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장복 교수의 설교학교 15]설교의 적용(Application)이란 말씀의 현장화(現場化)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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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장복 교수의 설교학교 15]설교의 적용(Application)이란 말씀의 현장화(現場化)이다
  • 정장복 교수
  • 승인 2016.06.15 17: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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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해를 통해 깨달은 진리, 설교자의 삶에 먼저 적용돼야
▲ 정장복 교수(장신대 명예교수·한일장신대 명예총장)

말씀의 꽃이 피는 곳은 말씀을 듣는 무리들의 삶이 전개되는 현장이다. 설교자가 본문을 앞에 놓고 철저한 주석과 주해를 한 목적은 매우 단순하다. 그것은 회중들이 선포된 말씀을 정확하게 이해하고, 그 진리를 그들의 삶에 실천하여 변화를 일으키는데 있다. 그것을 곧 말씀의 적용 또는 말씀의 현장화라고 한다. 그래서 스펄젼은 “적용이 시작되는 곳에서 설교도 시작된다”는 말을 남기고 있다. 주석과 주해가 아무리 뛰어나게 잘 되었다고 해도 거기서 나오는 메시지가 회중들의 삶과 무관하게 이어진다면, 그것은 단순한 강의나 학문적 접근에 끝나게 된다.

어떤 설교자들은 본문을 읽고 지루한 주석과 주해만을 계속하는 경우가 있다. 때로는 수천 년 전에 있었던 사건들만을 흥미진진하게 설명을 한다. 그러나 막상 기대했던 적용, 곧 오늘의 삶과 연결되어지는 부분은 거의 보이지 아니하는 경우가 많다. 이러한 현상을 가리켜 ‘현장과 무관한 설교’라고 말한다. 그러므로 설교자는 말씀을 해석하고 전해야 할 진리를 찾았을 때, 우선적인 과제는 내가 먹이고 섬기는 회중들의 어느 부분에 이 진리를 적용시킬 것인지를 찾아야 한다. 이 소중한 적용의 단계를 성공적으로 수행할 때 본문의 진리는 결실

을 맺게 된다. 그 만큼 적용이란 매우 민감한 부분이다. 그러므로 설교자가 특별한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다음의 몇 가지 사항은 효과적인 적용을 원하는 설교자들에게 도움을 주리라 본다.

첫째, 적용은 설교자 자신에게 먼저 해야 한다. 주석과 주해를 통하여 깨닫게 된 진리는 설교자에게 먼저 적용되어 승화되는 경험을 요구한다. 설교자가 자신에게 적용할 수 없는 진리를 회중들에게 적용하려는 것은 매우 부적절한 시도이다. 자신 속에서 실현될 수 있는 가능성이 보일 때 회중들의 삶에 적용을 말할 수 있다. 그렇지 않은 경우라면 소리만이 울리는 꽹과리에 불과하다. 예를 들어, 청빈하지 못한 인격체로 알려진 설교자가 회중들에게 청빈의 메시지를 수용하라며 소리치는 것은 아무런 반향을 일으킬 수 없다. 이러한 점에서 “성경은 설교자를 향한 최상의 설교자이다”라는 말을 새롭게 음미해 볼 필요가 있다.

둘째, 특정인을 염두에 두고 적용을 시도하지 말아야 한다. 시대의 흐름은 날이 갈수록 성(聖)과 속(俗)이 혼돈스러워진다. 그동안 우리의 교회는 순종 일변도의 교회였다. 그러나 지적인 수준과 비판의식이 높아지면서 저마다 자기의 목소리를 내는 것을 주저하지 않는다. 환언하면, 오늘의 설교자들은 초기의 교회처럼 강력한 카리스마를 보이며 회중을 이끌고 가는데 한계를 느끼고 지친다. 그럴 때면 자신의 지도력에 맞춰 따라오지 않는 무리들의 인상이 줄곧 떠오르기 마련이다. 그 결과 적용의 대상이 자칫 보편적이 아닌 특수한 인물들이 되기 쉽다. 설교는 어떤 경우도 개인을 대상으로 하여 그 날의 메시지를 적용시킬 수 없다.

셋째, 설교자가 적용에 너무 치우치지 않도록 유의해야 한다. 적용이 설교의 최종적인 목표라고 하더라도 설교자의 기본임무를 벗어나서는 안 된다. 설교자의 기본임무는 말씀을 들려주고, 그 말씀을 풀어 이해를 시키며, 그 말씀을 듣는 이들이 실천하게 하는 것이다. 그런데 많은 설교자들이 삶의 장에 대한 이야기로 설교의 시간을 다 보내는 경우가 적지 않다. 하나님이 하신 말씀이 무엇이며, 그 뜻이 무엇인지를 말하는 시간은 지극히 짧고 요식적이다. 그러면서 대부분의 시간을 적용을 위한 예화나 경험담을 비롯하여 자기지식의 나열과 주장을 펼치는데 소비하고 있다. 지혜 있는 설교자는 설교원고를 점검하면서 그 균형을 유지하는데 깊은 관심과 주의를 기울인다.

넷째, 적용은 설교자의 주장을 관철하는 도구가 아니다. 제7 강의에서 설교의 위기 중에 하나가 오늘의 설교자들이 설교를 ‘목회의 수단’으로 활용하고 있음을 지적한 바 있다. 적용의 과정에서 설교자는 흔히 자신의 감정을 정화시키는 경우가 많다. 감정의 정화, 곧 카타르시스는 마음 속에 억압된 감정의 응어리를 언어나 행동을 통하여 외부에 표출함으로써 정신의 안정을 찾는 것을 말한다. 만에 하나 설교자가 적용을 정화의 방편으로 오용하면, 그의 설교사역에 적신호가 켜지게 된다. 그 이유는 이 과정에서 불필요한 언어를 비롯한 각종 실수가 상식과 교양의 범위를 벗어나 노출되기 때문이다. 거기에 더하여 하나님이 보이지 않고

오직 설교자만 보인다. 뿐만 아니라 설교자가 설교를 통하여 자신의 불편한 감정의 응어리를 뿜어내는데 맛을 들이면 두려움을 모르고 상습화된다. 사탄은 이러한 카타르시스를 선악과로 만들어 설교자들이 적용과정에서 쉽게 입에 넣을 수 있도록 언제나 가까이에 내 밀고 있음을 유념해야 한다.

다섯째로, 메시지가 누구에게나 이해와 공감을 불러 일으켜 효과적인 적용을 가져오기 위해 다음 네 가지의 방법을 권하다. 첫째는, 진지하고 부드럽게 회중들의 가슴에 스며들도록 하는 질서있는 설명이다. 이 때 주의할 것은 설교자의 일방적인 설명이 아니라 보편타당성을 지니도록 노력해야 한다. 둘째는, 말씀과 삶의 장과 쉽게 연결할 수 있는 예화의 활용이다. 예화의 사용은 설교자의 특별한 주의를 필요로 한다. 그러므로 다음 강의에 이 부분을 집중적으로 살펴보게 될 것이다. 셋째는, 회중이 타의에 의한 선택이 아니라 자의로 선택할 수 있는 다양한 적용의 길을 제시한다. 지금까지 대부분이 적용은 명령적이었다. 제시한대로 하면 복 받고 그렇지 않으면 벌 받는다는 식의 적용은 효력이 없다. 넷째는, 감동적인 간증 등을 통하여 생생한 예증으로 들려주고 보여주는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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