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교회 이름으로는 하지 마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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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교회 이름으로는 하지 마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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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2.03.13 1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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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석찬 목사 (예따람 예배공동체)

1998년부터 매년 여름이 되면 충청남도 보령시가 대천해수욕장에서 머드팩(mud pack)축제를 주최한다. 청정갯벌에서 바다진흙을 채취하여 머드마사지나 머드체험행사를 한다. 머드는 인체에 유익한 원적외선이 대량 방출되고, 게르마늄, 미네랄, 벤토나이트 성분함량이 높아 피부미용에 탁월한 효과가 있음이 입증되었다.

몸에 좋다면 양잿물이라도 마실 수 있는 사람들이니, 진흙이 좋다는데 가만히 있을 리 없다. 갯벌의 진흙탕에 뛰어들어 뒹굴며 온 몸에 진흙을 바른다. 진흙을 뒤집어쓰고서 흰 이를 드러내며 웃는 모습을 보노라면 건강미에 저절로 미소가 흐른다.

짜잔! 진흙탕 운동장이 개장되었다. 여름도 아닌데 무슨 머드팩축제냐고 묻게 된다. 진흙탕이긴 한데, 건강에 좋은 머드체험장은 아니다. 오히려 몸도 버리고 금전적인 손해도 막심하고 정신적인 스트레스가 무척 많을 뿐만 아니라, 좋던 인간관계까지도 깨뜨리는 진흙탕이다.

무슨 진흙탕 운동장인가? 4월 11일에 있을 3백 명의 국회의원을 선출하는 선거와, 12월 19일에 있을 ‘제18대 대통령 선거’다. 흔히들 말하길 정치판을 진흙탕에 비유한다. 이 진흙탕은 여름을 즐겁게 하는 머드팩축제와는 다르다.

지금 온 나라는 국회의원 후보 공천 문제로 온통 진흙탕 싸움을 하고 있다. 연말에 있을 대선을 앞두고 각 정당들과 예비후보군들 사이에 진행되는 막후 전쟁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추잡하고 더러운 진흙탕 전쟁이다.

왜, 무엇 때문에 정치라는 진흙탕에 사람들은 뛰어드는가? 대통령이나 국회의원, 시의원, 구의원 등에 당선만 되면 정치권력과 이에 따른 엄청난 이익을 얻기 때문이다. 권불십년(權不十年)이요, 목을 겨누는 칼이 걸린 의자임에도 불구하고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권모술수(權謀術數)를 다 사용하여서라도 감투를 쓰고 의자에 앉으려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정치(政治)의 뜻은 ‘사물을 널리 바르게 다스림’이다. 그런데 오늘의 정치는 권력을 얻고 이에 따른 물질적 이익을 얻는 수단으로 전락했다. 정치집단은 이익추구집단이란 말이다. 물론 국민복지라든가 국가안녕이라는 슬로건을 경시하는 것은 아니다. 정치현실을 말함이다. 공약은 그럴 듯 포장하지만 속셈은 이익추구에 있다. 이것을 부정할 사람이 있을까?

나라가 온통 정치 바람으로 난리인데, 교계도 덩달아 춤을 추고 있다. 보수 진보로 나뉘어 제각기 색깔론으로 뜨겁다. 생각이 다름을 인정하는 성숙보다는, 생각이 다른 것을 자신의 시각에서 틀린 것으로 규정하고 적개심을 불태운다. 적(敵)과 아(我)로 나누며 원수가 되기도 한다.

왜 교회의 이름을 가지고 정치에 뛰어드는가? 교회의 이름으로는 정치를 하면 안 된다. 성직자가 개인적으로 자신의 정치적 입장이나, 선호하는 정당, 정책은 가질 수는 있다. 국민의 한 사람이므로 당연한 권리이다.

그러나 교회의 이름으로 한 정당을 지지하는 정치를 하면 더 이상 교회가 아니다. 게다가 자신의 입장만이 옳고, 정의이며, 하나님의 뜻이라는 아전인수(我田引水)격의 주장은 위험천만(危險千萬)이다. 교인은 각기 보수, 진보, 중도적인 입장을 가진다. 교회는 모든 교인을 품고 있기에, 교회가 한 정당의 입장에 서는 것은 다양한 교인의 입장을 고려하지 않고 무시하는 것이 된다.

교회가 이익 추구하는 일에 동참한다는 것도 교회의 본질과는 거리가 멀다. 교회가 정치에 참여하게 되면, 오늘의 정치속성상 정치시녀가 될 뿐이다. 이용만 당한다. 교회가 정치에 참여하면, 그 순간부터 예언자의 자리를 잃어버리게 된다. 얼마나 부끄러운 일인가! 예언의 소리를 내지 못하면 더 이상 교회가 아니다.

“제발, 정치, 교회의 이름으로는 하지 마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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