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모두가 ‘레 미제라블’인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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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모두가 ‘레 미제라블’인 것을…
  • 김목화 기자
  • 승인 2013.01.29 21:5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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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말하다 ‘레 미제라블’
▲ 자신의 죄를 용서받은 장발장은 자신과 같은 ‘레 미제라블’들을 도우며 살아간다.

영화 레미제라블 속 예수의 용서와 사랑
누구나 초등학교 시절, 가난하고 배고픈 한 사내가 빵 하나를 훔친 동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을 것이다. ‘장발장’이라고도 불리는 이 이야기는 최근 열풍인 영화 ‘레 미제라블’이다.
2시간 30분의 긴 영화임에도 ‘레 미제라블’은 개봉 3주 만인 지난 9일 440만 관객을 넘어섰다. 뮤지컬 ‘레 미제라블’도 7만여 관객을 모으며 인기를 모으고 있다. 2천 쪽이 넘는 원작 소설도 지난달 영화 개봉 후 15만 부가 팔렸다. 지난 성탄절에 발매된 영화 OST 음반도 2주 만에 2만여 장이 팔렸다.
음반은 1만 장만 팔려도 ‘플래티넘’이라 하는데 ‘레 미제라블’ OST는 2주 만에 ‘더블 플래티넘’ 기록을 넘어서며 연이은 대박 행진을 하고 있다. 이토록 영화 ‘레 미제라블’이 열풍하는 이유는 무엇일까.<편집자 주>

장발장 모습 속에서 성경 인물이
자비와 사랑, 그 중심에는 용서가

막노동으로 살아가던 가난한 장발장이 도둑이 된 것은 누이의 배고픈 조카들에게 먹일 빵 한 조각이 없어서였다. 한밤 중 가택에 침입해 절도 행위를 한 혐의로 5년형을 받은 죄수번호 ‘24601번’ 장발장은 수감 4년째 탈옥했다. 이틀 만에 잡힌 장발장은 3년형이 추가됐다. 6년째에 또 탈옥했고 잡히면서 그는 5년이 더 추가됐다. 10년째 또 탈옥하다가 3년 추가, 13년째 또 탈옥해 3년을 추가했다. 도합 19년이 되던 해, 가석방으로 풀려난 장발장은 세상에 대한 분노와 증오로 가득했다.

흔히 알고 있는 동화 ‘장발장’의 내용은 여기에서 끝난다. 하지만 영화에서는 거대한 장관과 함께 20분 만에 마무리된다. 나머지 2시간 10분은 하나님의 용서와 사랑으로 거듭난 인생으로 살아가는 장발장의 감동 스토리로 채워진다.

▲ 미리엘 주교의 용서와 사랑은 두 개의 은촛대로 평생 장발장의 가슴에 남는다.
‘매우 위험한 자’라 낙인된 신분증 탓에 가는 곳마다 쫓겨나기 일쑤였던 장발장은 마음에 평생 우뚝 서 있을 존재를 만난다. 오갈 데 없는 그에게 잠자리와 먹을 것을 베풀어 준 미리엘 주교다. 미리엘 주교는 교회 권력에 찌들고 부패한 모습이 아닌, 가장 낮은 자부터 섬기고 보듬는 실천적 종교인으로서 장발장의 양심 거울로 묘사된다.

하지만 장발장은 미리엘 주교의 은식기를 훔쳐 달아난다. 얼마 못 가 경찰에 잡힌 장발장은 이를 선물받았다고 거짓말해 확인차 수도원으로 끌려온다. 하지만 미리엘 주교는 “왜 내가 준 선물을 다 가져가지 않고 일부만 가져갔느냐”며 은촛대를 건낸다. 주교의 거듭된 사랑은 장발장의 지난 삶을 뉘우치게 했고 그의 영혼에 선함과 희망의 등대가 되었다. 그 후로 미리엘 주교의 사랑은 두 개의 은촛대로 평생 장발장의 가슴에 남는다.

장발장은 이전의 삶을 청산하고 새로운 신분으로 시장에까지 올라 다른 사람들을 돕는 인생으로 거듭났다. 자신을 낮추시고 베풀고 용서하며 선한 영향력을 끼친 예수님처럼 하나님의 사랑으로 변화된 장발장의 모습에서는 예수의 삶이 스크린에 비춰진다.

한편 사라진 장발장을 끊임없이 추적하는 자베르 경감이 있다. 우연히 시장 장발장의 모습에서 죄수 24601번을 보게 된 자베르는 정의를 수호하는 데 앞장서며 끝까지 장발장을 뒤쫓는다. 자베르는 “나는 감옥에서 태어났다. 너와 같은 시궁창 출신”이라지만 “한 번 도둑은 영원한 도둑”이라 믿는, ‘사랑과 자비’라곤 없는 매몰찬 인간이다.

자베르는 시장으로 위장한 장발장이 죄수임을 알고선 포기하지 않고 그를 잡으려 한다. 하지만 불리한 상황에서 자신을 죽일 수도 있었던 장발장의 용서와 자비, 사랑에 혼란을 겪는다. 그리고 자신이 정한 ‘정의’가 무너지자 결국 센느강에 투신해 자살한다.

자베르와 장발장의 모습은 우리와 많이 다르지 않다. 용서를 받아들인 장발장과 그렇지 못한 자베르의 최후는 극과 극으로 나뉘었다. 용서받은 장발장은 자신과 같은 ‘레 미제라블’들을 도우며 살아간다. 죄지은 자를 용서하며 아픈 자를 살리며 성경 속 인물들처럼 선한 영향력을 전파한다. 변화된 장발장의 삶에서는 모세, 야곱, 삭개오, 바울, 베드로의 모습이 보이기까지 한다.

‘레 미제라블’의 뜻은 바로 ‘비참한 사람들’이다. 비참한 사람, 장발장은 피흘림과 복수가 아닌 함께 아파하고 안타까워하며 눈물을 닦아주며 구원의 힘을 입증한다. 영화에는 자신은 물론 창녀 판틴과 그의 딸 코제트, 훗날 코제트의 연인 마리우스까지 예수 그리스도 사랑의 힘을 실천해가며 수많은 ‘레 미제라블’들을 일으켜 세우며 구원해가는 장발장의 모습을 여실히 보여준다.

오늘날의 교회도 스스로 장발장이 되어야 한다. 우리 주변의 ‘레 미제라블’들을 돌아보며 품고 일으켜 세워주며 다시 꿈꿀 수 있도록(I dreamed a dream) 말이다.

▲ 영화 속 판틴은 장발장이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실천하는 데 촉매제 역할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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