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인들의 보다 구체적인 삶의방식은 후에 별도로 취급할 계획이지만, 로마사회에 당연시 되던 영아 유기 관행을 따르지 않고, 죄의식 없이 행해지던 낙태를 거부하고, 원수에 대한 보복이나 앙갚음을 생각하지 않고, 폭력을 반대하고 평화를 지향하는 일 등을 의미했다.
셋째는 사랑과 배려였다. 초기 그리스도인들은 사랑 베풂 섬김 배려 등 성경 혹은 산상보훈이 가르치는 삶의 방식을 따랐다. 이런 정신에서 약한 자와 고난당하는 자, 나그네와 여행자들을 맞아들이고 대접했다. 아리스티데스의 변증서에 보면, 동료 그리스도인 중 어느 한 가족이 굶주림에 처하면 그리스도인 공동체는 며칠간 금식을 하면서 가족의 필요를 채워주었다고 한다. 또 죽은 자들을 격식 있게 장례를 치러주었다. 그래서 테르툴리아누스는 “이들은 가난한 자를 먹이며 그들에게 장례를 제공한다”(Apology, 39)고 말했을 것이다.
사랑의 실천은 그리스도인들의 구별된 삶의 구체적인 표현이었다. 180년 ‘페레기너스의 죽음’이란 책을 써서 기독교를 비방했던 루시안(Lucian ofSamosata, c. 120~?)마저도 기독교인들에 대하여 다음과 같은 기록을 남겨주고 있다. “그들 본래의 율법수여자는 그들은 서로 형제들이며, 서로가 서로를 사랑하라고 가르쳤다. 그 형제들에게 도움을 줄 일이 발생하면 그들은 즉각적으로 도움을 베풀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이런 경우에 그들은 형제에 대한 배려를 아까워하지 않았다”라고 했다. 초기 그리스도인들이 가난하고 핍절된 이웃과, 병들고 고통당하는 이들에게 사랑과 자비를 베풀고, 옥에 갇힌 자들을 보살펴 주는 자선행위는 바로 복음에 대한 확신, 구원에 대한 감사의 표현으로 행해진 사랑과 자비의 사역이었다.
초기 기독교 공동체 지도자의 자격 중 하나는 사랑과 배려의 구체적인 적용인 손대접을 잘하는 것이었고(딤전 3:2), 바울과 히브리서 기자는 손대접하기를 힘쓰라고 권면했다(롬12:13, 13:2). 기독교적 사랑과 베풂의 윤리를 특별히 강조한 교부가 요한 크리소스톰(John Chrysostom), 락탄티우스 제롬 같은 이들이었다. 손대접을 의미하는 그리스어 필로세니아(philoxenia)는 사랑 혹은 애정을 의미하는 필레오(phileo)와 나그네를 의미하는 세노스(xenos)의 합성어였다.이렇듯 그리스도인들은 사랑의 시혜자였다. 이런 삶의 방식이 이교도들에게도 감동을 주었던 것이다.
넷째, 이보다 더 중요한 한 가지는기독교가 지닌 영적 능력과 영원한 생명에 대한 가르침이었다. 이것 보다 더 불신자들에게 매력을 준 것은 없었을것이다. 하나님의 역사는 이적과 기사를 동반하였고, 귀신을 쫓아내고 치료하여 주었고, 영적 능력은 자유를 가져다주었다. 말이나 설교나 예배를 통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과 변화된 삶이 사람들을 기독교 신앙으로 인도하는 힘이었다. 북아프리카의 변증가 미니키시우스 펠릭스(MinuciusFelix)의 변증서(Octavius, 31.6~8)는 핵심을 지적하고 있다. “우리는 위대한 것을 설교하는 것이 아니라, 위대한 것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We do not preach great things, but we live them.” 미누키우스 펠릭스는 2세기 로마의 변증가였는데, 대화 형식으로 쓴 변증서 ‘옥타비누스’는 현존하는라틴어로 쓰인 그리스도교 저작 중 제일 오래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영적인 능력과 영원한 생명에 대한 가르침, 그 가르침을 삶을 통해 증거하는 그리스도인들의 삶이 소리 없이 파문을 일으키며 제국의 도시로 전파되었다. 이것이 공개적인 전도, 조직화된 선교운동 없이 기독교가 넓은 지역으로 확산된 중요한 요인이었다. 결국 4세기 로마제국에서 기독교의 승리를가져온 것이다.
백석대 석좌교수·역사신학
이상규 교수의 초기 기독교 산책(37) - 초기 기독교회에서의 예배와 전도 ⑤
저작권자 © 아이굿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