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해방60년과 한반도미래 : 복음으로 맞선 한국교회 순교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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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해방60년과 한반도미래 : 복음으로 맞선 한국교회 순교역사
  • 윤영호
  • 승인 2005.05.31 1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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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제는 나라의 독립을 추구하는 사람들을 이렇게 말뚝에 묶어 총살만행을 벌였다.


 


스스로 제물 삼아 지켜낸 하나님의 창조생명  



순교는 결코 권장할 만한 것은 못된다. 그 이유는 단순하다. 하나님의 천지창조 중심주제가 바로 ‘생명’이기 때문이다.

순결하게 창조된 생명이 죄로 오염되고 부패되어 더 이상 생명으로서의 의미를 유지하지 못하게 됐을 때 하나님은 자신 스스로를 제물로 삼아 원래 창조성을 가진 생명으로 회복시키셨다.

이것은 생명의 소중함에 대한 기독교의 설명이다. 예수를 통한 생명구원은, 생명에 관한 한 인간은 그 어떤 일도 할 수 없음을 보여준다.

오로지 하나님만이 생명과 관계된 일을 하실 수 있음을 보여준다. 그러나 우리나라 근현대사 속에서 ‘생명’은 하나님 아닌 인간에 의해 조절되고 다루어짐으로써 마치 그 주인인 듯한 착각마저 갖게 한다.

피비린내 나는 살육현장들은 생명의 주인을 자처하고 나선 인간들의 가장 추악한 단면일 것이다. 


우리는 ‘순교’의 문제를 개인적인 차원을 넘어 보다 넓은 시야로 바라보아야 한다. 순교는 그 자체로서는 복된 길이지만, 솔직히 말해서 고통과 고난이라는 큰 범주 안에서 생각해 볼 문제다.

우리가 순교를 복된 길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나는 할 수 없는 큰일을 대신해 주었다”는 자책감의 한 표현으로 그렇게 여기는 것이고, 또 하나는 그 보상으로서 “하나님이 엄청난 복을 주실 것”이라는 확신을 근거로 ‘복된 길’로 강조하곤 한다.

따라서 순교는 복된 길로 고백하고는 있지만, 실상은 ‘고통과 고난’이라는 큰 범주에 포함되는 극단(極端)임에 분명하다.


고통과 고난의 기원은 태초로 거슬러 올라간다. 성경은 금단의 열매를 범한 아담과 하와의 불순종의 결과로 죄가 시작됐다고 기록한다. 이는 죄의 시작이 인간으로부터 비롯됐음을 보여주며 모든 고난과 고통의 시작 또한 인간으로부터 이루어졌음을 지적한다.

결국 순교는 전혀 나 자신과 무관한 일이 아니라 부패한 죄성의 결과로 이루어진 것임을 알 수 있다. 그러면 우리들이 받는 고난과 고통은 모두 똑같은가.


국제신학대학원대학교 이승구교수는 고난을 두 종류로 나누어 하나는, 일반인 함께 당하는 ‘수동적 고난’으로, 다른 하나는 그리스도인이기 때문에 당하는 ‘능동적인 고난’이라고 부른다.

전자는 일제시대로부터 시작해서 공산치하의 고난과 군사독재 치하의 고난, 성수대교 참사 같은 일상의 고난과 경제위기로 인한 실직 등의 고난을 말한다.


이에 비해 후자는 바울이 디모데에게 말한 것처럼(딤후1:8)의도적으로 만들어지는 고난을 말한다. 하나님 사랑을 실현하고 이웃의 생명을 위해 자처한 고난이 이에 속한다. 순교는 바로 기독교인의 능동적인 고난 가운데 포함되는 적극적인 고난의 개념으로 생각해야 된다는 얘기다.


여기서 우리는 그동안 순교를 ‘종교적인 의미’로만 생각해온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종교적이라함은 탈현세적인 것으로 초월을 내포하는 개념이다. 적어도 현실의 구체적인 삶으로부터는 이탈한 개념이란 것이다.


하지만 주기철목사나 손양원목사 혹은 유관순 열사 등 근현대사 속에서 굳은 신앙 때문에 목숨을 버린 사람들을 생각해 보면, 제국주의나 공산주의를 반대한 결과 무자비한 숙청대상이 됐다.

순교자의 행동은 종교적인 믿음으로부터 시       6.25때 학살된 병천교회 교인들
작됐지만, 그들의 믿음표현은 매우 구체적         을 위해 설립된 기념비.
이고도 섬세하게 ‘매우 현실적’인 모습으로
전개되어 갔다.


한국초기 기독교를 설명하는 가운데 빼놓을 수 없는 큰 인물이 있으니 그가 바로 한석진목사(1868-1939)다.

그는 우리나라 장로교 최초의 목사였으며 감리교 전도인 김창식과 함께 평양에서 일어난 일본의 기독교인 최대 박해 때(1894년 5월)투옥되어 심한 고문을 받았던 인물이다.

