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세출의 인물, 칸딘스키(Kandinsky) 아쉽게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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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세출의 인물, 칸딘스키(Kandinsky) 아쉽게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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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5.06.03 1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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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예술과 하나님의 마음 (4)
▲ 안용준 목사

현대 회화사에서 칸딘스키(Wassily Kandinsky, 1866~1944)에 대한 평가는 가히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20세기의 거장 피카소, 마티스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예술가로 미술사에 기록된 그는 순수추상 작품을 제작한 선구자적 인물 중 한명이다.

붓을 단숨에 휘둘러 얼룩이 많이 생기는 극적인 그림들은 1950년대 미국의 뉴욕 추상표현주의에 와서야 볼 수 있는, 칸딘스키의 예술적 통찰력이 빛나는 업적으로 평가되고 있다. 그의 제1의 저작인 『예술에 있어서 정신적인 것에 관하여』(Uber das Geistige in der Kunst, 1911) 는 무미건조하기 쉬운 조형 원리와 기본적인 사고에 직관과 상상의 자유로운 유희(Das Spiel)를 기술한 독특한 내용으로 지금까지 세계의 수많은 미술대학에서 교재로 채택하고 있을 정도다. 

한때는 당시 모더니즘 예술을 이끄는 예술교육 현장인 독일의 국립 바우하우스(Staatliches Bauhaus)에서 파울 클레(Paul Klee) 미스 반 데어 로에(Mies van der Rohe) 등의 거장들과 함께 유토피아적 미술과 건축물의 패러다임을 제시하기도 했다. 칸딘스키의 상상력은 학생들로 하여금 서정적이며 환상적인 예술적 감각을 불러일으켰다. 그는 신망 받는 교수로 1933년 나치에 의해 폐교되기까지 이 일을 지속하였다.  

그의 작업과 가르침에는 “20세기적 생명과 혼을 불어넣어야 한다”는 거창하게 보이는 모토가 지배하고 있었다. 여기서 ‘생명’이란 인간의 영혼을 회복시키는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은 물론 아니다. 그는 물질주의적 관념들이야말로 삶을 한낱 기괴하고 몰지각한 연극의 수준으로 끌어내린 몽마(夢魔)라고 단죄하기를 서슴지 않았다. 급진적인 산업화로 물질주의가 전 유럽에 팽배해 가고, 세기말적인 정신적 위기감이 고조되어가던 19세기말의 세상은 그의 선언에 열광했다. 당시 칸딘스키는 그러한 시대를 선의 힘 혹은 정신적인 것과 악의 힘 혹은 물질주의 간의 투쟁이 이루어지고 있다고 해석하였다. 

더욱이 당시에는 기독교 인문주의적 문화도 쇄락해가고 있었다. 기독교 문화는 생명의 능력을 상실해 가고 있었던 것이다. 칸딘스키는 현대인이 물질의 추함과 폐허 속에서 헤매고 있다고 생각했다. 이러한 시대 분위기 속에서 추함의 현상에 대한 극복의 대안으로 일어난 신지학(Theosophy)은 칸딘스키에게 큰 영향을 주었다. 칸딘스키는 신지학과 관련하여 장미 십자회 등 일련의 비학(occultism) 운동의 영향을 받았던 것이다. 

인간의 지혜인 칸딘스키의 지혜는 한계가 있지만 그럼에도 가장 강력한 무기가 되고 있었다. 하지만 그러한 지혜가 성공을 보장할 수 있는가? 지혜와 명철은 하나님이 주신 은사를 가리키는 이름이다. 하나님이 베푸시는 지혜로 조금 더 깊이 그리고 넓게 세상 안으로 들어간다면, 우리에게 주어진 물질적 공간이 멸시보다는 회복되어야할 세계라는 진리를 깨닫게 될 것이다. 하나님은 이 순간에도 현실의 고통과 좌절 가운데 있는 사람들에게 위로와 소망의 메시지를 보내고 계시다. “지혜를 버리지 말라 그가 너를 보호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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