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은사 땅밟기 기도’ 두 가지 프레임에 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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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은사 땅밟기 기도’ 두 가지 프레임에 걸렸다
  • 최창민 기자
  • 승인 2010.10.29 16: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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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복주의 선교관 신학과 현장의 괴리, 타종교와 공존의 문제

‘봉은사 땅밟기 기도’ 논란이 한국 사회와 기독교를 들쑤시고 있다. 지난 26일 각종 인터넷 포털 사이트를 통해 급속도로 확산된 이 동영상은 기독교-불교간 갈등의 불쏘시개가 됐다. 또 기독교 내부에서는 지속적으로 제기됐던 독선적인 태도의 선교에 대한 비판이 여전히 해결되지 않았다는 것을 분명하게 보여줬다.

이번 논란은 크게 두 가지 프레임을 가지고 확산되고 있다. 하나는 한국 교회 내부에서 정리되지 않은 정복주의 선교관에 대한 신학과 현장의 괴리 문제다. 또 다른 하나는 사회에 속한 교회가 안고 있는 공존의 문제다.

■ 일부 열성적인 청년들의 잘못인가

서울 강남의 유명 사찰인 봉은사 대웅전에서 무릎 꿇고 ‘무너져라’ 기도하고, 기독교식 예배를 올리는 모습은 타종교인이나 종교가 없는 사람들에게는 충격적일 수밖에 없다.

처음 이 동영상이 확산되고 기독교가 물매를 맡자 한국교회언론회는 다음날(27일) 논평을 통해 “일부 종교인들의 소영웅주의적 행동은 매우 적절치 않다”고 강하게 비판하고, “동영상 문제가 기독교 전체의 주장이나 행동으로 몰고 가는 것은 옳지 않다”고 선을 그었다.

그러나 이번 사건을 보는 기독교인들의 시선은 둘로 나뉜다. ‘어떻게 저럴 수 있느냐’는 시각과 ‘무엇이 문제냐’는 시각이 그것이다. ‘땅밟기 기도’는 한국 교회 선교 현장에서 엄존하는 현실.

이번 동영상과 함께 논란이 된 ‘미얀마 땅밟기’ 동영상은 한국 교회 해외선교의 현장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 영상에 등장하는 기독교인들은 미얀마 사원에 들어가 둘러앉아 기타를 치며 찬양하고 있다. 주위에는 사원 신도들로 보이는 현지인들이 둘러서서 구경하고 있고, 스님도 함께 앉아 표정없이 바라보고 있다.

봉은사 동영상이 몰래 사찰에 들어가 기도하고 온 것이라면, 미얀마 동영상은 타종교 시설에서 드러내놓고 찬양하고 통성으로 기도한다. 종교간 갈등이 심한 현지에서 사역하는 선교사들이 자제를 요청하고 있지만, 해외 단기선교를 경험해본 기독교인들은 한번쯤 듣거나 경험해봤을 정도로 흔하다.

땅밟기 기도와 유사한 사례는 곳곳에 있다. 한나라당 모 초선의원과 보좌진들은 국회에 입성한 후 국회의사당 후문에 자리한 ‘남근석’을 뽑기 위해 매일 아침 그곳을 돌며 기도했다. 결국 남근석은 지난해 5월 자리를 옮겼다.

새성전 건축을 앞둔 전북의 모 교회는 최근 건축 허가를 받은 후 매일 아침 예배당 터를 돌며 기도하고 있다. 이곳에 지어질 교회와 성도들을 위해 기도하는 것이다.

충남의 모 대학 선교단체는 올해 초 신학기 사역을 앞두고 회원들과 함께 학교 구석구석을 돌며 기도했다. 해마다 연초가 되면 각 단대마다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나고 복음이 전해지게 해달라고 기도하는 것이다.

이번 사건을 접한 후 많은 기독교인들은 단순히 ‘치기어린 청년들의 잘못’으로 치부해버리기에는 뭔가 부족하다고 느낀다. 왜냐하면 한국 교회가 그렇게 가르쳤고, 그렇게 하고 있기 때문이다.

■ 땅밟기 기도, 현장과 신학 논의 엇갈려

사건이 커지자 동영상 관련 단체와 당사자들은 지난 28일 새벽 봉은사 주지 명진 스님을 직접 찾아 사과했다. 그러나 이를 보도로 접한 일부 현장 목회자들은 ‘무슨 그렇게 큰 잘못을 했다고 사과를 하느냐’며 불편한 감정을 숨기지 않는다.