1907년 성령강림사건을 촉발시킨 장대현교회를 설립한 이가 바로 한목사였다. 그가 한 일은 교회를 세우는 일이 전부였다고 한다. 마펫선교사와 함께 전도에 힘을 써서 그 유명한 이덕환 김종섭 신상호 한치순 전군보 길선주 양전백 송인서 이기풍 등 한국 초대기독교의 든든한 지도자들을 배출했다.


우리는 여기서 찬찬히 들여다 보아야할 대목이 있다.
목사배출의 의미가 무엇인지 이들이 ‘당시의 현실’에서 한 일이 무엇인지 보다 면밀하게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1905년 을사늑약 이후 5년 동안 하나님은 한국기독교를 매우 풍성하게 성장하도록 성령강림의 역사를 체험하는 가운데 양적으로 질적으로 은혜를 주셨다.


1910년에 일제가 조작한 이른바 ‘105인 사건’은 복음을 받아들인 초기 한국기독교인들의 ‘믿음-삶’의 모습이 구체적인 현실인식으로 나타나고 있음을 명확하게 드러내고 있는 사례가 된다.
105인 사건은 배일정신이 특히 강하게 일어났던 정주 평양 선천 철산 등지의 서북지방 기독교지도자들의 항일운동이 활발해지자 이를 말살하기 위해 일제가 날조한 사건이었다.


1910년 12월28일 압록강 철교 낙성식에 참석하려는 사내(寺內)총독을 암살하려는 음모를 계획했다는 것이 105인사건의 내용이다.

이 사건으로 초반에 구속수감돼 고문과 위협을 받았던 사람들은 우리가 잘 아는 윤치호 양기탁 임치정 유동열 이승훈 등을 비롯하여 목사 6명, 장로 50명, 집사 80명을 포함하여 전체가 무려 389명에 이른다. 이 가운데 123명만을 기소했고 이어 18명을 다시 석방, 나머지 105인을 총독암살 가담자로 재판에 회부했다.


105인 중 기독교인 수는 91명이었고 천주교 천도교인이 각각 2명. 나머지는 무종교인으로 기록돼 있다.


이에 앞서 1908년 3월21일에는 일본 통감부 외교고문인 친일파 스티븐슨을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저격한 사람 역시 열렬한 기독교인인 장인환이었다. 1919년 3.1운동까지 언급하지 않더라도 이렇게 당시에 기독교인이 된다는 것은, 복음을 받아들여 구원받은 백성으로 산다는 것은 나라의 독립을 회복하는 일에 자발적으로 나선다는 것을 의미했다.


1938년의 신사참배 거부천명도 이같은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다. 기독교단이나 일제가 “신사참배는 종교의식이 아니요 국가의례 행사”라고 주장했다고 하더라도 순교를 각오한 우리 믿음의 선진들은 악한 영의 눈가림에 미동도 하지 않고 철저한 경건과 섬세한 역사의식을 간직한 채 가야할 길을 갔던 것이다.


일제시대, 나아가 공산주의와 피비린내 나는 살육을 보인 6.25한국전쟁 등을 통해서 우리는 복음을 영접한 사람이 된다는 것은 곧 복음에 위배되는 모든 것에 저항하는 삶을 산다는 결단임을 알 수 있다.

이들이 적용한 공간은 그들의 정신세계나 마음속에 국한 하지 않았고 그들이 살던 모든 영역에서 철저하게 그러면서도 미세한 부분까지 총망라해서 적용했다.


일제는, 그리고 공산주의는 기독교인을 체제부정자로 낙인찍고 가장 위험한 인물로 분류했다. 특히 목사나 장로에게는 교인들을 선동하기 때문에 더욱 철저하게 고통을 주었다.

따라서 목사, 장로는 가장 위험한 직분으로 인식됐을 뿐 아니라 그같은 직분을 수행한다는 것의 의미를 그들 스스로도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현재 한반도 통일운동가로서 전에는 미국의 이라크 침공을 반대하기 위해 미국에서 시위를 했던 홍근수목사는 현재의 한국교회에 대해 매우 우려하며 민족교회로서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교회와 성도로 거듭 나길 촉구하고 있다.

그는 “오늘날 우리의 선지자는 누구인가”라고 질책하면서 “교회성장의 기술자를 양성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반성할 때”라고 말한다.


또 장신대 한숭홍 교수는 “교회가 늘 가진 자, 상부구조에 편향하는 해바라기성 교회가 되고 있다”면서 “오늘날 모든 부조리와 구조 악의 문제들을 외면하면서 침묵하도록 하는 것은 무엇인지 자문해야 한다”고 강도를 높이고 있다.


복음을 부정하며 반대하는 구조 악에 맞서 싸우다 순교한 우리 믿음의 선진들을 기억한다는 것 자체가 죄스럽다.

우리 입에 오르내리는 순교자의 고귀한 삶과 고난이 우리의 추악한 반복음적 삶과 뒤틀린 생각들을 감추는 겉치장품으로 사용되고 있음을 부정할 수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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