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방60주 기획(끝)통일한국 맞을 한국교회의 과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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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60주 기획(끝)통일한국 맞을 한국교회의 과제
  • 윤영호
  • 승인 2005.06.23 1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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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를 하나로 묶는  ‘통합의 영성’ 발휘돼야   

최근 이루어진 정동영 통일부 장관과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 사이의 만남은 북핵사태 이후 불거진 한반도 위기상황을 가라앉히는데 적지 않은 영향을 줄 전망이다.

사실 한반도 전문가사이에서 지난 1-2년 동안 나돌았던 얘기들은 한반도에서 유사시 비상사태가 벌어질 것이라는 매우 긴박한 것들이었다고 한다.


예컨대 북한이 핵을 포기한다는 증거로 북한 원자력 시설과 핵시설을 전면 공개해야 한다는 주변국의 주장을 계속해서 거절할 경우 미국을 중심으로 한 동맹국들의 선제공격도 예견된다는 것이 그 핵심내용이다.


하지만 다행스러운 것인지는 몰라도 우리나라 입장에서는 미국이 지금 현재 이라크전쟁을 매우 힘겹게 진행하고 있다는 점이다. 아무리 강대국이지만 동맹국들의 지원 없는 상황에서 동시에 두 장소에서 전쟁을 수행한다는 것은 어려운 일일 것이다.

이라크 전쟁 없었더라면 지금 한반도는?
이라크 전쟁이 여전히 일어나지 않은 상황에서 북핵문제가 부상했다면 어찌됐을까, 상상 만해도 끔찍한 일이다.


어찌됐건 한반도 주변은 이렇듯 전쟁의 회오리바람 속에서 정치적인 이해관계를 조율하고 타협하느라 매우 분주하다. 미국은 동해와 인근 해역에 항공모함을 중심으로 최신예 전폭기 스텔스기를 추가로 배치하는 등 북한을 최대한 압박하고 있다. 요격미사일 패트리엇 미사일 배치는 이미 끝난 상태라고 한다. 유사시 투입될 모든 장비들이 질서정연하게 한반도 안팎에서 위용을 나타내는 중이다.


이런 와중에 성사된 김 위원장의 면담은, 그것이 대통령 특사로서 이루어진 만남이었다는데 더 큰 의미가 있다고 언론들은 일제히 주목한다. 노 대통령의 특별견해가 직접적으로 전달됐다고 봤을 때 ‘전쟁방지’대책에 대한 신중한 의견이 제안됐을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정치와 밀접했던 기독교
순교의 영성을 다루며 격동기 한반도를 둘러싼 피비린내 나는 권력혈투를 집중 검토했고, 나아가 교회까지 이같은 파국에 휩쓸려 정치이데올로기에 편승하며 복음대로 살지 못한 죄를 실토해야 만 했던 우리나라 기독교회사는, 사실 정치와 밀접한 관련을 지으며 성장과 갈등을 겪어왔다.


우리나라에 복음이 들어왔던 초기 우리나라의 민중들 사이에서는 새롭게 접하는 신식종교로서의 기독교에 대해 상당한 호감을 가진 것으로 밝혀지고 있다. 처음 만난 서양인들을 두려워했던 감정은 사라지고 대신 ‘누구나 예수 믿으면 천당간다’는 만인구원설에 매료돼 하층민과 여성들 사이에서 힘 있게 파급됐었다.


다른 한편에서는 일본군에 의해 잔인하게 부상당한 궁중 관료 민영익을 말끔하게 치료해 준 알렌의 의료기술 덕택에 우리나라 지도층의 보호를 받아가며 광혜원이라는 이름의 신식병원도 설립됐다.


정치지도자/민중에게 정해진 복음

민중들은 권서인이 전해주는 성경을 읽으며 한글을 깨우치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나 소위 개화시대를 연 계기를 ‘성경’이 제공했다는 역사적인 평가를 받고 있으며, 궁중 관료들은 서양 엘리트가 전해주는 서구문화와 지식들을 전수받으며 이른바, 문화개혁운동의 발판을 마련했던 것이다.


일본이라는 외세를 업고 추진된 갑신정변의 기초 사상이 기독교라는 사실은 우리들에게 기독교의 급진성을 내포하는 대목이기도 하다. 이렇듯 격동의 시대에 직면했던 우리나라에서 기독교는 단순한 종교사상으로서가 아니라 새로운 삶의 지향점을 설정해 주는 ‘현대적 패러다임’을 제공한 실체였던 것이다.


여하튼 초기 우리나라 기독교는 신분제에 억눌려 있던 민중들에게는 해방의 감격을 안겼으며, 변화를 갈망하던 신흥엘리트들에게는 뚜렷한 목표의식을 설정해 준 지도이념으로 충분했다. 즉, 근대화의 길목에서 꿈틀거리던 우리나라를 한 순간 업그레이드시킨 계기를 기독교가 제공했다는 얘기가 된다.


여기서 한 세기 전의 역사를 되짚는 것은 현재 우리나라가 서 있는 역사적 좌표의 중요성 때문이다. 앞에서 밝힌 것처럼 우리나라는, 이라크와 이란 그리고 동구권을 겨냥한 대중국 봉쇄정책에 들어간 미국의 세계정책의 중요한 위치에 있다.

