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현장을 예술의 무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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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현장을 예술의 무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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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4.06.02 2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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샬롬의 예술을 향하여 - 시어벨트의 개혁주의 미학 (8)
▲ 안용준 목사

인간은 하나님과 특별한 관계에 있다. 창조주의 말씀을 직접 들으며 창조물을 관리할 청지기의 능력을 부여받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선하심이 잘 드러나도록 관리할 책임을 부여받은 것이다. 하늘과 바다를 채울 생명체가 등장하면서 하나남이 첫 번째 복된 말씀을 하신다.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이 복은 우리가 애정과 책임감을 가지고 자연을 이용하는 법을 익히게 하시며, 창조하신 선한 땅에서 미래를 보장하시겠다는 언약이다.

인간은 모두 하루 중 많은 시간을 일터에서 보내며 영향력을 끼치며 살도록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다. 그래서 일터와 삶의 현장은 빛과 샬롬의 영역이 될 수 있다. 이러한 삶의 현장은 성령님이 머무는 곳이자 하늘로 통하는 문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삶의 현장에서 발생하는 다양한 삶의 주제와 과제를 다루는 가운데 성령님의 임재를 체험하며 하늘의 놀라운 주권적 권능을 인정할 수 있다는 말이다. 환희가 넘치는 샬롬의 주인공이 우리가 되어야 하지 않겠는가.

그렇다면 왜 우리는 삶의 현장을 일구는가? 우리가 삶을 가꾸는 일은 우리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삶을 일구는 것만큼 그분의 형상대로 자라난다. 우리가 겸손히 진리와 아름다움을 사랑하고 무엇보다 하나님을 사랑하면서 삶을 일굴 때, 우리 주위에서 샬롬의 낙원이 자라날 것이다.
시어벨트에 따르면 인간은 “몸이 없는 영혼이 아니라 몸을 가진 피조물이므로, 손으로 세상을 만들어 가고 그 노동의 열매를 보고 기뻐하며 보람을 느낄 때에도 샬롬이 임하게 된다.

17세기의 목가적 정경에서 정겨운 아름다움이 배여 나오도록 하는 시도는 샬롬의 공간을 그려내는 것과 같다. 얀 반 호이엔(Jan van Goyen, 1596-1656)의 1625년 작품 <나루터가 있는 마을풍경>은 이것을 잘 반영한다. 화면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주변 환경과 잘 조화되어 마치 자연 풍경의 일부처럼 보인다. 호이엔은 극적이거나 시선을 끄는 것이 아닌 눈에 보이는 자연과 인간의 소박한 조화를 그렸을 뿐인데 영웅적인 이야기만큼이나 만족스러울 수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화면의 전면 우측에 노 저어 가는 배가 보인다. 파이프 담배를 피우는 남자, 류트 연주자, 바이올린 연주자, 맹인, 그리고 연애하는 커플 등 사람들은 즐거워하는 표정으로 자신의 길을 가고 있다. 이 인물들은 다섯 개의 작은 장면으로 인격화되어 설명될 수 있다. 호이엔은 이처럼 평범한 마을의 풍경을 평온한 아름다움이 배여 있는 정경으로 변형시키는 방법을 알고 있었다. 화면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관찰자로 하여금 감각적 즐거움을 소유하여 감상할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한다. 노동의 산물을 적재하고 시장으로 향하고 있는 왼편의 농부는 인생에 활력을 불러일으키는 능동적인 힘을 재현한다. 호이엔은 우리들의 눈에 익은 모티브를 사용하여 조용한 아름다움이 넘치는 정경으로 인도하여 눈에 보이는 것에 기쁨을 느끼게 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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