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 없는 자만 돌로 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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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 없는 자만 돌로 쳐라”
  • 이현주 기자
  • 승인 2011.03.22 18: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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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음한 여인이 있었다. 바리새인들은 그 여인을 예수님 앞으로 끌고 왔다. 그들은 말했다.

“이 여인은 간음을 하다가 현장에서 잡혀왔습니다. 모세는 율법에 이러한 여자를 돌로 치라고 했습니다. 당신은 어찌하겠습니까? 돌로 칠까요?”

요한복음 8장에 나오는 내용이다. 성경을 읽다보면 마치 지금 우리의 모습을 연상시키는 구절들이 많이 나온다. 지금 한국 교회의 모습이 꼭 간음한 여인에게 벌을 구하는 바리새인과 흡사하다. 한기총을 둘러싼 폭로전과 비방, 그리고 회개의 목소리들은 돌을 움켜쥔 바리새인을 연상케 한다. 아니 어쩌면 우리는 지금 예수님의 뜻을 구하지도 않고 돌을 던져버렸는지도 모른다.

한기총의 내부 구조적인 모순과 갈등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금권선거에 대한 지적도 오랜 일이다. 개혁이 필요하다거나 차라리 없어지는 것이 낫다는 말들도 있었다. 하지만 지금처럼 노골적이고 구체적으로 목소리를 높인 적은 없었다.

문제가 있다는 것을 공감함에도 불구하고 한기총 개혁운동은 그다지 힘을 받지 못하고 있다. 개혁을 요구하는 주체에 대해서도 의혹이 가해지기 때문이다. 과연 개혁을 요구할 자격이 있는 것인지, 그들이 주도하는 개혁 후에는 금권선거나 각종 비리들이 종식될 수 있을 지 미덥지 못한 것이다. 잘못은 있는데 먼저 시인하는 사람은 없다. 물론 한기총의 경우 양심선언을 통해 자신들의 죄를 시인했지만 그것이 회개와 자숙으로 이어졌는지는 의문이다. “네가 지난 여름에 한 일을 내가 알고 있다”는 식의 폭로만 가득할 뿐이다.

바리새인들이 돌을 들고 여인을 끌고 왔을 때, 예수님은 땅에 웅크리고 앉아 글씨를 쓰셨다. 땅에 글씨를 쓰신 잠깐의 시간은 많은 변화를 가능케 했다. 잔뜩 부풀었던 화가 가라앉았고 예수님의 답을 구하는 기다림도 있었다. 일어서신 예수님은 말씀하셨다. “누구든 죄 없는 자가 돌로 쳐라.” 결국 여인에게 돌을 던진 사람은 없었다.

지금 한국 교회 안에 마치 바리새인처럼 돌을 던지는 사람들이 있다면 돌팔매를 잠시 멈추는 것이 어떨까. 더 이상 부끄럽게 소란을 떨 것이 아니라 잠시 땅에 쭈그리고 앉아 손으로 글씨를 쓰며 침묵할 때가 아닐까. ‘예수님이라면 어떻게 하셨을까’ 라는 답을 먼저 구하는 ‘침묵’의 시간이 한국 교회에 필요하다는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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