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을 바라보며 기다립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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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을 바라보며 기다립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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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6.01.11 1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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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삼 목사<만나교회>



황우석의 거짓말이 세상을 혼란스럽게 했다. 거짓으로 시작한 2006년. 거짓은 새로움과는 어울리지 않는 단어다. 왜냐하면 새로움은 신선함과 힘을 함축하고 있기 때문이다.


신앙인들은 새로움과 친숙한 사람들이다. 새로움을 상실한 신앙인은 하나님이 주시는 기쁨을 맛볼 수 없다. 이런 의미에서 신앙인은 절대로 빼앗길 수 없는 기쁨을 간직한 사람들이다.


로마 시대의 신학자 터툴리안은 “신앙이란 불을 켜놓고 기다리는 것이다”라고 했다. 이 말에는 노력과 고통, 희망을 잃지 않는 인내의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살다 보면 믿음을 지키는 것이 정말 힘들 때가 있다. 그러나 그렇다고 믿음의 길을 포기하고 돌아설 수는 없다. 진정한 믿음을 바란다면 인내를 통해 나타날 최종의 승리와 기쁨을 기다려야 한다.


한국교회가 2006년 키워드를 ‘화해와 대화’로 정했으면 좋겠다. 극단으로 달려가고 있는 한국사회에 가장 필요한 것이 화해와 용서이기 때문이다. 예수님이 세상과 하나님을 화해시킨 것처럼 2006년 한국사회는 화해를 연결해 주는 끈들이 필요하다.


우리는 진정한 화해를 기다린다. 왜냐하면 주님께서 모든 갈등과 절망의 벽을 허무시고 이 땅위에 화평의 주님으로 오셨기 때문이다. 만약 주님께서 우리의 마음속에 오실 때, 막힌 담이 허물어지지 않는다면 그것은 거짓이다.


성경에 나타나는 중요한 두 명의 요셉이 있다. 구약시대 족장 야곱의 아들이었던 요셉과 예수님의 육신의 아버지 요셉이 그 사람이다.


둘 다 공통점이 있다면, 마음이 너그러운 사람이요, 화해의 사람이요, 꿈을 꾸는 사람이었다는 점이다. 구약 시대의 요셉은 꿈을 통해 하나님이 주시는 비전을 간직한 사람이었고, 애굽 땅에서도 꿈을 통해 자신의 꿈을 이루었던 사람이다.


신약의 요셉 역시 꿈을 통하여 하나님의 계시를 받고 자신의 진로를 수정한 사람이었다. 즉 약혼녀였던 마리아가 임신한 사실을 알고 관계를 끊으려 했으나, 꿈속에서 천사의 말을 듣고 마리아를 받아들이게 된 것이다.


이러한 요셉의 결단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결정한 것이다. 결국 하나님의 역사는 누구하고의 관계 가운데서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나의 결단”, “나의 순종”에서 이루어지는 것임을 깨닫게 된다. 즉, 자신의 선택이 아닌 하나님의 선택의 편에 서게 될 때, 주님의 분부대로 모든 것을 감수할 수 있을 때 하나님의 역사는 일어난다.


우리는 삶의 여러 부분들을 냉철하고 분명하게 들여다봐야 한다. 혹시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많은 부분들이 스스로의 결단에 의해 결정되지는 않았는지를 말이다.


결국 우리의 인생이 자신의 계획대로가 아닌 하나님의 계획대로 인도되어 가고 있다는 것을 믿는다면 주의 부르심에 순종하는 것이 얼마나 현명한 일이겠는가.

누군가의 헌신적인 배려와 사랑은 “임마누엘”의 역사를 만들어 낸다. 임마누엘이야말로 2006년에 우리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가장 큰 선물이요, 가장 분명한 약속이다.


예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면 “Now all is well” “모든 것이 잘 될 것입니다.” 우리의 마음의 벽이 무너져 내리므로 인하여 “Now all is well” “모든 것이 잘 될 것입니다.” 우리의 헌신과 배려로 말미암아 “Now all is well” “모든 것이 잘 될 것입니다.” 2006년도는 맞이한 우리들은 새로운 각오보다는 하나님과 어떻게 동행할 것인가에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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