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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2.04.12 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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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인 목사 (예장 통합총회 기획국장)

총선의 열기가 뜨거웠다. 선거란 언제나 변화무쌍한 생물과 같아서 언제 어떻게 뒤바뀔지 아무도 모르는 예측불허의 일이라 관계자들은 긴장하기 마련이다. 그러나 결과가 나온 후에는 깨끗이 승복하는 것이 아름다운 자세라 할 것이다.

이번 선거를 통하여 가장 나의 관심을 끌었던 것은 어떤 후보의 기독교 비하 발언에 대한 교회의 태도였다. 교회의 잘못을 지적하는 것은 절대로 해서는 안 되는, 거의 ‘신성모독’에 가까운 일인지, 혹은 교회와 기독교에 대한 비판을 어떤 수위까지 어떻게 수용해야하는 것인지 많이 생각하게 하는 지난 몇주간이었다.

기독교의 역사를 크게 중세 이전까지의 교회와 종교개혁 이후의 교회로 나누어서 생각해 보려 한다. 종교개혁은 그때까지 거의 절대적 권위를 가진 중세 교회에 대한 매우 발칙한 도전이요 비판이었다. 이전까지 아무도 감히 꿈꾸지 못한 중세의 카톨릭 교회에 대한 공개적인 비판으로 개혁의 첫 장을 열었던 것부터 그렇다.

종교개혁 이후 기독교회와 신학 끊임없는 자기 성찰을 가지려는 노력으로 오늘에 이르렀다. 끊임없이 그 당시 시대와 사람들, 현재에 와서는 하나님의 피조물이라는 보다 광범위한 대상을 가지고 하나님의 사랑이 어디를 향하고 있으며,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헤아리는 일에 많은 교회의 지도들과 신학자들 믿는 사람들의 노력이 경주되어 왔다.

그러나 지난 몇 주, 한국 기독교회가 견지했던 한국 교회에 대한 사회의 비판과 기독교인들의 반성에 대하여 우리는 어떤 태도를 가졌는지 뒤돌아 볼 때다. 한국 교회가 정치권력에 어떤 형태든지 빌붙어 기생하려는 태도라든가, 어떤 이유에서건 교회를 비판하거나 교회안의 부패와 비리에 대하여 말하는 것을 무조건 처단하고 금지하려는 것이 우리의 입장이었다면 이것은 중세 교회가 그 당시 사회 안에서 가졌던 기득권을 지키기 위한 몸부림과 가히 견줄만한 죄악이었다는 생각을 금할 수 없다.

우리 기독교회와 기독교인들은 왜 이렇게 우리들을 향한 내외적인 비판에 예민하게 반응하는가? 무엇이 우리들을 이렇게 편협한 외통수로 몰아가는 가하는 질문에 시원스런 답이 나오지 않는다.

한국 교회가 더 이상을 부흥을 할 수 없을 것이라던가, 대형교회가 너무 금권에 취약하다든가, 성직자들의 윤리의식에 문제가 있다든가 하는 비판은 어제 오늘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예수님의 부활이후 남겨진 예수 구주로 고백하는 신앙공동체가 아마도 처음부터 가졌던 한계가 아니었나 하는 생각을 한다.

인간에게 기본적으로 내재되어있는 죄성이 아마도 우리들을 이렇게 몰아가는 것 일게다. 그렇다면 이런 우리들의 한계, 신앙공동체인 교회의 한계들을 솔직히 인정할 수는 없을까? 우리의 죄를 솔직하게 인정하고, 고백하는 것이야말로 회개의 첫걸음이 아닌가 말이다. 그러나 반대로 우리의 모습은 어떤가? 이런 비판이 나오면 펄쩍 뛰기부터 한다. “아니다, 그렇지 않다. 왜곡하여 말한 것이다. 심지어는 사탄의 세력이다.” 라고까지 몰아간다. 왜 이렇게 우리들 기독교인들은 비겁하고 두려움이 많은 것인지 모르겠다.

믿음을 가지고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말아야할 우리 믿는 사람들이 사회의 여론을 두려워하고, 폭로전을 두려워하고, 사실과 맞닥뜨리는 일에 기겁을 한다. 사실은 사실이라고, 잘못은 잘못이라고 인정할 때 비로소 우리들은 아무 죄가 없이 십자가를 지셨던 예수를 만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들을 자화상을 가감 없이 얼굴을 대면하며 보는 것처럼 직시할 때 부활하신 예수를 의심 없이 만날 수 있을 것이다.

“할렐루야, 예수 부활하셨다.” 라는 찬양을 드린 우리들이 솔직해 지기엔 너무 멀리 와버린 것은 아니기를 기도한다. 너무 멀리 와 버렸다 해도 진정으로 부활하신 예수의 영광을 함께 경험하려면 예수의 십자가 안에서 우리들의 자화상을 곰곰이 들여다보아야 할 것이다. 우리들의 힘과 지혜로가 아니라 부활하신 예수께서 보내주시기로 약속하신 성령의 도우심으로 지금 한국 교회가 앓고 있는 심한 몸살을 이겨내고,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드릴 수 있을 것이다. 하나님의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같이 이 땅 위에서도 이루어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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