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감사해요! 사랑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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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감사해요! 사랑해요!”
  • 현승미 기자
  • 승인 2010.05.24 11:5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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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려운 이웃 위해 봉사하며 앞 못 보던 어머니의 눈과 귀가 됐던 원종건 군

“지난해 성산청소년효행대상에서 효행상을 받았는데, 사실 그 이유는 잘 모르겠어요. 많은 분들이 절 주목해 주시고 칭찬도 많이 해주시는데, 사실은 어머니께 초점이 맞춰줘야 해요. 물론, 더 나아가서는 하나님께 초점 맞춰지길 바랍니다. 제가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이렇게 올바르게 자랄 수 있었던 건 모두 어머니의 가르침 때문이었죠.”
 

올해 고등학교 3학년이 된 원종건 군(충현교회·김성관 목사)은 2005년 MBC에서 진행됐던 한 프로그램을 통해 처음 세상에 알려졌다. 앞 못 보는 이들에게 눈을 뜨게 해줬던 느낌표의 개안수술 프로젝트. 당시 갓 초등학교를 졸업한 원 군은 부모의 보호가 필요한 아주 작고 어린 아이였다. 그런데, 그 어린나이에 집안의 가장 노릇을 하고 있었다. 세 살 때 아버지가 간경화로 돌아가시고, 눈도 보이지 않고 귀도 들리지 않는 엄마의 눈과 귀가 되어주면서 어려운 생활을 이어나가고 있었다. 엄마를 보살피기 위해 중학교 진학마저 포기하려 했던 그가 5년이 지난 지금 하나님의 큰 비전을 품은 어엿한 청년이 돼 있었다.
 

“어릴 때는 집안일도 많이 돕고, 중학교 때까지만 해도 학교가 가까워서 엄마랑 장도 보러 가고 함께 있는 시간이 많았죠. 지금은 학교도 멀고 입시 준비에 바빠서 엄마랑 긴 대화를 나눌 시간이 없어서 제일 속상해요. 그래도 떡 만드는 법이나 꽃꽂이도 배우러 다니시면서 종건이 외의 다른 재미를 찾고 계세요.”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내발산동에 있는 한 부모를 위한 보호소에서 1년을 살았다. 기술을 배워 일정기한이 되면 떠나야 하는 곳이었기에, 어머니 박진숙 씨는 종건 군을 입양 보낼 생각까지 하게 됐다. 그러나 마침 어머니가 사당동 속옷 공장에서 잠깐 일할 수 있게 됐다. 그리고 사회복지사의 도움을 받아 생활보호대상자로 국가 지원을 받게 됐다.
 

한 달 국가 지원금 60만원. 두 사람이 생활하기에는 많이 부족한 돈이었지만, 헤어지지 않고 함께 할 수 있었기에 그것만으로도 감사할 수 있었다.
 

뿐만 아니다. 원종건 군이 초등학교에 들어가기 전부터 폐품 줍는 일을 했던 박 씨는 그 돈을 따로 모아 자신들보다 더 어려운 이들을 위해 사용하고 있었다.
 

“폐품 모으는 일이 큰 돈은 되지 않아요. 하지만, 항상 따로 모아두세요. 제일 먼저 십일조를 하시고, 컴패션을 통해 동남아 어려운 지역 친구들을 돕고 계세요. 정기적인 후원은 아니고 기도하시면서 돈을 모아두시는데, 그때 그때 조금 더 어려운 이들에게 전해지길 원하시죠.”
 

그가 본 어머니의 모습은 기도의 사람, 어려울 이들을 긍휼히 여기고 자신이 가진 콩 한쪽도 나누는 봉사의 사람이었다. 때문에 종건 군 역시 어린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처지를 힘들어하기보다 오히려 작은 것들에 고마워할 줄 아는 감사의 사람으로 성장했다.
 

“있으면 있는 대로, 없으면 없는 대로 그렇게 살았어요. 기도하다 보면 하나님이 알아서 필요를 채워주셨죠. 지금 생각해보면 어머니께 고마운 건데, 항상 생활 속에서 바른 교육을 해 주셨어요.”
 

