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의 거리 청담에서 말씀과 신앙도 디자인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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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션의 거리 청담에서 말씀과 신앙도 디자인하죠”
  • 현승미
  • 승인 2009.06.24 17:0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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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담동 아름다운교회 창립멤버 디자이너 루비나권사

화려한 패션의 거리 ‘청담동’. 그곳에 결코 화려하지 않은 그러나 아름다운 교회가 있다. 말 그대로 청담동 ‘아름다운교회(현승학목사)’.

지하로 이어지는 좁은 계단을 내려가면 만나게 되는 깔끔하고 아담한 교회. 올해로 설립 20주년이 됐지만 교인들은 70여명 남짓. 그 역사에 비해 교회 규모나 교세가 작아 보이지만 알고 보면 특별한 이력을 가진, 엄청난 하나님의 역사가 이루어지는 교회다. 디자이너들이 중심이 돼 세운 교회. 농어촌 봉사와 해외선교를 위해 주력하는 교회. 교인수가 100여명이 넘어서면 분립해 제2, 제3의 아름다운교회를 세우는 교회.


# 농어촌 봉사로 시작된 하나님 사역

그 이름만큼이나 ‘아름답게’ 교회를 꾸려가고 있는 성도들의 중심에 설립멤버 루비나권사가 있다.

“저도 처음에는 그저 이름뿐인 크리스천이었습니다. 그러다 디자이너 몇몇이 예수님을 만나기 위해 ‘트레스 디아스(Tres Dias)’라는 평신도 영성훈련프로그램에 참여하게 됐는데, 그곳에서 완전히 변화됨을 경험하게 됐습니다.”

그저 주일마다 교회에 나가 예배만 드리는 습관적 크리스천에서 모든 생활이 하나님 안에서 이루어지는 진정한 크리스천으로 거듭났다. 그 때 은혜 받은 디자이너들이 모여 성경공부를 시작했다. 그야말로 내로라하는 탑디자이너들이 모이다 보니 자연스럽게 후배 디자이너들도 함께 하기 시작했다. 7명으로 시작한 성경공부가 50명씩 모이는 예배가 됐다.

“말씀 보는 것도 좋았지만, 단순히 예배에서 끝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 받은 은혜를 어떻게 돌려드릴 수 있을까를 고민하다가 농어촌 봉사를 시작했어요.”

많은 이들이 함께할수록 더 보람되고 즐거운 봉사였기에 유명 헤어 디자이너에서부터 한의사, 간호사, 주일학교 아이들을 가르칠 수 있는 교사까지 농어촌에 꼭 필요한 부분들을 채우기 위해 곳곳에 문을 두드려 동참을 호소했다. 다행히 박승철헤어 스튜디오, 민들레 한의원, 김명준의사 부부 등 실력 있는 믿음의 동역자들이 기꺼이 동참해 주었다. 루비나권사 자신도 이때만큼은 디자이너라는 타이틀을 벗어버리고 청소부터 약 담는 일까지 일손이 필요한 곳을 분주히 돌아다니며 그야말로 ‘시다바리’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 디자이너들이 세운 아름다운교회

그리고 농어촌봉사를 시작한 이듬해 청담동에 아름다운교회를 세우게 됐다.

“그때 당시 함께 예배를 드리는 디자이너들의 숫자가 결코 적지 않았죠. 그리고 연예인들도 연예인교회를 세우는데 우리도 디자이너교회를 세워보자는 의견을 나누게 됐죠.”

그렇게 디자이너 7명이 주축이 돼 지금의 아름다운교회를 세웠다. 농어촌선교는 물론 해외선교까지 영역을 넓혀가며 하나님 나라 확장에 앞장섰다. 교회 설립 4년 뒤부터는 또 다시 디자이너들이 주축이 돼 선교기금을 모으기 위한 ‘바자’를 열기 시작했다.

루비나 설윤형 이상봉 장광효 진태옥 최연옥 등 이름만 들어도 알만한 유명 디자이너들이 100만원이 넘는 자신들의 작품을 선뜻 내놓았고, 그 수익금은 고스란히 선교를 위해 사용되고 있다.

