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 치하 ‘기독여성’ 독립운동에 상당한 기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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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치하 ‘기독여성’ 독립운동에 상당한 기여
  • 이현주 기자
  • 승인 2010.03.29 17: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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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6일 교회협 양성평등위 토론회 마련...이덕주 교수 여성 주체적 독립운동 다수 발표

한일 강제병합 100년을 맞아 역사를 새롭게 조명하는 움직임이 한창인 가운데 일제시대 독립운동의 중심에 여성들의 활약도 상당했다는 주장이 나왔다.

지난 26일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양성평등위원회가 마련한 ‘기독여성 관점에서 본 한일강제병합’ 토론회에서 감신대 이덕주 교수는 여성 민족운동의 효시로 불린 ‘송죽형제회’와 ‘애국부인회’ 등을 소개하며 “기독교 여성들이 겁 없이 민족운동 단체를 결성하고 독립운동을 했었다”고 설명했다.

송죽형제회는 에큐메니칼 여성 민족운동의 효시로 불리는 항일 결사대로 평양에 있던 숭의여학교 교사와 학생, 졸업생들로 조직된 비밀 결사 조직이었다. 105인 사건에 자극을 받고 ‘죽음을 무릅쓰고 나라를 위해 헌신할’ 동지들을 규합한 송죽형제회는 생일잔치를 가장해 월 1회 회원 집을 돌아가며 모임을 갖고 기도하며 매월 30전의 회비를 걷어 국외로 망명한 독립운동가들을 지원하는 등 활발한 독립 후원활동을 전개했다.

이덕주 교수에 따르면 ‘송죽회’는 1916년 무렵 학교 졸업 및 결혼과 동시에 지방으로 흩어지면서 지방 조직도 만들게 됐으며 3.1운동 당시에는 여성 만세시위의 연락망을 맡았고 후에 애국부인회의 근거가 되기도 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 교수는 “송죽형제회는 한말 이후 남성들의 전유물처럼 인식되었던 민족 독립운동에 여성들이 적극 참여했다는 점에서 그 의미가 크다”며 “그 이전에도 이화학당의 국구기도회, 교회여성들의 국채보상운동 참여, 간호학교 학생들의 의병 부상자 치료 등 여성 민족은 동의 참여가 있었지만 송죽형제회처럼 적극적인 독립운동은 찾아보기 힘들다“고 말했다.

송죽형제회의 출발지가 된 숭의여학교가 감리교와 장로교회가 연합으로 운영하던 초교파 기독교학교라는 점에서 이 비밀결사대 역시 철저치 교회여성을 중심으로 그것도 감리교와 장로교 여성들이 초교파적으로 참여하였는데 이는 곧 에큐메니칼 민족운동의 효시로 불리고 있다.

3.1운동 이후 결성된 ‘애국부인회’도 여성 독립운동을 대표하는 조직으로 알려졌다. 이덕주 교수는 “전도부인과 여전도회 지도자들이 모여 1919년 11월 ‘대한애국부인회’를 결성, 임시정부를 지원하며 독립운동을 전개했다”고 밝혔다.

애국부인회는 서울과 평양지회 등을 두며 활발한 독립운동을 벌였지만 동지의 배반으로 조직이 발각되면서 간부 50여명이 체포되고 심한 고문과 악형을 받았다.

이 교수는 “애국부인회과 우리 민족운동사와 교회사에 남긴 의미는 적지 않다”며 “3.1운동으로 남성 독립운동가들이 투옥되거나 해외로 망명함으로 독립운동 추진 세력에 공백이 생길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여성들이 그 공백을 메웠다는 점, 또 지금까지 남성들의 독립운동을 뒷바라지 하는 보조적 수준에서 결사항전을 목적으로 본격적인 항일투쟁의 수준으로 끌어올린 점 등은 높이 평가된다”고 말했다.

이날 세미나에서는 한일병합 100년을 맞이한 교회여성들이 일본 역사 왜곡 교과서 문제와 위안부 문제 해결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한신대 임희숙 교수는 “기독여성들도 역사 왜곡 교과서 수정을 위한 동아시아 연대운동에 참여해야 하며 위안부 문제 해결에도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임 교수는 “위안부 문제는 한일 양 국민에게 과거 식민지 지배의 본질을 인식하게 하는 주제로 교단별 교재에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반영하고 이 문제를 알리는 국제 통합교육의 개발과 참여확대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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