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갈릴리에서 나를 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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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갈릴리에서 나를 보리라
  • 한현구 기자
  • 승인 2024.04.26 1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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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약 성경에서 상위층 종교 지도자들은 거룩한 옷을 입고 예루살렘에서 행해진 종교 행사에 매몰돼 있을 때, 예수님께서는 가난한 동네 갈릴리에서 어부들과 동고동락하며 삶을 나누셨습니다. 그것처럼 시대의 아픔을 끌어안고 고통에 함께 연대해 주고 기도해 주시는 여러분이 계셔서 저희는 다시 앞으로 나갈 수 있는 힘을 얻었습니다.”

세월호 10주기를 눈앞에 둔 올해 부활절. NCCK는 통한의 상처가 아물지 않은 안산시로 향했다. 주민들의 반대로 추억할 공원의 첫 삽조차 뜨지 못한 4.16 생명안전공원부지에서 고난의 현장 예배를 드렸다. 여전히 가슴이 시린 유가족들의 마음이 바람에 실린 듯, 현장의 날씨는 봄을 맞아 피어오른 꽃봉오리가 무색하게 쌀쌀했다.

예배가 끝나고 마이크를 잡은 유가족의 발언은 심금을 울린다. 정말로 그랬다. 부활하신 예수님은 화려한 궁전에서 존재를 나타내시지 않고 낙심한 제자들이 머물던 갈릴리로 향하셨다. 목숨을 부지하려 발을 내빼고 심지어는 주님을 부인하기까지 한 부끄러움에 주눅 들어 있던 제자들을 위로하셨다.

올해도 어김없이 부활절 연합예배가 열렸다. 화려하고 웅장한 예배당에 7천명이나 되는 성도들이 운집했다. 분명 부활하신 예수님께 모든 스포트라이트가 맞춰져야 하건만 화려한 옷을 입은 이들에게 시선이 분산됐다. 총선을 앞두고 참석한 대통령과 정치인들에게 박수갈채가 쏟아졌다. 예루살렘에서 벌어지는 잔치에 낙심한 갈릴리의 제자들의 허름한 모습은 여간해선 어울리지 않을 것만 같았다.

부활을 기념하겠다고 하는 교회가 정작 부활하신 주님의 시선이 향하신 곳은 놓치고 있는 것이 아닐까. 교회의 영광은 건물의 크기와 화려함에서, 참석자의 지위와 권력에서 드러나지 않는다. 죽음으로 승리하신 복음의 놀라운 비밀은 오히려 비린내 퀴퀴한 어부 제자들의 작업복에, 곪아 문드러진 상처의 진물에, 10년째 마르지 않는 유가족들의 눈물 가운데 빛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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