동북아시아 영향권놓고 각축전 치열
러시아와 일본, 청나라가 한반도를 놓고 각축을 벌였다면, 현재는 미국/중국이 동아시아에서 자국의 영향권 유지와 확대를 놓고 한창 격론을 벌이는 중이다.

정기적으로 집계되는 각 나라 경제성장률이나 인구통계 및 기술혁신 등은 사실 강대국의 정책입안과 변화에 필요한 자료들로, 이 중에는 한반도 정책추진에 필요한 자료들도 상당수 포함돼 있다고 한다.


일본제국주의의 패전 이후 혼란을 맞은 우리나라가 남북으로 갈린 것은, 우리나라가 국제질서를 바로 이해하지 못한 결과로서 그것에 대한 깊은 반성이 요구되고 있다.

바로 통일한국에 대한 뚜렷한 청사진은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질서의 흐름을 바로 인식하고 예민하게 대처할 때 비로소 작성될 수 있다는 반성이다.


성경이 민중들에게는 한글을 깨우치고 삶의 자신감을 심어주는 한편 지도층에게는 개화의식에 대한 지향점을 수립하도록 했다는 것은 도대체 ‘지금 현재’ ‘우리나라’에게 어떤 의미를 주는 것일까.


통일 후 교회 영향력 확보는 통일에 기여하는 일 뿐
결론부터 말하면, 이 시대 우리나라에서는 분단한국을 ‘통일한국’으로 대전환하는 과업을 바로 기독교가 수행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문제가 있다. 2000년대를 넘어오면서 한국기독교가 자신에 대한 잘잘못을 제대로 평가하거나 반성한 일이 매우 미흡했다는 사실이다.


이념충돌과 정치권 변동, 경제하락 사태 등 일련의 공동체 와해 사건이 터질 때마다 우리 기독교가 보인 처세술은, 성경이 제시하고 강조한 내용과 사뭇 거리가 있어 보인다. 부적절한 행동을 한 자녀를 나무라는 것은 당연한 일이고, 그것을 스스로 반성하는 것 역시 성장과정에서 필연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이다.


그러한 ‘필연적 과정’이 유독 교회에서는 아직까지 발견되지 않은 것이 문제로 작용하고 있다는 얘기다. 누구를 정죄하겠다는 의도로서가 아니라 앞으로 남아있는 통일한국의 과제를 수행하기 위해서 버릴 것과 취할 것을 구분해야 하는데 아직 그같은 일에 대해서 미온적인 입장이다.


숭실대 김영한박사는 개혁신학을 정치신학으로 구분할 수도 있음을 시사하면서 복음주의신학의 정치신학화 작업을 서둘러야 할 시점이라고 강조했었다.

그는 교회 뿐 아니라 세계의 운행까지 조절하시는 하나님의 실체를 바로 깨달아야 한다고 강조하며 국제정치 질서와 국가간의 역학관계까지도 신앙인의 눈으로 파악하는 개혁정치신학의 필요성을 수차례 주문했다.


복음주의 정치신학 정립 필요할 때
하지만 안타깝게도 한국기독교는 내부성장과 부흥에 역량을 결집하면서도 통일한국에 대한 구체적인 청사진, 예컨대 국제질서에 대한 선견적 판단과 미국 등 강대국의 정책노선 분석 그리고 이를 위한 세계기독교와의 교류협력 등에 대한 노력은 기대이하라는 평이다.


그마나 세계교회협의회(WCC)가 주관하는 남북교회 회의프로젝트가 대표적이기는 하지만 용공단체 운운하는 보수그룹의 견제 때문에 우리나라에서는 지지부진한 상태를 극복하지 못하고 있다.


한국기독교는 전래 당시부터 분열된 민중과 지배층의 관계를 하나로 묶는 ‘통합체’의 역할을 했다. 그것이 실패할 때는 기독교가 권력욕에 사로잡혀 야합했을 때였다.

우리는 북한의 교회가 공산당의 명령을 따르는 하부 기관으로 이해한다. 어쩌면 그럴 수도 있다. 그런데 여기서 교훈으로 남는 점은 북한교회가 왜 공산당 하부기관으로 전락했는지에 대한 부분이다. 단적으로 말해서 공산정권 수립을 막지 못할 정도로 북한기독교의 역량이 매우 위축됐다는 부분이다.

기독교가 북한주민의 절대적 지지를 받았다면 교회들이 그토록 반대하는 공산정권 수립이 가능했겠느냐는 질문은 통일한국을 앞둔 한국기독교에 시사하는 바가 매우 크다.


기독교의 과오 치밀하게 구별을
이 문제는 통일한국을 맞는 우리에게도 적용된다. 통일한국을 대비하는 기독교적 대안을 마련하는 일은 통일한국이 됐을 때 기독교의 위상이 높아져서 복음전도를 하는 것이 자랑스러운 상태가 되도록 하는 척도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최근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관계의 이해와 분석 ▲과거 국제관계 속에서 기독교가 보여준 일련의 행태 정리 ▲교회성장과 부흥의 에네르기에 대한 분야별 점검 ▲분단한국의 장애물 구별 등 마련해야 할 대안들이 적지 않다.

마치 가나안에 들어서면서 여리고와 아이에서 치열한 접전을 치러야만 했던 이스라엘의 경험을 우리나라가 또 다시 겪어야 할지도 모른다. 결국 하나님나라를 향한 ‘거룩한 영성’만이 이 일을 수행하도록 하는 동력원이 될 것이라는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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