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순절의 ‘숨비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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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순절의 ‘숨비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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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2.03.07 13: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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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상기 목사 (예수로교회)

해녀들이 잠수를 했다가 숨을 고르기 위해 물 위로 얼굴을 내밀며 토해내는 휘파람소리를 ‘숨비소리’라고 한다. 수천 번의 숨비소리가 테왁 아래 매달려 있는 망사리를 채울 수 있고, 망사리가 채워지는 만큼 해녀의 이런저런 희망들도 채워지는 것이다.

내일의 망사리는 오늘의 숨비소리로 채워진다. 바다의 깊음에 잠기고 십자가의 은혜에 이른 자들은 믿음의 실상과 증거를 가진다. 부활의 소망을 품은 3월의 봄은 숨 가쁜 사순절이다.

겨울을 두 발로 딛고 이마로 봄을 맞으며 마음으로 꽃을 만나는 것이 봄이다. 누군가는 봄을 ‘본다’의 준말이라 했던가. 봄은 믿음이고 믿음이 봄일 것이다. 시인 박목월은 봄은 2월의 베개 밑으로 온다고 했다.
우리는 봄이 도착해서야 봄이라고 말하지만 겨울의 중심에서 이미 봄은 오고 있었던 게 아닌가. 조선조의 지략가였던 정도전은 봄이란 봄의 출생이며, 여름이란 봄의 성장(盛裝)이요, 가을은 봄의 성숙이며, 겨울이란 새로운 봄을 위한 봄의 수장(收藏)이라 했다.

올 들어 무역수지 흑자 기조가 흔들리고 유가가 들썩이고 이러한 해외 요인은 차치하더라도 한국의 잠재 경제성장률은 저출산-고령화로 인해 중장기적으로 1%대까지 떨어질 것으로 예측된다고 한다.

북한의 잇단 전쟁위협 탓에 북·미간 ‘베이징 2·29 합의’를 통해 모처럼 조성되고 있는 한반도의 대화 분위기에 먹구름이 감돌고 있다. 북측은 엊그제 군인과 주민 15만 명이 동원된 ‘평양시 군민대회’를 열고 우리 측에 대한 무자비한 징벌을 다짐했다.

최근 북측 반응은 기존의 대남비난과 궤를 달리한다. 적어도 북한 외무성 및 조국평화통일위원회 담화와 관영매체들의 보도만으로 보면 북측은 사실상 준전시상태에 돌입했다. 과연 동토의 땅에도 봄은 오는 것일까.

이런 가운데 한류 스타 30여 명이 중국 내 탈북자 강제 북송 반대 호소를 위해 ‘크라이 위드 어스’(Cry with us-함께 울어요)라는 북송 반대 콘서트를 개최했다. 눈물이 그렁그렁 맺혔고 목소리는 떨렸다. 무대에 선 연예인들은 비장했고 듣는 청중도 숙연했다. 콘서트가 진행되는 내내 그랬다.

성경은 우는 자들과 함께 울라고 했다. 인권과 사회적 약자 보호는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가치다. 탈북자 문제는 글로벌 인권 현안으로 떠오른 상태다. 미국 의회가 북한 인권 청문회를 개최하고, 세계 주요 도시에서 북송 반대 집회가 열린다. 이들은 ‘세이브 마이 프렌드’(Save My Friend-내 친구를 구해주세요)란 글자가 적힌 팻말을 들고 서툰 한국말로 “탈북자 강제북송을 중단하라”고 외친다.

탈북자 문제에 대해 입을 닫는 건 인권의 입을 닫는 것이다. 그들의 인권유린에 눈을 감는 건 인간에게 눈을 감는 일이다. 그들의 절규를 남의 일처럼 흘려듣는 건 공동체로서의 유대감을 져버리는 일이다. 탈북자 문제에 대한 우리의 태도는 인권의식을 가늠하는 상징적 리트머스 시험지다.

국내 좌파와 그에 이끌려 다니는 야당들은 북한 인권에 입을 닫는다. 북한 주민의 인권보다 북한 당국과의 연대관계를 중시하는 태도다. 정치권은 민생을 뒤로 한 채 선거치레에 여념이 없다. 교회의 침묵은 기도가 마렵다.

북한은 중국과의 돈독한 관계를 설명할 때 순망치한(脣亡齒寒)이란 고사성어를 자주 끌어댄다. 입술이 없어지면 이가 시리다는 말이다. 하지만 중국은 호파당위(戶破堂危)라는 말을 더 보탠다. 대문이 부서지면 집이 위태롭다는 뜻이다. 입술과 대문은 항상 북한이고 이(齒)와 집(堂)은 중국이다. 뿌리 깊은 중화사상이 깔려 있다.

중국의 속내는 중조일치(中朝一致)의 전략으로 남한과 북한을 자국의 이익을 위한 지렛대로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이제 탈북자 문제는 양국 현안 차원을 넘어 국제 인권문제로 확대되고 있다. 그렇다고 누구 탓만 할 수는 없다.

지금 한국 교회는 복음의 피와 땀과 눈물을 잃어버렸다. 한국 교회가 보다 적극적인 대안을 가지고 나설 때이다. 무릎을 꿇지 않으면 하늘의 소리가 안 들린다. ‘크라이 위드 어스’(Cry with us)와 ‘세이브 마이 프렌드’(Save My Friend)의 메아리는 분명 한국 교회를 향한 사순절의 숨비소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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