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에 대한 온전한 순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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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에 대한 온전한 순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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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4.08.27 1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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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8) 하나님의 능력을 경험할 때 하나님께 순종할 수 있다.

파라오가 이스라엘 백성의 예배장소를 이집트로 지정했을 때, 모세는 이를 거부한다. 파라오의 제안은 하나님의 명령과 일치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이 이집트가 아니라 호렙 산에서 하나님께 예배하라고 명령하셨다. 모세는 “우리가 사흘 길쯤 광야로 들어가서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 제사를 드리되 우리에게 명령하시는 대로 하려 하나이다.”(출 8:27)고 그의 입장을 밝힌다. 모세는 하나님의 백성이란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신8:3) 사람들임을 알았기 때문이다.

동시에 모세는 파라오의 나쁜 속셈을 폭로한다. “우리가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 제사를 드리는 것은 애굽 사람이 싫어하는 바인즉 우리가 만일 애굽 사람의 목전에서 제사를 드리면 그들이 그것을 미워하여 우리를 돌로 치지 아니하리이까?”(출 8:26) 이집트 백성은 이미 파리 떼 재앙을 통해 이스라엘 백성과 비교해서 불이익을 경험했다. 그들은 자신들에게만 재앙을 내리시는 하나님과, 그 하나님이 보호하시는 이스라엘 백성에 대해 화가 났을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 파라오는 파리 떼 재앙이 물러가게만 해준다면 이스라엘 백성이 이집트 땅에서 하나님께 예배할 수 있도록 해주겠다는 제안을 한다.

우리가 특정 신 때문에 국가적 재난을 겪을 때 그 신이 두둔하는 사람들만 재난에서 벗어난다고 해보자. 또한 우리가 그들을 괴롭힌 것 때문에 그 재난을 겪는다는 이야기를 듣는다고 해보자. 그 사람들이 그 재난을 준 신을 찬양하고 높이는 행사를 우리 가운데서 행한다고 해보자. 그들을 향한 우리의 감정은 어떠할까? 그 행사는 제대로 진행되기 어려울 것이다.

모세가 바로 그러한 상황을 지적하고 있다. 파라오는 모세의 요청을 들어주는 척 하면서 이스라엘 백성을 파멸로 몰아갈 수 있는 수를 쓰고 있었던 셈이다. 모세는 그 수에 넘어가지 않았다. 우리 같으면 이전에 완고했던 파라오가 그만큼 양보했으면 대단한 것이니 타협하자는 생각을 할 수도 있을 것이다. 또한 이집트 땅에서 하나님께 예배함으로써, 그동안 그들을 괴롭혔던 이집트 백성들 앞에서 그들에게 재앙을 내리는 하나님이 우리의 하나님임을 과시하고 싶은 유혹에 빠질 수도 있다. 그러나 모세는 이 모든 유혹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그는 그의 판단과 감정을 따르지 않고 오직 하나님의 말씀만 따랐기 때문이다. 이는 오늘날 우리가 본받아야 할 자세이다.

모세는 하나님의 재앙을 경험한 이집트 땅에서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께 예배하는 일은 이집트 백성의 분노를 살 것임을 잘 알고 있었다. 이집트 백성은 많은 신들을 섬기고 있었다. 그 신들은 많은 경우 동물들의 모습을 지니고 있었다. 하늘의 여신 하토르(Hathor)는 황소의 뿔을 지니고 있었으며, 다산의 신 아피스(Apis)도 황소의 모습을 지니고 있었다. 죽은 사람을 미라로 만들어 사후세계로 인도한다는 신 아누비스(Anubis)는 몸은 사람의 모습을 지녔지만 머리는 자칼의 모습을 지녔다. 무엇보다 나일 강의 원천을 지키고 만물을 창조한다는 나일 강의 신 크눔(Khnum)의 머리는 양 머리였다. 이집트의 가장 큰 신이라는 아문레(Amun-Re)의 신전에 이르는 길에는 양(Ra)들의 머리를 한 스핑크스들이 도열해 있다. 이집트인들은 양 자체를 신으로 여기지는 않았지만, 양은 태양신을 상징하는 역할을 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나를 위하여 삼 년 된 암소와 삼 년 된 암염소와 삼 년 된 숫양과 산비둘기와 집비둘기 새끼를 가져올지니라.”(창 15:9)고 명령하셨다. 희생물의 목록에 숫양도 포함되어 있었다.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께 예배하는 일은 양을 죽여 희생물로 하나님께 드리는 일을 포함했다. 대제국 이집트의 한 복판에서 그들이 가장 숭배하는 신을 나타내는 상징인 양을 잡아 죽이는 일은 이집트 백성의 공분을 사기에 충분할 것이다. 그러하기에 모세는 이집트 사람들이 이스라엘 백성의 제사를 “미워한다”고 밝혔다. 나일 강을 중심으로 계절의 질서 있는 변화를 경험하여 그 질서를 준다고 여기는 동물 형상의 신들을 숭배하며 살던 이집트 사람들은 목축문화를 싫어했다. 목자들은 그들의 생존을 위해 양의 털과 가죽, 고기, 우유를 필요로 했고 이를 위해 양들을 죽여야 했기 때문이다. 그들에게 질서와 생명을 주는 신들을 나타내는 동물들을 죽이는 목자들은 혼돈과 무질서를 상징하는 사막에서 온 부담스러운 존재였을 것이다.

목축문화에 맞서 농경문화를 옹호하며, 그 문화의 수호자를 자처하는 파라오가 이스라엘 백성이 이집트 한
복판에서 동물제사를 드리도록 허용한다는 것 자체가 역설이고 모순이다. 그는 이스라엘 백성이 이집트 백성의 공격을 받도록 유도하는 꾀를 내고 있지만, 이는 그가 이집트 농경문화의 수호자가 아님을 드러낼 뿐이다. 이집트의 풍요 역시 이스라엘 백성을 그곳에서 보존하시고자 하신 하나님의 주권 아래 있을 뿐이다. 모세가 이집트 한복판에서 하나님께 예배하는 일을 두려워했던 것은 아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이집트 사람들의 공격을 두려워하지 않고 하나님께 예배하기 위해서는 더 많은 교훈이 필요했을 뿐이다. 열 가지 재앙을 통해 이집트 백성이 섬겼던 신들이 무력한 존재임이 드러났다. 이 때 비로소 이스라엘 백성은 양을 잡아 피로 문설주에 바르면서도 이집트 백성의 보복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만왕의 왕이신 하나님의 말씀만 듣기로 결단했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말씀에만 순종하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능력을 경험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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