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적전쟁 대비, 말씀 위에 확고히 서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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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적전쟁 대비, 말씀 위에 확고히 서야 할 때다”
  • 승인 2001.11.1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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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단에서 선포되는 메시지들이 때로는 성경말씀과 동떨어진 내용으로 선포되는 경우가 많다. 또 교회 밖에서 일어나는 사건이나 현상들에 대해서 ‘비성경적’으로 대응하는 신학자나 목회자들이 있는 경우도 적지 않다.”

이런 반성의 소리가 들려오는 가운데 얼 데이비스박사(Eryl Davies, 영국 웨일즈복음주의 신학대학 학장)가 최근 내한, 강단에서 선포되는 메시지가 성경에 근거한 내용인가 점검되어야 하며, 밖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대해서도 비성경적인 대응방식은 자제돼야 한다고 강조, 한국교회를 돌아볼 수 있는 논제를 던져주었다.

세계복음주의신학회 초청, 영국대표로 내한 ‘21세기에 있어서 복음주의신학의 역동성’에 대해 강연한 데이비스박사는 본지와의 특별대담을 통해 한국교회가 외형적 규모보다는 무형의 인재양성을, 그리고 성경적 삶으로 혼란한 시대를 극복해야 한다고 말했다.

-21세기에 있어서 복음주의 신학의 역동성에 대해 강연하셨고, 또 이같은 주제에 대해 항상 역설하고 계신 것으로 압니다. 그 핵심내용은 무엇인지요.

한마디로 성경의 ‘영감성’과 ‘권위’에 대한 내용입니다. 성경적 영감성과 권위를 믿고 그 말대로 행하는 교회는 어떤 시대 어떤 상황을 맞는다해도 부흥하게 된다는 내용이지요. 한국교회 역시 바로 이러한 성경의 토대위에서 자라왔기에 부흥의 축복을 받고 있는 것이라 믿습니다.

구체적으로 말씀드린다면, 신앙인들의 일상적인 생활도 성경적인 삶을 살 때 비로소 진정한 크리스천이라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성경적 삶이란 무척 어려운 ‘의무’를 부과하고 있어 이를 지키기위해서는 희생적 노력이 있어야 합니다. 한가지 예를 들어볼까요? 하나님나라에 들어가려면 하나님 나라 삶의 그림자가 신앙인들의 삶에 있어야 합니다.

그것은 곧 내가 가진 것을 가난한 자와 나누는 삶을 의미합니다. 나눠주는 마음은 탐욕은 제거할 수 있는 유일한 힘이 되기도 하지요. 그런데 세상에는 남의 것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되돌려 주기조차 싫어하는 사람이 많지 않습니까? 경쟁사회에서 나타나는 부익부 빈익빈현상도 나눠줄줄 모르고 되돌려 줄 마음이 없는 탐욕에서 나타나는 결과입니다.

지금 이 세상은 자본주의나 사회주의나 모두 실패하지 않았습니까? 그렇다면 인간을 복되게 하는 제3의 방안은 무엇이겠습니까. 아시다시피 성경은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경건한 신앙생활과 남을 용서하고 가진 것을 서로 나누며 탐욕을 없애는 삶이 복된 삶이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성경을 믿는다는 것은 곧 성경의 영감성과 권위를 믿는 것이고, 그 말씀의 내용은 경건과 나눠주는 삶, 그리고 이웃에 대한 사랑과 배려이지요.

이러한 삶을 살고있는지 교회나 크리스천들은 항상 세가지 면에서 점검해 나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우선 신자 개개인이 하나님 말씀대로 살아가고 있는지, 교회강단에서 선포되는 메시지가 성경말씀대로 바르게 설교되어지고 있는지를 점검해 보아야 합니다.

또 한가지는 사회에서 일어나는 사건이나 현상에 대해 성경적인 방법으로 대응하고 있는지 점검해야 할 것입니다. 유감스럽게도 적지않은 신학자나 목회자 등 교회 지도층들이 교회안팎의 일에 대해 비성경적인 방법으로 대응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우리주변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 그리고 개개인에게 일어나는 일들을 성경적인 관점에서 조명하고 대응하는 일이야말로 교회나 신자 개인에게 주어진 과제임이 틀림없습니다.

여기에 한가지 덧붙여 생각할게 있어요. 신앙인들 중에는 성경과 성령의 관계를 분리해서 생각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는 것입니다. 성경말씀과 성령의 관계를 극단적으로 치우쳐 생각하는 현상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극단적 성령은사 주의자들은 ‘말씀’에 우선 순위를 두기보다는 성령께서 직접 말씀하신다는데 치중합니다.

또 말씀만을 강조하는 사람들은 성령의 보편성과 강력하심을 약화시키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런 경우에는 설교가 맥을 잃게되기 마련이지요. 그러니까 성령은 항상 말씀을 통해 역사하신다는 맏음위에서 성경과 성령의 관계를 분리하지 말고 조화시켜나가는 믿음이 필요합니다.

