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들에 의한 복음수용과 복음 선교를 위한 성경번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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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들에 의한 복음수용과 복음 선교를 위한 성경번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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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4.07.22 2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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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번역에 참여한 네 사람 존 멕키타이어에게 세례 받아
▲ 조병하 교수

로마 카톨릭교회 선교가 조선인이 중국이나 일본을 통해 그리스도교를 자발적으로 받아들였던 것처럼 프로테스탄트교회 역시 중국에 자리 잡고 있었던 선교사들과의 접촉하였던 조선인들에 의하여, 공식 외국 선교사들이 선교를 위하여 귀국하기 이전에, 복음을 받아들여 그리스도교가 뿌리내리기 시작하였다.

한국 현대 프로테스탄트교회의 선교는 스코틀랜드의 성서공회에서 만주 우장으로 파송했던 선교사들인 존 로스(1841-1915)와 그의 인척(처남매제 사이) 존 멕킨타이어(1837-1905)에 의하여 접촉을 통하여 이루어졌다. 그들은 당시 스코틀랜드 성서공회 소속으로 산동성 지푸에 있던 선교사 알렉산더 윌리엄스를 통해 그가 한국인들을 사귀면서 체험한 경험과 토마스 목사의 순교에 관한 이야기를 듣고 한국선교를 결심하게 되었다. 그리고 1873년 가을 당시 조선과 청국간의 합법적인 교역장이었던 고려문에 이르러 동만주에 사는 한국인들에게 한문성경을 배포하였다. 1874년에는 고려문에 다시 방문하여 성경을 한국어로 번역할 계획을 세우고 이응찬을 만나 성경번역에 착수하였다. 이후에 의주 청년들 이성하, 백홍준, 김진기가 역시 이 성경번역에 참여하였다. 이들 네 사람은 1879년 존 멕키타이어에 의하여 세례를 받았다. 1879년 이전부터 만주에서의 이들을 중심한 한국인들의 프러테스탄트의 신앙공동체는 정기적으로 모임을 가졌던 것으로 보인다.

존 로스는 이응찬과 더불어 1878년 마가복음을 번역하였고, 이 때 서상륜과 서경조가 가담하였고, 서상륜은 1879년 우장에서 존 로스에 의해 세례를 받았다. 1878년 누가복음을 번역하여 1882년에 요한복음과 함께 인쇄하였다. 1883년에는 마태, 마가, 사도행전이 인쇄되었다. 이 과정에서 존 로스 선교사는 1877년 ‘한영문전입문’, 1879년에는 한국의 역사 예절 관습 등을 소개한 ‘한국의 역사, 고대와 근대’를 출판하였다. 그리고 1887년 신약성경을 완역하여 ‘예수성교전서’를 출판하였다. 이들은 한문성경보다 더 나은 성경번역을 했다고 자부하고, 번역에 평안도 사투리, 하나님, 성령, 천사 등의 용어를 사용하였다.

성경번역에 참여하였던 서상륜, 이성하, 백홍준 등은 번역이 끝난 후 성경을 파는 매서인으로, 전도인들로 활동하였다. 서상륜의 고향은 의주였으나, 그는 황해도 소래에 한국 최초의 교회를 설립해 소래와 서울을 왕래하면서 전도해 많은 신자를 얻을 수 있었다. 1884년 봄 서상륜은 존 로스 목사의 도움을 요청한 편지가 조정의 외교 자문관 이었던 독일인 묄렌도르프의 파울 게오르그(그의 부인은 경건주의 독실한 신앙을 가짐)에게 전달되었고, 인천에 배편으로 보내온 6000부의 복음서를 그의 도움으로 인수해 여러 지방을 다니며 배포하였다.

이미 1876년 조선의 문호개방과 더불어 한일수호통상조약(강화도조약)이 맺어졌다. 이 조약의 체결 후 정세는 급변하였다. 그리고 이러한 국내외 정세의 급변속에서 1897년 고종황제에 의하여 대한제국이 선포되었다. 이러한 변화의 시기에 일본에서도 한국어 성경번역이 추진되었다. 왕의 친족이었던 이수정은 1882년 고종의 수신사 박영효의 수행원으로 3개월 동안 일본에 갖다가 공무가 끝난 후 서양문물을 배울 목적으로 공직을 내려놓고 일본에 머물며 기독교인 농학자 쯔다센에게 배웠다. 그리고 그에게 그리스도교의 감화를 받아 한문성경과 그리스도교서적을 읽으며 관심을 갖고, 미국 장로교 선교사 조오지 낙스와 감리교 선교사 맥클레이를 알아 한국선교의 교량역할을 하게 되었다.

이수정은 1883년 4월 일본인 목사 야스가와 토오르에게 세례문답을 하였고, 미국인 선교사 조오지 낙스에게서 세례를 받았다. 그리고 미국 성서공회 헨리 루미스의 요청으로 성경번역을 시작하였다. 1884년에는 요코하마에서 한문성경에 토를 붙인 ‘현토한한신약전서’가 발행되었다. 이와는 별도로 1883년 6월부터 온전히 한글로 된 성경을 출판하고자 시도하여 1884년 11월에 ‘마가가 전한 복음서 서언’을 출간 하여 1885년 4월 5일 입국하는 북장로교회의 언더우드와 감리교의 선교사 아펜젤러가 들고 왔다. 그리고 1884년 사복음서와 사도행전번역을 완성하였다. 로스역본은 압록강부근에서 이수정 역본은 요코하마에서 발행되었다.

또한 1884년 3월호 미셔너리 리뷰의 “크리스마스 아동란”에 1883년 12월 13일에 요코하마에서 미국선교부에 한국에 선교사를 파송해 줄 것을 요청한 이수정의 편지가 실렸다. 이에 영향을 받아 두 선교사가 공식적인 선교사로 파송되었다. 자기 주변에 벌어진 정치적인 정황으로 인해 이수정은 1886년 6월 2일 귀국하여 체포 처형되었다는 주장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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