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으로 통치하시는 하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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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4.06.25 14: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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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파라오의 철권 통치방식은 하나님의 백성 앞에서는 무력하다.
▲ 이경직 교수

이집트의 파라오와 그의 백성들은 열 가지 재앙을 피할 기회가 있었다.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해 파라오에게 하신 말씀에 귀를 기울였다면 그들에게는 그런 재앙이 없었을 것이다. 하나님은 처음부터 이집트를 향해 그분의 지팡이를 사용하지는 않으셨다. 하나님은 파라오로 하여금 이스라엘 백성을 이집트에서 내보내도록 하기 위해 처음부터 무력을 사용하지는 않으셨다. 하나님은 모세에게 이스라엘 장로들과 함께 파라오에게 가서 “이스라엘 백성이 사흘 길쯤 광야로 가도록 허락하라.”(출 3:18)는 그분의 말씀을 전하라고 하셨다(출 3:17). 모세와 아론은 파라오에게 가서 “내 백성을 보내라”(출 5:1)는 하나님의 말씀을 그대로 전한다. 모세와 아론은 하나님의 요구를 이루기 위해 파라오와 같은 무력을 사용하지 않는다. 하나님께서는 모세와 아론을 통해 파라오에게 말씀하시며 그의 순종을 기대하신다.

말씀하시는 하나님과는 달리 파라오는 그의 손에 들린 지팡이를 사용해서 그의 적들을 격파하였다. 그의 팔과 지팡이는 그의 대적들을 무력화시킬 수 있는 절대 권력을 상징했다. 이집트의 파라오의 미라를 보면, 파라오는 권위와 능력의 상징으로 갈고리와 도리깨를 가슴에서 교차시키고 있다. 이는 죽음의 세계를 다스리는 이집트 신 오시리스를 상징한다. 도리깨는 타작기로 사용되었기에 이집트의 풍년을 상징하지만 전쟁에서는 무기로도 사용되었다. 지팡이는 목자가 양떼를 다스린 이집트의 옛 목축문화를 반영하며, 백성을 다스리는 힘과 권위를 상징한다. 이 지팡이는 백성에 대한 통치권을 상징하는 왕의 홀을 나타낸다.

모든 사람은 파라오의 강력한 무력 앞에서 노예와 같이 복종해야 했다. 파라오는 이스라엘 백성의 수효가 늘어나자 “그들에게 무거운 짐을 지워 괴롭게”(출 1:11) 하였으며 그들을 학대하였다. 이집트의 파라오는 그의 말을 듣지 않는 사람들을 다스리기 위해 막대기가 들린 그의 강한 손을 사용했다. 그의 통치 방식은 무력과 압제였다. 그러나 그의 통치방식이 언제나 성과를 거둔 것은 아니었다. 그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중노동을 강요하여 학대하면 할수록 이스라엘 백성은 더욱 번성하여 이집트 전역에 퍼져 나갔다(출 1:12). 이는 하나님께서 아담과 하와에게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창 1:28)는 복을 주신 것을 떠올린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노아와 그의 아들들에게 “너희는 생육하고 번성하며 땅에 가득하여 그 중에서 번성하라.”(창 9:7)고 하신 약속의 성취이기도 하다. 이 상황은 하나님께서 “네 씨가 크게 번성하여 하늘의 별과 같고 바닷가의 모래와 같게”(창 22:17) 하겠다고 아브라함에게 하신 약속을 떠올린다. 이는 이집트 “고센 땅에 거주하며 거기서 생업을 얻어 생육하고 번성하였”던(창 47:27) 이스라엘 백성을 이집트의 파라오가 그의 무력으로 제압할 수 없다는 뜻이다.

파라오는 히브리 산파 십브라와 부아에게 이스라엘 백성에게서 남자 아기들이 태어날 때 그들을 죽이라고 명령했지만 그 산파들은 파라오를 두려워하기는 했지만 하나님을 더 두려워했다(출 1:15-17).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을 더 두려워해서 남자 아기들을 죽이지 않은 산파들에게 은혜를 베푸셔서 그들의 집안이 번성하였다(출 1:20-21).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은 번성하고 매우 강해졌다(출 2:10). 파라오가 이스라엘 백성의 번성을 막으려는 조처를 취할 때마다 그의 조처는 무력화되고 이스라엘 백성은 더 번성해진다.

파라오는 히브리 산파들이 자신의 명령을 무서워하지 않자 그의 백성들에게 명령한다. 이스라엘 백성에게서 아들이 태어나면 그 아들을 이집트 강에 던져 죽이는 일은 이집트 백성의 몫이 되었다. 그런데 모세가 태어났을 때 그의 어머니는 모세를 3달 동안이나 숨긴 채 키울 수 있었다(출 1:2). 결국 모세를 나일 강에 버린 것은 이집트 백성이 아니라 모세의 어머니였다. 그러나 그녀가 모세를 나일 강에 버린 것은 모세를 죽이기 위해서가 아니라 살리기 위해서였다. 갈대 상자에 담겨 나일 강에서 떠내려 온 모세가 히브리인의 아기인줄 알면서도 그 아기를 건져낸 사람은 다름 아닌 파라오의 딸이었다. 당대의 절대 권력자 파라오의 권위는 집안에서부터 무너진 셈이다. 파라오의 강한 무력과 압제는 우는 아기를 보고 불쌍히 여기는 파라오의 딸의 마음 앞에서 속수무책이었다(출 1:6). 아기 모세의 연약함이 파라오의 강한 손을 이긴 셈이다.

파라오의 딸은 모세의 누이 미리암이 “내가 가서 당신을 위하여 히브리 여인 중에서 유모를 불러다가 이 아기에게 젖을 먹이게 하리이까”(출 2:7)고 물었을 때 흔쾌히 승낙하였다. 그리고 모세의 어머니가 유모로서 모세에게 젖을 먹이는데 대해 삯까지 주었다(출 2:9). 그뿐 아니라 그 아이가 자랄 때까지 히브리 여인에게 양육을 맡기기까지 한다(출 2:10). 그녀는 아기 모세가 히브리인임을 알면서도 나일 강에서 건졌으며, 그 아기가 히브리 가정의 교육 속에서 자라는 일까지 허락했다. 파라오는 강한 손으로 이스라엘 백성을 위협했지만 정작 파라오의 딸은 이스라엘의 출애굽을 이끌 미래 지도자를 키우고 있었다. 그녀는 그 아기의 이름을 모세라고 짓는 담대함을 보인다. 모세라는 이름은 그녀가 “그를 물에서 건져내었음”을 뜻하기 때문이다(출 2:10). 그 당시 분위기에서 나일 강에서 건져낸 아기가 히브리인의 아기임이 분명할 것이기 때문이다. 파라오의 철권 통치방식은 하나님의 백성 앞에서는 무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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