매일 아들에게 휴대폰 문자로 말씀을 보내 주고, 집 안 구석구석 말씀을 붙여 놓고, 눈 돌릴 때마다 말씀을 볼 수 있게 했던 어머니 박진숙 씨. 그는 아들에게 공부하라는 잔소리가 아닌, 공부 전에 성경책을 많이 보라고 이야기 하곤 했다.
 

“공부는 못해도 되지만, 사람이 돼야 한다는 말씀을 항상 강조하셨어요. 어머니 또한, 삶 가운데 그 가르침을 몸소 행동으로 보여주셨죠. 어머니의 생활 가운데 배인 그 가르침을 나중에 제 아이들에게도 배우게 하고 싶어요.”
 

어린 시절 어머니를 따라간 기도원에서 우연히 원 배네딕토 선교사의 책을 접한 원종건 군은 그때부터 청소년 사역에 대한 비전을 꿈꾸기 시작했다.
 

“태어나서 처음 본 게 그 분 책인데, 책 표지에 ‘102030’이라고 적혀 있어요. 10대에 꿈을 꾸고, 20대에 준비해 30대에 영향력을 끼치는 사람이 되라는 거였죠. 그 책을 읽고 중학교 2학년 때 호서대에서 하는 그 분 캠프에 참가하기도 했었죠. 그 분은 열정이 있는 사람을 존경했는데, 특히 청소년들의 열정을 아름답게 생각하셨어요. 저도 그 선교사님처럼 청소년들을 많이 이끌고 사역하고 싶어요.”
 

청소년들이 다른 사람에게 하나님의 선한 영향력을 끼치는 사람이 될 수 있도록 교육하고 싶다는 원종건 군.
 

그는 어머니를 본받아 어려운 이웃들을 돕고, 2주에 한 번 학교가 쉬는 토요일엔 사당동에 있는 한 경로당을 찾아가 어르신들의 말벗도 돼 주며, 자신 스스로도 하나님의 선한 영향력을 끼치고 있었다. 또한, 중학교 1학년 때부터 매년 여름이 되면 빼놓지 않고 동남아선교를 다니고 있다.
 

“사실 돈으로 후원하는 건 부끄러워요. 전 개인적으로 육체적 봉사를 가치 있게 생각해요. 중국, 몽골, 베트남 등 다양한 곳을 갔다 왔는데 그 사람들 생활이 많이 어려워요. 사람이 기본적으로 의식주가 있어야 하잖아요. 음식은 엔지오 단체들에서 지원 받고, 옷도 기본적인 건 갖춰져 있는데, 집이 제일 문제예요. 그냥 통나무 4개 세워놓고 집이라고 하는 경우가 많더라고요. 어릴 때 집안환경이 중요하잖아요. 지금 제가 시각디자인을 전공하고 있는데, 대학에선 산업디자인을 전공하려고요.”
 

인테리어 디자이너가 꿈인 종건 군은 사회에서 일을 하게 되면 최대한 빨리 은퇴하고 퇴직해서 하나님이 주신 디자이너라는 달란트를 가지고 청소년 사역을 하고 싶단다.
 

“동남아지역은 피임교육이나 시설이 제대로 없어서 10대 어린 부모가 너무 많아요. 그 아이들에겐 집도 필요하고, 일도 필요하고 좋은 환경을 제공 해주는 것도 중요할 것 같아요. 그래서 하나님이 주신 달란트를 가지고 그 아이들에게 인테리어를 가르쳐 주고 싶어요. 그리고 제 재능을 가지고 봉사와 기부를 할 때마다 그 집에 십자가를 세우고 싶어요.”
 

어릴 적 자신보다 경제적으로 나았던 이들의 도움을 받았다. 그리고 나눌 수 있게 된 지금 그들에게 그 은혜를 갚기보단 자신이 또 다른 어려운 이들을 찾아 베푸는 삶을 사는 것이 하나님이 원하시는 삶이라고 굳게 믿는 종건 군. 어머니와 하나님을 통해 받은 가르침을 그대로 실천할 뿐이라는 그는 뱃속에서부터 하나님을 알게 해주신, 그리고 삶 가운데에서 실천으로 가르쳐주셨던 어머니께 항상 감사하다고 고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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