공개적으로 불만을 제기하는 기독교인도 있다. 인터콥 최바울 선교사는 “땅을 밟고 기도를 하든, 물구나무를 서서 기도를 하든 기도 자체가 중요하다”며 “불자들의 종교 행위를 방해하거나 소란을 피운 것이 아니라면 사과할 필요가 없다”고 주장했다.

최 선교사는 “기도에 강조점을 두지 않고 그 형식에 시비를 거는 것은 오류”라며 “불교 신자들 입장에서는 기분이 나쁠 수는 있겠지만, 불자들도 얼마든지 교회에 와서 기도하거나 예배에 참석하고 갈 수 있는 것 아니냐”고 반문했다.

그러나 신학자들은 땅밟기 기도를 정복주의적 신앙, 미신적 행위라며 강하게 비판한다. 김세윤 박사(전 풀러신학교 신약학)는 지난 25일 한 강좌에서 “한국 교회가 거룩한 전쟁을 한답시고 땅 밟기 기도를 한다고 난리인데, 땅 밟기 기도는 성경에 없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 같은 행위는 미신적"이라며 땅밟기 기도가 비성경적이라고 강조했다.

땅밟기 기도가 혼합주의 행태라는 비판도 있다. 장훈태 교수(백석대학교 선교학)는 “다종교 국가에서 정복주의적, 승리주의적 발상은 기독교 선교에 오히려 장애가 된다. 이런 행태는 한국 교회의 큰 장애물”이라고 말했다. 그는 “한국 교회에서 행해지는 땅밟기 기도는 민속신앙인 지신밟기를 수용한 혼합주의”라고 지적하고 “창조론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해 지엽적인 문제로 나타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처럼 신학자들의 땅밟기 기도에 대한 신학적 문제제기는 예전부터 있었지만, 일선 목회자들과 소통은 거의 이뤄지지 않았다. 다종교 사회에서 독선적인 선교관에 대한 반성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으면서 현장 사역자들의 혼란은 가중되고 있다.

■ 기독교-불교 지도자 대화 나서야

두 번째 프레임은 타종교와 공존의 문제다. 이번에 논란이 된 사찰 땅밟기 기도는 신학적 논쟁과는 별도로 다종교 사회에서 갖춰야할 종교간 공존과 예의의 문제라는 지적이 있다.

선교사 출신인 한국세계선교협의회(이하 KWMA) 한정국 사무총장은 “선교사들도 선교지에서 호전적인 타종교인들에 의해 생명의 위협을 느끼기도 한다”며 “기독교의 구원과 진리에 대한 믿음이 확실하더라도 다른 종교를 믿는 사람들을 인격적으로 대할 필요가 있다. 타종교의 영역에 대해서는 조심스럽게 예의를 지켜야 한다”고 말했다.

이와 함께 이번 동영상 논란을 통해 현 정부가 들어선 이후 심화돼온 기독교-불교간 갈등이 확산되는 분위기다.

실제로 한국 교회 지도자들 사이에서는 친정부적인 발언이 여과 없이 등장한다. ‘정부는 우리편’이라는 인식이 크다는 것이다. 최근 개최된 한국기독교총연합회 임원회의에서 한 임원은 재개발교회 문제와 관련해 “이명박 대통령과 직접면담을 통해 해결하자”고 말했다. 모 명예회장은 “우리가 세운 정부인데 못 만날 이유가 없다”고 거들었다.

불교계는 최근 팔공산역사문화공원 조성사업 백지화, KTX 울산역(통도사역) 명칭 병기 변경, 템플스테이 예산 감축 등의 조치가 종교편향 정책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기독교계 입장에서는 이 같은 문제들이 오히려 종교 역편향이라고 주장할 소지도 있다. 그러나 대화를 통한 해결보다는 서명운동, 시위, 정부와 접촉 등을 통해 해결하려는 시도는 종교간 불화를 야기할 수 있다.

이 같이 문제가 직접면담을 통해 해결됐는지에 대해서는 확인되지 않았지만, 불교계로부터 정부의 종교편향에 대한 의심을 사기에 충분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봉은사 주지 명진 스님은 동영상 제작 당사자들의 면담과 사과를 받은 후 기독교와 불교의 종교간 대화를 제안했다. 이에 대해 박종화 목사(경동교회)는 “종교인들이 만나 허심탄회하게 대화하면 평화적 공존과 사회 공동체 일원으로 평화를 만드는데 함께 지혜를 모을 수 있을 것”이라며 찬성의 뜻을 밝혔다.

이번 논란을 계기로 기독교와 불교 지도자들이 한국 사회의 평화로운 공존을 위해 대화에 나서야 한다는 여론이 확산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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