때문에 비록 지금은 설립멤버도 루비나권사와 설윤형 디자이너 둘밖에 남지 않았고, 그저 말씀이 좋고 믿음이 좋아 함께하는 다양한 분야의 교인들이 함께하고 있지만 여전히 디자이너들의 교회로 불리고 있다. 


# ‘바자’를 통한 해외선교

“올해도 어김없이 ‘바자’를 열었지요. 그동안 오른손이 한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라고 하셨던 말씀대로 특별히 알리거나 소문내지 않고 묵묵히 해왔는데, 우연치 않게 방송과 신문을 통해 ‘바자’를 소개할 기회가 있었어요. 너무도 놀랍게 아침 9시가 되기도 전에 1천 여 명의 사람들이 몰려드는 바람에 예배만 드리고 제대로 준비도 갖추지 못한 채 바로 바자를 시작할 수밖에 없었어요. 현수막은커녕 봉사자들이 띠 하나 두를 틈도 없이 정말 바쁘게 움직여야했지요.”

덕분에 애초 목표였던 3천만원을 훌쩍 넘어 4천950여 만 원이 모금됐다. 물론 하나님은 이를 중국의 청각장애인교회 설립과 처소교회를 위해, 식인종 나라 파퓨아뉴기니에 그 나라언어로 된 성경을 만들기 위해, 어려운 군선교교회에, 부산 대우빌라교회를 위해, 자폐아 아이들을 위한 땅 끝 아름다운교회를 돕기 위해 사용토록 미리 꼭 맞게 준비해두셨다.

아름다운교회의 또 하나 아름다운 사역은 교회 분립이다. 한국교회가 점점 대형교회화 되고 있는 시점에서 교인수가 백여 명만 넘어도 넘친다고 생각하는 아름다운교회. 그렇게 첫 담임목사인 김기홍목사가 분당 아름다운교회를 세워 나갔고, 다시 박명수목사가 천호동으로 강동 아름다운교회를 세워 나갔다.

“매번 교회분립시에는 담임목사님이 교인들과 함께 가게 되는데 그때마다 열 명도 채 안되는 인원이 남곤 하죠. 그런데 벌써 교인들이 70여명 가까이 채워졌으니 하나님의 은혜가 놀랍기만 합니다. 이번 ‘바자’ 때 세 분의 목사님과 세 분의 사모님이 함께 자리해 주셨는데 그 모습 또한 얼마나 아름다웠는지 모릅니다.”

교회 해외선교부장으로 활동하며 그 누구보다 교회 일과 하나님 사역을 위해 앞장서지만, 자신이 한 사역보다는 모든 공을 교회와 하나님께 돌리는 루비나권사.


# 몸소 실천으로 직원들 변화시켜

그가 운영하고 있는 숍에서도 그의 사역은 멈추지 않는다. 한 달에 한 번 전 직원이 모이는 대예배를 드리고, 매주 월요일에는 믿음을 가진 10여명이 직원들이 자발적으로 모여 찬양과 말씀을 나누는 시간을 갖는다. 그렇다고 한 회사의 대표로서 직원들을 강제하지도 않는다. 자연스럽게 삶 가운데서 그들이 하나님을 알아갈 수 있도록 돕고 힘이 되주는 것, 그것이 루비나권사가 믿지 않는 직원들을 하나님의 자녀로 이끄는 방법이다.


그는 어릴 적 가톨릭신자였던 어머니에 의해 영아세례를 받고 ‘루비나’라는 세례명을 받았고, 연예인 활동을 하면서는 불교에 심취하기도 했다. 남들처럼 살면서 큰 인생의 고통을 겪지도 않았고, 모델계에 입문하자마자 최고의 자리에 올랐다.


디자이너로 직업을 바꾸면서도 2년여 만에 개인 패션쇼를 개최할 수 있었고, 해외 디자이너들과 함께 자신의 작품을 무대에 올리기도 했다. 60세가 넘는 결코 적지 않은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회사에 결근 한번 하는 일이 없을 정도로 하나님은 그에게 건강까지 허락하셨다.

이 모든 것이 지금의 사역을 위한 하나님의 계획하심과 보살핌 덕분이었음을 고백하는 루비나권사. 앞으로 하나님의 뜻에 따라 크고 작은 선교사역을 펼칠 포부를 가진 그를 통해 더 큰 하나님나라 확장을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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