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짜 독수리와 진짜 독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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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짜 독수리와 진짜 독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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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4.07.30 1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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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5) 참된 위로와 안식은 하나님께만 있다.
▲ 이경직 교수

양 떼가 목사의 음성을 따라 가듯이 목자도 양 떼의 음성에 귀를 기울인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여야 하듯이 하나님도 우리의 탄식과 기도에 귀를 기울이신다. 양 떼가 목자의 음성을 알듯이 목자도 그의 양 떼의 이름을 아시고 양 떼의 소리도 분별하신다. 그러하기에 시편 기자는 “여호와여 내가 주를 불렀사오니 속히 내게 오시옵소서. 내가 주께 부르짖을 때에 내 음성에 귀를 기울이소서.”(시 141:1)라고 기도할 수 있었다. 이스라엘 백성이 이집트 앙 파라오의 압제 아래에서 그들의 조상의 하나님 여호와께 부르짖을 수 있었던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들은 “여호와께서 우리 음성을 들으시고 우리의 고통과 신고와 압제를” 보신다고 확신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신 26:7).

목자가 자신의 양 떼를 공격하는 맹수들을 그의 지팡이를 사용해서 물리치듯이, 하나님께서도 그의 양 떼들이 맹수들의 공격 앞에서 부르짖을 때 응답하셔서 그분의 강한 팔을 사용하신다. 파라오가 이스라엘 백성에게 해방을 주라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을 때 하나님께서 “강한 손”을 사용하신 까닭이 여기에 있다(출 3:19; 6:1; 32:11). 그러하기에 이스라엘 백성은 말씀으로 그들을 인도하시는 하나님께 감사할 뿐 아니라 그들을 대적하는 원수들에 맞서 “강한 손과 펴신 팔로 인도하여 내신 이에게 감사”하기도 해야 한다(시 136:12).

예수님께서 말 못하는 사람에게서 귀신을 쫓아내심으로 하나님의 능력을 보여주셨다. 예수님은 “내가 만일 하나님의 손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낸다면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너희에게 임하였느니라.”(눅 11:20)고 말씀하셨다. 하나님의 나라를 대적하는 모든 세력이 하나님의 강한 손과 펴신 팔 앞에서 무너지는 일이 예수님의 사역을 통해 시작되었다는 뜻이다.

이집트 파라오의 왕관에는 독수리와 코브라가 장식되어 있다. 독수리는 파라오가 그의 날개 아래 있는 사람들을 보호한다는 의미를 지닌다. 그러나 파라오는 이스라엘 백성을 그의 날개 아래 잘 보호하는 참된 독수리가 아니었다. 그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고통만을 주었다. 또한 그는 하나님 말씀에 불순종하다가 이집트 백성들이 하나님의 10가지 재앙을 받도록 했다.

가짜 독수리 파라오가 이스라엘 백성을 보호하지 않고 괴롭힐 때 하나님은 그분의 날개로 이스라엘 백성을 업어 그분에게로 데려오신다. 그러하기에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과 시내산에서 언약을 맺으시기 전에 “내가 애굽 사람에게 어떻게 행하였음과 내가 어떻게 독수리 날개로 너희를 업어 내게로 인도하였음을 너희가 보았”다(출 19:4)고 말씀하신다. 이스라엘 백성이 이집트를 떠나 광야를 거쳐 시내산에 이른 과정은 참된 독수리이신 하나님은 그분의 날개에 이스라엘 백성을 얹으셔서 안전하게 옮기신 과정으로 묘사된다.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의 독수리 날개 덕분에 광야에서도 안전하게 이동할 수 있었다. “여호와께서 그들 앞에서 가시며 낮에는 구름 기둥으로 그들의 길을 인도하시고 밤에는 불기둥을 그들에게 비추사 낮이나 밤이나 진행하게 하신”(출 13:21) 일이 이 과정으로 묘사된다.

그러하기에 다윗은 “나를 눈동자 같이 지키시고 주의 날개 그늘 아래에 감추사 내 앞에서 나를 압제하는 악인들과 나의 목숨을 노리는 원수들에게서 벗어나게 하소서.”(시 17:8-9)라고 고백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을 “황무지에서, 짐승이 부르짖는 광야에서 만나시고 호위하시며 보호하시며 자기의 눈동자 같이 지키셨도다. 마치 독수리가 자기의 보금자리를 어지럽게 하며 자기의 새끼 위에 너풀거리며 그의 날개를 펴서 새끼를 받으며 그의 날개 위에 그것을 업는 것 같이 여호와께서 홀로 그를 인도하셨고 그와 함께 한 다른 신이 없었도다.”(신 32:10-12).

시내산에서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했던 이스라엘 백성이 성막에서 그 경험을 반복할 때, 성막의 지성소에 놓인 그룹들이 “그 날개를 높이 펴서 그 날개로 속죄소를 덮었다.”(출 25:20; 37:9) 솔로몬이 성전을 완공하고 “내소 가운데에 그룹을 두었으니 그룹들의 날개가 퍼져 있는데 이쪽 그룹의 날개는 이쪽 벽에 닿았고 저쪽 그룹의 날개는 저쪽 벽에 닿았으며 두 날개는 성전의 중앙에서 서로 닿았”다(왕상 6:27). 그룹의 날개는 참된 독수리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지키고 보호하신 수단이다. 그러하기에 다윗은 하나님께서 그를 사울과 원수들의 손에서 건지셨을 때 “그가 또 하늘을 드리우고 강림하시니 그의 발 아래는 어두캄캄하였도다. 그룹을 타고 날으심이여. 바람 날개 위에 나타나셨도다.”(삼하 22:10-11)고 고백했다.

그러하기에 우리는 찬송할 수 있다. “주 날개 밑 내가 편안히 쉬네. 밤 깊고 비바람 불어쳐도 아버지께서 날 지켜주시니 거기서 편안히 쉬리로다. 주 날개 밑 참된 기쁨 있네. 고달픈 세상 길 가는 동안 나 거기 숨어 돌보심을 받고 영원한 안식을 얻으리라.”(찬 478) “주는 나의 도움이 되셨음이라. 내가 주의 날개 그늘에서 즐겁게 부르리이다.”(시 63:7) 그러하기에 우리는 “내가 영원히 주의 장막에 머물며 내가 주의 날개 아래로 피하리이다.”(시 61:4)고 고백해야 한다. 하나님은 “새가 날개 치며 그 새끼를 보호함 같이 나 만군의 여호와가 예루살렘을 보호할 것이라.”(사 31:5)고 약속하시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독수리처럼 우리를 날개로 보호하시고 인도하시는 분이시다. 참된 위로와 안식은 참된 독수리이신 하나님께만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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