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교 초창기의 아시아 선교역사(I)
상태바
그리스도교 초창기의 아시아 선교역사(I)
  • 운영자
  • 승인 2014.06.18 10:1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옛 비단길 따라서 중앙아시아 지역에 복음 전래된 듯
▲ 조병하 교수

그리스도교 역사의 기술은 전통적으로 유럽과 북미대륙에 관련하여 그리스도교의 발전사에 집중되어 왔다. 그것은 프로테스탄트교회에 속한 신학자들의 연구들이 현대에 이르기까지 서방교회의 역사에 의존하고 있었던 것이 가장 큰 이유일 것이다. 더구나 1900년이나 지속되었던 비잔틴교회와 그 영양 아래에 있었던 지역이나 러시아 정교회가 크게 영향을 끼쳤던 지역들이 수 십 년 동안 공산화되어 종교를 배척하거나 탄압함으로 인하여 현실적으로 교류가 단절되고 폐쇄되었었기 때문에 동방교회의 역사는 얼마 동안 사람들의 관심 밖에 있었다.

또한 그리스도교가 예루살렘에서 시작하여, 물론 유대인들과 헬라-로마인들에 의하여 수많은 박해도 있었지만, 안정된 로마제국 내에서 유대교와 분리되고, 로마제국의 전통 종교들을 극복하고 제국의 삶에 가장 중요한 가르침으로 자리 잡기까지 통일되게 성장 할 수 있었던 것은 통일된 로마제국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평가할 수 있겠다. 사실 그리스도의 복음 전도가 유럽으로만 향한 것은 아니었다. 사무엘 휴 모펫과 같은 학자는 5세기 말까지 아시아지역에 그리스도교가 전래된 증거가 없다고 하지만, 근동 아시아를 여행하여 시리아어와 아람어 필사본을 모았던 알폰스 밍가나(1878-1937)나 므함메드의 이슬람교의 창시부터 14세기까지의 역사를 살펴 아시아에서의 그리스도교의 소멸의 역사를 쓴 라우렌스 이 브라운, 에뎃사와 인근 나라들의 초기 그리스도교 시작과 관련된 문서들을 모은 윌리엄 쿠레톤 등은 일찍부터 사산조 페르시아뿐만 아니라 중앙아시아 지역까지 복음이 전래되었던 것을 주장하고 있다.

무엇보다도 교회사가 카이사레이아의 에우세비오스(264/65-339 혹은 340)의 “교회사”에서 당시 카스피해 동남쪽 지역이었던 파르티아 선교를 위해 열두 제자들 중 도마가 사역지로 받았다는 것과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황제(161-180) 시대에 시리아어를 사용하였던 바르데자네스가 메소포타미아지역에 만연하였던 마르키온주의 및 여러 다른 이단들과 논쟁한 것을 기록하였고 친구들에 의해 헬라어로 번역되어 소개 되었던 글에서 이미 사산조 페르시아와 중앙아시아 쪽으로 복음이 전해졌음을 입증해 보여주고 있다. 전설처럼 알려져 있는데, 예수님의 제자 중 도마는 메디아인, 파르티아인, 페르시아인, 박트리아인들 등등에게 복음을 전하였고(2년 정도) 최종적으로 인도에서 복음을 전하다 순교했다고 한다. 눅 10:1에 나오는 70인의 제자들 중 하나로 알려진 다대오-시리아지역에서는 앗다이-가 비단무역을 하는 유대인들에게 복음을 전했고 옛 비단길을 따라서 중앙아시아 지역에 복음이 전래되었을 것이라고 알려지고 있다.

250년경 시리아어로 쓴 “사도들의 가르침”이라는 자료에 보면 앗다이가 에뎃사와 니시비스, 아라비아, 메소포타미아의 경계지역에 교회를 세운 사람으로 알려져 있다. 교회사가 에우세비오스는 에뎃사왕 아브가루스가 예수께 질병 치료를 위해 간청했고, 예수께서 답장하여, 자신의 승천 후 제자를 보낼 것을 약속하였고, 후에 도마가 파르타이 공화국인 오스로에네에서 칠십 문도 중 하나였던 다대오를 보냈다고 기록하고 있다. 390-430년에 기록한 것으로 알려진 “앗다이의 가르침”은 앗다이가 에뎃사의 아브가루스왕에게 가서 병을 고쳐주었고 세례를 주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이러한 복음전도의 결과는 190-250년에 많은 교회를 세워 동쪽의 쿠지스탄으로부터 서쪽 카스피해까지 20명 이상의 감독들과 17개의 주교구가 있었다고 한다. 알폰소 밍가나는 파르티아 왕국의 그리스도교에 대한 관대한 정책으로 전 지역에 20여 교구가 있었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하르낙의 말을 빌어 2세기경 페르시아지역에 약 360개의 교회가 있었다고 말한다.

224년 이래로 페르시아제국 내에서 초기 그리스도교의 중심지는 티그리스강 동쪽에 위치했던 아디아베네, 쿠지스탄, 니시비스(363년에 페르시아영토가 됨) 등을 들 수가 있다. 5세기 초에 그리스도교는 이미 페르시아제국을 넘어 널리 퍼져 있었다. “보편적인 교회”(정통교회)의 지도 아래서 410년 개별적인 주교구에 의하여 페르시아제국의 중심도시 세러위케이아-크테시폰에서 첫 번째 교회회의가 열렸다.(이 시기는 로마제국의 서쪽에서는 교황제도가 확립되었고, 동쪽에서는 5개의 총대주교구가 교회정치제도로 확립되어 있을 때였다.) 로마제국 밖 페르시아 지역을 중심하여 있었던 교회들은 424년 두 번째 회의에서 로마제국교회(동쪽)에 항소권을 사용하였고, 로마제국교회에 의하여 고유의 보편교회에 대한 권위가 받아들여졌고, 5세기 말이 되기 전에 독자적인 총대주교구로 받아들여졌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