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지치기
상태바
가지치기
  • 운영자
  • 승인 2012.10.31 14:4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김한호 목사 (춘천동부교회)

집 앞을 산책 하다 보면 가을이 깊어졌음을 느낍니다. 겨울이 가까워 올수록 나무들은 그렇게 풍성함을 자랑하던 나뭇잎들을 아낌없이 떨어버리며 무성하게 뻗어갔던 가지들을 쳐내가고 있습니다. 무서우리만큼 철저히 모든 것을 떨어뜨립니다. 왜냐하면, 그렇게 떨어뜨린 나무만이 그 이듬해에 더 많은 열매를 맺을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495년 전 중세에는 장원제도가 있었습니다. 장원은 마을 또는 여러 개의 마을로 이루어져 있으며 경제생활의 기본 단위였습니다.

지배층 각자가 가지고 있는 토지 내에서의 영주와 농민(농노)로 구성된 하부부족인데 이것이 봉건제도사회의 경제조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농민의 집들은 큰길가에 옹기종기 모여 있었으며 영주는 엄청난 부를 소유하고 있었습니다. 자유민이나 농노는 영주에 대하여 재판, 군역, 납세의 의무가 있었습니다. 더군다나 많은 수의 농노는 영주의 승낙 없이는 소속 장원을 떠날 수 없었습니다. 그들은 자기 생활에 필요한 최저의 생활 물자만 얻었을 뿐 나머지는 모두 영주의 소유물이 되었습니다.

이들의 생활은 매우 비참하고 자유롭지 못했습니다. 여기에 영주가 주교의 일까지 같이 담당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이럴 경우 영주는 정치와 종교의 힘을 모두 갖게 되는 것이지요.

이러한 상황 속에서 부유한 영주들을 비판하며 청빈사상을 주장하는 이들이 등장합니다. 가난한 것이 복되다는 인식이 사회에 퍼지게 된 것입니다. 사상자체는 좋을지 모르지만 이 사상으로 인해 그 당시 사회를 주도하고 변화시켜야 하는 주축들이 수도원으로 다 들어갑니다. 많은 사람들이 일하기보다는 구걸을 하며 수도사의 삶을 살아갑니다. 대표적인 수도사가 바로 성프란체스코를 중심으로 하는 탁발수도사들입니다.

한쪽은 너무 부를 갖고, 다른 한쪽은 청빈을 부르짖다보니 사회가 어떻게 되겠습니까? 여기에 흑사병과 십자군 전쟁 등으로 남자들이 죽어나가며 일하는 사람들이 줄어들게 되어 사회에는 생산성이 급속도로 떨어지게 되었습니다. 그런데도 종교지도자들은 여기에 베드로 사원을 짓는다고 사람들에게 면죄부를 팔기 시작합니다. 민초들의 삶은 더욱 피폐해지고 시대는 혼탁해져 갔습니다. 이러한 시대에 마틴 루터는 종교개혁을 시작합니다.

루터의 종교개혁이 무엇입니까? 정치와 종교를 분리하고 일 할 수 있는 사람은 직업을 갖고 일하라는 것입니다. 많이 갖고 있는 재산을 내어놓고 권력도 돌려주고 잘못된 신앙관을 하나님의 말씀위에 바로 잡아주는 것, 한마디로 가지치기를 하는 것입니다.

오늘날도 가지치기는 계속되어야 합니다. 교회가 사회에 지탄을 받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교회가 청빈을 부르짖지만 실제로는 부와 권력을 다 소유하려고 하는 이중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지요. 이런 점에서 가지치기를 해야 합니다.

어느 날 진공청소기를 돌려 집안 구석구석을 청소하다 청소를 끝낸 뒤 문든 청소기의 윗덮개를 보고는 깜짝 놀랐습니다. 오래된 먼지가 뿌옇게 덮이고 딱딱하게 굳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남들은 깨끗하게 청소하면서도 정작 자기 자신을 청소하는 것을 잊은 진공청소기의 모습 속에서 저는 제 자신의 모습을 보았습니다.

495년 전 우리의 신앙의 선배들이 교회의 본질을 회복하기 위해 개혁, 갱신하는 사람이 되었듯이, 종교개혁 주일을 맞이하는 우리도 나와 우리 주변부터 가지치기를 하여 추운 겨울이 지나 따뜻한 봄날이 올 때 건강하고 풍성한 생명의 움을 틔우게 되기를 바랍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