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경제가 장기침체에서 벗어나질 못하고 있다. 특히 조선, 해운ㆍ건설과 같이 고정적비용이 과다한 업종은 경기가 호황일 때 몸집을 줄이고 구조조정을 철저히 하지 않으면 경기가 내리막길로 갈 때 심각한 타격을 입게 된다.
그래서 해운업의 경우 경기침체의 징조가 보이기 시작하면 해운선사들이 몸집을 줄이느라 중고선을 매물로 내어놓기 때문에 중고선 가격이 급락하게 된다.
선박은 물동량이 없어 항구에 정박만하고 있어도 감가상각비, 인건비, 유류비, 항구정박료 등 고정적인 비용이 많이 발생하기 때문에 골칫덩어리가 된다. 고정적비용이 많이 발생하는 기업들은 경기가 호황일 때는 엄청난 이익을 올릴 수 있지만 경기가 침체기에 접어들면 손실이 눈덩이처럼 불어난다. 경기가 호황일 때 이익이 많이 난다고 사세를 확장하거나 돈 찬치를 벌리게 되면 경기가 침체기로 접어들 때 엄청난 타격을 받게 된다.
좋은 사례가 요즈음 채권은행들이 골머리를 앓고 있는 STX그롭이다. STX그룹의 주 업종은 고정적비용이 큰 조선ㆍ해운이다. STX그룹은 우리나라가 외환위기 여파로 경기가 침체국면에서 벗어나지 못할 때인 2000년 쌍용중공업(현 STX엔진)을 모체로 시작되었다.
그 후 조선ㆍ해운업의 호황기를 겪으면서 사세를 확장하기 시작해 2001년에 대동조선(현 STX조선해양), 2002년 산단에너지(현 STX에너지), 2004년 범양상선(현 STX팬오션), 2007년 세계 최대 크루즈선 제조사 노르웨이 아커야즈(현 STX유럽) 등을 M&A하고, 2008년에는 중국 다렌에 170만평 규모의 조선소를 만들었다.
그런데 경기침체가 시작되자 확장일로를 걷고 있던 STX그룹에 빨간불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룹의 매출이 33조 원에 이를 정도로 급속히 성장했으나 계열사들의 손실이 눈덩이처럼 불어나 현금 유동성이 급격히 악화되었다. 계열사를 매각해 위기를 넘기려 하나 경기침체기라 팔리지 않는다. STX그룹이 막다른 골목에 몰렸다. 이로 인해 STX그룹에 돈을 빌려준 채권은행들과 투자자, 채권자, 거래처 등 이해관계자들이 막대한 손해를 보게 되었다.
경제학에 궁핍화 성장(immiserizing growth)이란 말이 있다. 일반적으로 경제가 성장하면 물건을 생산하는 능력이 증가되기 때문에 더 많은 소득과 더 풍요로운 생활을 누리는 것이 정상적이다. 그런데 경제는 성장하는데 국민들의 실질소득이 감소하는 경우가 있다. 이것을 경제학에서는 궁핍화 성장이라 부른다. 생산을 많이 하거나 매출액은 늘어나는데 실질소득이 줄어드는 것이다.
STX그룹의 경우 이와 같은 궁핍화 성장이 장기간 지속된 결과 이해관계자들이 손해를 보고 그룹전체가 어려운 지경을 맞이하게 된 것이다. 궁핍화 성장의 폐해는 STX그룹에만 한정된 문제가 아니다. 조선ㆍ해운ㆍ건설 등 고정적 비용이 많이 발생하는 업종 대부분이 몸살을 앓고 있다. 사느냐 죽느냐 극한투쟁을 벌리고 있다.
이와 같은 궁핍화 성장은 기업뿐만 아니라 국가 간의 무역에서도 발생한다. 우리가 물건을 사고 팔 때 가능하면 싸게 매입하고 비싼 가격으로 팔려 한다. 마찬가지로 국가 간의 거래에서도 싼 값에 수입하고 비싼 값에 그리고 더 많이 수출하려 한다. 그러나 거래는 상대방이 있기 때문에 원하는 데로 되는 것이 아니다. 때로는 어쩔 수 없이 비싸게 수입하거나 싼 값으로 수출함으로써 손해를 보는 경우가 발생한다.
상품의 수출과 수입이 가격상 얼마나 유리해졌는지, 아니면 얼마나 불리해졌는지를 나타내는 지표를 교역조건(terms of trade)이라 한다. 교역조건이 개선되었다는 것은 수출총액으로 수입할 수 있는 양이 늘어났다는 것을 의미하며 반대로 교역조건이 나빠졌다는 것은 수출한 돈으로 수입할 수 있는 양이 줄어들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교역조건이 나빠졌는데도 수출이 늘어나면 성장은 한 것 같은데 삶의 질이 떨어지게 된다. 궁핍화 성장이 지속되면 국가적으로도 문제가 발생되는 것이다.
궁핍화 성장을 극복하고 풍요로운 성장을 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구조조정을 통해 체질을 강화하고 생산성을 높여야 한다. 우리나라가 IMF사태를 빠르게 극복하고 2008년 시작된 세계적인 경제위기를 넘길 수 있었던 것도 IMF당시 수많은 은행과 기업들이 도산당하는 구조조정의 아픔이 있었기 때문이다.
반면 일본이 장기침체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은 구조조정 없이 돈이나 풀어 얼렁뚱땅 넘어가려 하기 때문이다. 고난을 당할 때 연단을 받지 않으면 고난의 시기가 길어지고 되풀이 될 수 있다. 그래서 성경은 이렇게 말한다.
“고난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말미암아 내가 주의 율례들을 배우게 되었나이다”(시 119:71).
이상덕 목사 (샬롬교회 협동목사ㆍ경영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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