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코필드 선교사 추모 40주년 재평가 활발
상태바
스코필드 선교사 추모 40주년 재평가 활발
  • 최창민 기자
  • 승인 2010.04.13 10:3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3.1운동, 제암리 교회방화 세계에 알려...제자는 총리 돼

푸른 눈을 가진 그가 없었다면 한국의 3.1운동, 제암리 교회방화 학살사건은 그 기록이 남아있지 않거나 잊혀졌을지도 모른다. 국립현충원 애국지사묘역에 안장된 유일한 외국인 스코필드 박사(한국명 석호필) 추모 40주년를 맞아 그의 활동과 철학에 대한 재평가 움직임이 활발해지고 있다.

▲ 스코필드 선교사 추모 40주년 기념행사.
한국기독교총연합회와 캐나다스코필드박사추모재단은 12일 저녁 서울대학교 호암교수회관에서 ‘스코필드 박사 추모 40주년 기념행사’를 열고 그의 뜻을 기리는 사업에 한국 교회와 사회의 참여를 호소했다.

이날 드려진 예배에서 설교를 맡은 김삼환 목사(명성교회)는 “스코필드 박사가 제암리 사건 당시 자전거를 타고 몰래 들어가서 사진을 찍어 전 세계에 일본의 만행을 알렸다”고 소개하고 “그가 낯선 땅 한국에서 복음을 전하고 학교를 세우고 병원을 세우며 제자들을 양성한 덕분에 오늘날 한국이 있다”고 말했다.

김 목사는 이어 “1884년부터 1945년까지 1529명의 선교사가 한국에서 사역을 했다. 그 후에도 3천명이 다녀갔다”며 “선교사들이 이 땅에 민주주의와 복음을 전해준 것에 감사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날 행사에는 스코필드 박사에게 영어, 의술 등을 배우며 도움을 받았던 제자들이 자리를 함께 했다. 서울사이버대학교 전 총장 김수지 박사는 50년 전 그와 함께 했던 추억을 더듬었다. 김 박사는 “1960년 3월부터 10개월간 스코필드 박사에게 영어 성경공부를 배웠다”며 “그는 굉장히 엄격하셨다. 수업에 1분이라도 늦으면 ‘일본에 다시 나라를 빼앗기지 않으려면 정신을 똑바로 차려야 한다’며 호되게 질책하시며 정직과 신뢰를 강조하셨다”고 말했다.

그는 또 “비슷비슷한 여학생들의 이름도 다 외우시고, 가정사를 묻고 형편이 어려운 학생들의 학비도 손수 챙겨주셨다”며 “나도 1학년 2학기 때 도움을 받아 학비를 내고 간호학 공부를 계속할 수 있었다”고 소개했다.

이날 행사를 준비한 김만홍 목사(캐나다스코필드박사추모재단 부이사장)는 “신앙 정신으로 독립운동에 참여했고, 제자들을 교육하고 아이들을 보살피며 박애정신을 실천하신 스코필드 박사에 대해 한국 교회는 잘 알지 못하고 있다”며 “추모 40주년을 맞아 그의 신앙과 숭고한 뜻을 후손들에게 깨우쳐야 할 사명이 우리에게 있다”고 말했다.

스코필드 기념재단은 지난 2007년부터 한국 정부와 캐나다 정부 등의 도움을 받아 토론토 동물원에 스코필드 기념관과 동상, 한국정원 건립을 추진하고 있다. 김만홍 목사는 “한국 교회와 정부가 이 사업에 관심을 갖고 참여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스코필드 박사는 외국인 신분을 내세워 3.1운동 준비를 돕고 만세운동 당시의 상황을 외부에 알려 ‘34번째 민족대표’라고 불린다. 특히 3.1운동 직후 4월에 발생한 제암리 교회 방화사건 당시 현장을 찾아 사진을 촬영해 전 세계에 알렸다. 또 당시 서대문 형무소에 갖혀 있던 유관순, 노순경, 어윤희, 엄영해 등을 직접 찾아 외부에 소식을 전하기도 했다.

그는 결국 1920년 캐나다로 추방되었다가 해방 후 1958년 한국으로 돌아와 서울대, 연세대 등에서 강의하며 제자들을 키우고, 고아원을 운영하며 50여명의 학생의 학업을 도왔다. 그는 한국 정부로부터 공로를 인정받아 1960년 문화훈장을 받았고, 1970년 4월 16일 소천했다.

■ 미니인터뷰 정운찬 국무총리 “석호필 선생님 때문에 난생 처음 꿈을 가져”

스코필드 박사가 학업을 도왔던 한 청년이 그 나라의 총리가 됐다. 스코필드 박사의 도움을 받아 학업을 시작해 경제학 분야 전문가가 돼서 국무총리에 오른 정운찬 국무총리가 12일 추모 40주년 기념행사에 참석해 스승과의 추억을 나눴다.

▲ 정운찬 국무총리
정 총리는 “스코필드 박사님은 80 평생을 한국 사랑에 바치며 고아들과 어려운 학생을 돕는 데 온 힘을 다하신 영원한 한국인”이라고 소개했다.

이어 “나도 박사님의 분에 넘치는 은총을 받았던 수혜학생의 한 명”이라며 “중학교에도 진학할 형편이 못됐던 저는 입학금을 마련해 주시겠다는 박사님을 만나 학업에 뜻을 둘 수 있었다”고 스코필드 박사와의 인연을 소개했다.

그는 또 “오랜 세월이 흐른 지금도 그 순간을 잊을 수 없다. 그때가 바로 내가 난생 처음으로 꿈과 희망을 가질 수 있었던 계기였기 때문”이라며 “내가 스코필드 박사에게 받은 것은 금전적 지원만이 아니었다. 정직과 성실, 정의를 늘 강조하시며 바르게 이끌어주신 분”이라고 추억했다.

이어 석호필(石虎弼)이라는 한국식 이름을 소개하고 “박사님은 약자에게는 비둘기처럼 부드럽지만 강자에게는 범처럼 강인한 분이셨다”며 “우리 민족의 자유와 권리를 신장하고 온몸으로 정의를 실천하신 박애정신의 표상이자, 우리나라의 대표적 은인”이라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정 총리는 “정직과 성실, 정의와 평화를 위해 몸 바치신 박사님의 가르침을 선진 인류국가 건설의 값진 토대로 삼아야 한다”고 말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