제가 연구한바로는 한국교회의 초기 대부흥운동은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않았기때문에 이상적인 부흥운동이 될 수 있었다고 봅니다. 초기 목사나 선교사들은 모두 ‘절대적인’하나님 말씀에 의존하고 성령의 ‘역동성’을 강조했던 것이지요. 말씀과 성령의 조화를 통해 부흥의 큰 역사가 일어난 것 아닙니까?성경을 ‘기체’에 비유한다면 이것을 움직이는 ‘화력’은 성령이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기체와 화력은 상호 불가분리의 관계이니까요.

-요즘 타종교문제가 또 다시 중요한 화제거리로 떠오르고 있습니다. 뉴욕테러 대참사 이후 이슬람에 대한 문제가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있는데요. 어떤 이들은 기독교와 이슬람의 ‘문명충돌’이 야기되지 않을까 우려하기도 합니다만, 박사님께서는 이 문제를 어떻게 보십니까.

언급하신 것처럼 이슬람은 서구에서 두번째 큰 종교로 증가하고 있습니다. 지금 영국에만 해도 1백50만 여명의 모슬렘이 있어 영국 내에서 영향력 있는 집단으로 등장했습니다. 영국의 어느 지역에는 모슬렘이 점령하고 있어 전도하기가 매우 어렵습니다. 이와같이 종교다원주의가 서구에서는 대중화되고 있기 때문에 기독교에게는 큰 도전이요 시험이 되고 있습니다. 지금은 영적 전쟁에 대비, 말씀에 굳게 서야할 때입니다.

저는 앞으로 이런 현상들로 인해 서구의 기독교가 어떤 방향으로 가게될 지, 또는 종교다원주의 추세가 어떤 양상으로 기독교에 침투해 들어올런지 우려하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을 막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먼저 기도해야 합니다. 기도만이 이러한 다원·혼합주의의 기독교 침투를 막을 수 있습니다.

다음으로 중요한 것은 전도에 박차를 가하는 일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어려운 일이 있을 때마다 교회의 부흥을 통해 사회를 변화시키셨음을 경험을 통해 잘 알 수 있습니다. 좀 더 적극적인 의미에서 크리스천들이 변하고 모든 교회들이 변한다면 교회와 크리스천들의 전도역량에 힘입어 모슬렘도 개종시키는 변화의 역사가 일어나리라 확신합니다. 모슬렘들이 변하면 그들이 자기나라에 돌아가 복음을 전할 수 있는 불씨가 될 수 있겠지요.

영국에는 이슬람교나 힌두, 불교를 대상으로 선교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물론 타종교의 벽을 뚫는 일이란 매우 어렵고 속도도 느리겠지요. 그러나 인내심을 가지고 기도하며 전도에 힘쓴다면 분명히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날 것입니다. 또한 전도에는 사랑의 마음이 동반돼야 한다는 사실도 잊어서는 안됩니다. 그런 의미에서 한국교회가 서구교회와 특히 영국교회를 위해 기도해 주셨으면 합니다.

-복음주의와 자유주의 신학이 다른 점은 무엇인가요.

요즘은 어디에 근거를 두고 복음주의자냐 아니냐 선을 긋기가 매우 혼란스럽습니다. 복음주의자들조차 때로는 그들이 진정 복음주의자인가 의심이 들 때도 있거든요. 저는 진정한 복음주의란 사람들이 만들어 놓은 어떤 ‘노선’보다는 성경을 믿고 따르는 것이 바로 복음주의라고 말합니다.

그러니까 아무리 유명한 신학자들이라 하더라도 그들을 ‘말씀’에 비추어 복음주의자인지 아닌지를 점검해 보아야 하겠지요. 사람중심이 아니라 하나님중심인 사람이 복음주의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 이 시대는 사람들이 듣기 좋은 이야기로 귀만 즐겁게 하는 설교자들이 있습니다. 또, 이를 좋은 설교라고 추켜세우는 추종자들도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복음주의자라고 할 수 없습니다.

오늘날 교회가 권위를 잃고 혼돈에 빠지는 것은 성경의 뜻을 바르게 풀어서 메시지를 전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만큼 성경은 교회의 생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성경과 동떨어진 메시지나 신학교육은 모두 경계의 대상입니다.

-한국교회에 하시고 싶으신 말씀이 있다면 무엇인지요.

외형적 규모보다는 무형의 인재양성에 힘을 쏟고 말씀 연구에 우선순위를 두었으면 합니다. 그리고 미국이나 서구교회의 모델보다는 한국적인 아름다운 예배전통을 지켜나갔으면 합니다. 인터넷, 사이버 시대라 해도 인격과 인격의 만남은 교회에서 이뤄질 수 있으므로 ‘교회에서의 예배’를 강조했으면 합니다.

▶대담자 - 최명국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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