 것인가, 아니면 혼돈과 방황의 세계에 머물 것인가? 우리의 선한 시각은 이에 대한 응답을 선물로 줄 것이다. 하나님의 창조는 말씀을 통해 혼돈의 카오스를 질서의 코스모스로 바꾸어 놓는 일대 사건이었다. 세계를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의 현장으로 바라보는 것은 하나님의 존재와 권위를 인정하고 창조의 목적 안에서 인간을 발견하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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