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의 정치’로서의 묘지 헌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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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의 정치’로서의 묘지 헌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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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7.02.21 1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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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수일<교수, 한신대학교 선교신학과>


한기총 신임 회장 이용규 목사가 양화진에 있는 서울 외국인 선교사 묘지공원에 헌화함으로써 취임 후 공식적인 업무를 시작했다.


이번 외국인 선교사 묘지공원 헌화는 한기총의 직전 회장인 박종순 목사가 처음 물꼬를 튼 것이 계기가 된 두 번째 행사인 셈이다.


한기총 측은 양화진에 한국 최초의 미국 선교사인 언더우드와 아펜젤러를 비롯한 선교사들의 묘지가 있고, 이들의 순교정신을 계승한다는 의미에서 헌화한 것이라고 밝혔다.


한기총 직전 회장인 박종순 목사는 ‘순교로 한국교회에 믿음의 씨앗을 뿌렸던 선교사들의 정신을 받들어 교회의 선교사명 실천을 다짐하기 위한 것’이라고 헌화의 의미를 설명했다.


박종순 전 회장은 첫 번째로 양화진 외국인 선교사 묘지공원에, 그 다음에는 국립묘지와 부산에 있는 한국전쟁 참전국 전몰 용사들이 묻힌 UN 묘지에도 헌화했다고 한다. 광주 망월동에 있는 민주화운동 희생자들에게도 헌화하려고 했으나 여건이 마련되지 않아 못했다고 한다.


한기총 신임 회장도 외국인 선교사 묘지공원에 헌화하면서 업무를 시작했으나, 이것이 한기총의 공식적인 결의는 아니라는 것이다. 지난 해 박종순 목사의 헌화도 한기총 임원회의 논의 없이 개인적으로 결정한 것이고, 만일 다음 회장이 개인적으로 반대하면 안할 수도 있다는 설명이다.


나는 한기총의 회장과 임원들이 취임행사로 양화진 외국인 선교사 묘지공원에 헌화한 것을 깎아내리거나 비난할 생각이 전혀 없고, 또 그럴만한 위치에 있지도 않다. 더욱이 복음화와 봉사를 위하여 내한한 외국인 선교사들의 열정과 헌신, 순교는 감사와 다짐으로 계승되어야한다는 것도 의심하지 않는다.


다만 곤혹스런 것은 선교사명의 실천을 다짐하고 순교정신을 계승하기위한 목적이라면, 더욱이 한국교회 선교의 역사를 주체적인 시각에서 이해한다면, 당연히 먼저 제암리 교회나, 안중근 열사, 류관순 열사, 주기철 목사, 손양원 목사 같은 분들의 묘지에 헌화했어야 하는 것이 아닐까하는 생각 때문이다.


순교자들의 묘지에 헌화하는 전통은 그리스도교 안에서도 오래되었고, 아름다운 일이기도 하다. 그러나 헌화대상의 선택은 헌화하는 개인이나 단체의 정체성을 드러낸다.


국가원수들이 다른 나라를 방문하면 무명용사들의 묘에 헌화하고, 정치인들이 국가기념일이나 선거철이 되면 국립묘지에 헌화하는 것과는 다르다.


묘지헌화는 ‘기억의 정치’라는 매우 상징적인 행위이다. 역사를 결코 잊지 않으려는 의지와 우리가 어떤 미래를 위하여 자신을 희생하려고 하는지를 다짐하는 ‘무서운 기억의 정치’인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한기총 임원들의 양화진 외국인 선교사 묘지공원 헌화는 절반의 ‘기억의 정치’라고 말하고 싶다. 더욱이 회장 개인의 생각에 따라 할 수도 있고 안할 수도 있다는 것은 공적 기관으로서의 한기총이 선택할 수 있는 책임적인 입장이 아닌 것 같다.


‘기억의 정치’로서의 묘지헌화를 새로운 전통으로 만드는 것은 뜻 깊고 중요한 일이기 때문이다. 차제에 묘지헌화의 의미를 신학적으로 정리하고, 도대체 어느 묘지에 헌화하는 것이 지금 한국교회가 해야 할 일인지, 그리고 왜 이런 일을 해야 하는지를 논의하는 계기를 만들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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