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화도 창조의 영역? … ‘유신진화론’ 복음주의 얼개 흔들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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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화도 창조의 영역? … ‘유신진화론’ 복음주의 얼개 흔들어
  • 박찬호 교수(백석대 조직신학)
  • 승인 2024.05.08 2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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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찬호 교수의 목회현장에 꼭 필요한 조직신학_ 56) 유신진화론 유감
박찬호 목사
박찬호 목사

학교의 재정이 어려워 창조과학회 인사를 신학교 강단에 세우는 것으로 촉발된 모 신학대학에서의 유신진화론을 둘러싼 일련의 사태를 보며 다소 양비론 같은 입장을 밝힐 필요가 있어 보인다. 창조과학은 조어 자체가 잘못된 것이다. 하나님의 창조를 과학으로 증명할 수 있다는 무모함이 이름 자체에 들어가 있다.

창조신학이나 창조신앙이 바른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창조과학회는 미국에서 태동하였고 비교적 최근인 1970년대에 시작된 운동이라고 할 수 있다. 신학적으로는 젊은 지구론을 이들은 지지할 뿐 아니라 강하게 주장하면서 자신들과 다른 입장의 사람들을 모두 진화론과 타협한 사람들이라고 매도한다. 우리나라에서의 사정도 비슷한 것 같다. 창조과학은 창 1장의 ‘날’을 문자적인 24시간의 날이라고 주장한다. 그리고 지구의 역사는 6천에서 만 년을 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성경의 창조를 진지하게 받아들이는 그리스도인들 중에 창조과학회와는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많이 있다.

일반적으로 과학에서 말하는 우주의 역사는 128억 년이고 지구의 역사는 40억 년이다. 조그마한 차이가 아니라 백 만 배에 해당하는 이 심연과도 같은 차이를 어떻게 매워야 할지 난감하기만 하다. 성경의 권위도 진지하게 받아들이고 자연과학의 연구 결과도 존중하려는 사람들 입장에서 취할 수 있는 입장은 과연 무엇일까? 1990년대 초에 미국 버클리 캘리포니아 주립대학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였던 필립 존슨(Philip E. Johnson, 1940~2019)은 『피고석의 다윈』(Darwin on Trial, 1992년)이라는 책을 써서 지적 설계 이론을 주장하였다. 신학자나 철학자가 아닌 법학자에 의해서 촉발된 지적 설계 이론은 이후 윌리암 뎀스키(William Demski, 1960~)나 스티븐 마이어(Stephen C. Meyer, 1958~)와 같은 사람들에 의해 계승되어 대중화되었다.

윌리엄 페일리(William Paley, 1743~1805)가 『자연 신학; 혹은 신의 존재와 속성에 대한 증거들』(Natural Theology; or Evidences of the Existence and Attributes of the Deity, 1802년)이라는 책에서 제안하였던 유명한 ‘시계공’ 비유를 언급하고 싶다. 우리가 산행을 하다가 길가에서 돌멩이를 발견하면 그것은 우연히 거기에 있는 것이다. 하지만 시계와 같은 정교한 구조물을 발견한다면 그것은 누군가가 만든 사람이 있는 것이다. 이렇듯 인간의 눈과 같은 생물 세계에 존재하는 환원 불가능한 복잡성에 근거하여 하나님의 존재를 입증하곤 한다. 그 설계자가 우리가 믿는 하나님이라는 증거는 없다.

지적 설계 이론은 창조과학으로 일면화 되어 있던 창조론에 대한 토론의 지평을 넓혀주었다는 점에서는 그 공헌을 인정할 수 있을 것 같다. 실제로 이 글을 쓰고 있는 나 자신도 두 차례에 걸쳐 지적 설계 이론에 대한 지지를 잠정적이기는 하지만 선언한 바 있다. 물론 이 입장은 얼마든지 바뀔 수 있다고 밝혔던 것처럼 설계 이론의 문제를 발견하고는 설계 이론에 대한 지지를 철회하게 되었고 지금은 밀라드 에릭슨(Millard Erickson, 1932~)의 점진적 창조론을 지지하고 있다. 점진적 창조론은 한 마디로 소진화는 인정하지만 대진화는 부정하는 입장이라고 할 수 있다. 소진화는 종 안에서의 발전이기에 엄밀한 의미에서는 진화론이라고 할 수 없다. 문제가 되고 있는 진화는 대진화인데 종간 진화를 주장하는 입장이라고 할 수 있다. 

진보적인 신학은 일찌감치 유신진화론을 지지하는 입장이었다고 할 수 있다. 요즈음 문제가 되고 있는 유신진화론에 대한 토론은 복음주의권에서도 보수적인 신학자들 가운데 여러 신학자들이 유신진화론을 지지하는 것 때문에 촉발되었다.

대표적으로 보수적인 신학자 가운데 유신진화론을 지지한 사람으로는 구프린스턴 신학자인 벤자민 워필드(Benjamin B. Warfield, 1851~1921)를 들곤 하는데 현대적인 의미의 유신진화론을 지지했는지에 대해서는 논란의 여지가 있다. 『하나님을 아는 지식』으로 잘 알려진 제임스 패커(James I. Packer, 1926~2020) 그리고 최근에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팀 켈러, 제임스 K. A. 스미스, 리처드 마오 등의 이름을 거명할 수 있다. 보수적인 신학 풍토 속에 창조과학이 대중화되어 있는 우리나라에서 유신진화론에 대한 토론은 다소 성급하게 감정적으로 흘러가는 것 같아 우려가 된다.

다만 복음주의적인 입장에서는 유신진화론을 받아들일 경우 기본적인 복음주의 신학의 얼개가 상당부분 무너질 수밖에 없다는 점을 지적하고자 한다. 아담의 역사성이 부정되면 원죄론도 희미해지고 그렇게 될 때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의 복음 자체에도 흠결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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