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사 속 인물 :디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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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사 속 인물 :디도
  • 승인 2005.02.15 1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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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 기독교의 지도자로서 종종 목회자의 모델로 제시되고 있는 디도는, 회심한 이방인을 통해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구원반경이 얼마나 넓은지 보여준다.


디도는 고린도교회 사역을 맡았다. 애초 안디옥교회의 대표로서 이름이 올랐지만, 사이비 지도자와 성적인 혼란 등으로 위협받은 고린도교회를 다시 일으키고자 고린도교회 책임자로 파송 받았다. 얼마나 열심히 사역했던지 그를 개종시킨 사도 바울은 고린도후서 7장13절-15절까지 기록을 통해 고린도교회의 도전적 모델로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디도서 1장5절에는 그가 그레데 섬에서 사역했다고 기록했고, 디모데후서 4장10절에는 달마디아에서 전도했다는 기록이다. 달마디아는 지금의 유고슬라비아 지역이다.



우리는 디도가 헌신사역 하던 시대가 평온한 시절이 아님을 기억해야 한다. 디도가 회심한 때는 사도 바울의 1차 전도여행 시기(딛1:4)로, 그의 사역기간은 사도 바울이 죽은 후 로마황제 도미티아누스시대(주후 47-90년)까지로 알려져 있다.



도미티아누스 황제는 역사가로부터 서슬 퍼런 기독교 박해의 악명 높은 이름으로 기록될 만큼 잔인한 지도자였다. 이 시기에 복음을 전할 뿐만 아니라 교회지도자로 사역한다는 것은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었다.



로마의 정책적인 압박을 피하며 진행된 디도의 복음사역은, 사실 회심초기 안디옥교회 지도자로 부상할 때 겪은 ‘교회내부의 도전’을 극복하는 가운데 더욱 왕성해질 수 있었다. 헬라인이었던 디도는 유대주의자로부터 자신 스스로를 지켜야 했다. “할례를 받지 않은 이방 헬라인인 디도가 지도자로서 자격을 갖추었나?”라는 공격이 그것이었다.



‘매우 성경적인 공격’을 어떻게 이겨나갈 것인가가 관건이었다. 디도는 바울과 바나바가 참석한 제1차 예루살렘회의에 참석, 할례가 하나님의 구원과는 하등 상관이 없다는 사실을 규명했다. 이후 그는 할례를 강요받지 않은 채 사역을 추진할 수 있었다. 복음사역을 함께 진행할 수 없다는 디도 주변의 비판은 사랑보다는 외식에 가까운 형식논리의 결과였다. 사랑없는 사역의 결과는 늘 분열과 갈등 그리고 상처로 나타나기 일쑤다.



우리는 성경을 갖고 누굴 비난하고 있는가. 스스로 의로움을 드러내기 위한 수단으로 성경이 활용된다면 얼마나 두려운 일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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